박태환이 지난해 3월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언론 플레이’와 ‘꼼수’로 얼룩진 박태환 도핑 사건
스포츠인을 퇴장시킬 때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스포츠인을 퇴장시킬 때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수영영웅 박태환을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가?
박태환이 대표팀에 발탁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의사 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사실관계입니다. 과연 박태환을 대표팀에 발탁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사실인가요? 저는 엄밀하게 따지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은 박태환에 대한 대한체육회의 공식결정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박태환이 대중들로부터 대표팀에 발탁될 수 없다고 인식하도록 만든 현재의 비정상적 상황을 해명할 출발점입니다. 저는 여기서 박태환이 올림픽에 가야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을, 그것도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을 꼼수와 언론 플레이로 한 순간에 절명시키는 폭력을 고발하고자 합니다. 철저히 형식에 관한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가 권력과 미디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박태환의 대표팀 발탁 여부는 절차적으로 대한체육회의 경기력향상위원회가 1차적으로 관할합니다. 이곳에서 박태환을 대표팀으로 뽑아야겠다고 판단하면, 박태환의 대표팀 복귀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도핑 선수의 3년간 국가대표 자격박탈을 규정한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 5조6항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 제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법제상벌위원회 역할을 하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이 문제를 심의하게 됩니다. 변호사와 법학교수, 대학교수 등 10명으로 구성된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고민을 하겠죠. 이미 1년6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아 죄값을 치른 박태환한테 또 다시 3년간 대표팀 자격 박탈을 명시한 5조6항은 이중처벌 논란의 대상입니다. IOC나 국제반도핑기구 등에서는 이중징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대한체육회는 이것을 개정해야하는지 여부를 검토해왔습니다.
그런데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기존의 검토돼 왔던 이중처벌 규정에 존폐 문제를 토의하는 대신, 위원장이 “특정인을 위해 규정을 개정한게 옳은지 그른지”를 물어봅니다. 4월6일 저녁 6시쯤 이뤄진 이 ‘디스커션’에는 아무런 결정력이 없습니다. 한 위원은 “개인 의견을 묻는 것이라면 속기할 필요도 없다고 해 속기를 하지 말자고 했다. 아마 속기록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위원들은 가볍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자리로 생각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위원 중의 한 명인 김앤장의 제프리 디 존스 변호사도 “우리는 그런 사항을 결정하도록 요구받지 않았다. 또 그런 결정에 대한 책임도 없다. 위원장이 각자의 의견을 물어서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알고 모두 자리를 떴습니다.
이날 밤 연합뉴스에는 ‘박태환 올림픽 출전 못한다. 대표선발 규정 개정 않기로’라는 기사가 뜹니다. 위원들 개인의 생각은 한 미디어에서 ‘(공식) 결정’이 되고, 그 결정으로 인해 이중처벌 논란의 규정은 개정될 수가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이뤄지고, 그래서 박태환은 올림픽에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해 사실의 곡해입니다. 공정위원회 위원들이 규정을 개정하는 게 옳지 않다고 만장일치 식으로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법 개정을 맡은 곳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규정이 바뀔 수는 없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위원들이 갖고 있다는 것과, 위원회가 ‘규정을 개정하지 않기로’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프리 디 존스 변호사의 얘기를 더 들어보면 명확해 집니다. 그는 “박태환 관련 결정이 공식적인 것인가, 비공식적인 것인가?”라는 저의 질문에, “공식과 비공식의 차이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제가 “공식 결정은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이고, 두드리지 않으면 의결되지 않는 비공식으로 본다”고 하자, 존스 변호사는 “그렇다면 비공식이다.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린 적은 없다. 그것은 구속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모든 미디어는 연합통신의 보도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합니다. 물론 기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만 밤 시간의 속보경쟁이라는게 찬찬히 따져보고 심사숙고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그렇다고 핑계가 되지도 않습니다) 결국 다음날 아침 모든 신문에는 ‘특정인을 위한 규정 개정은 옳지 않다’는 공정위원회 위원들의 생각이, 그야말로 아무 것도 결정한 바 없는 그들의 생각이 진짜 결정처럼 활자화해 등장하고, 독자들은 ‘아, 그렇게 됐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실체 없는 것이 사실이 되는 순간입니다.
무언가 이상하고, 섬뜩한 이런 ‘허위의 사실화’ 구조는 꼭 스포츠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검찰의 정보에 철저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법조 출입기자들도 이런 함정에 노출돼 있습니다. 실제 이런 식의 언론 플레이를 통해 피의자를 압박해 목적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은 검찰 수사의 대표적인 기법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스포츠 판에서 이런 메카니즘을 활용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데,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사람들을 인식하게 만드는 그 음험한 메카니즘을 이용하는 세력은 누구일까요?
저 역시 합리적인 추론으로, 이 모든 것은 대한체육회의 예산권을 갖고 있는 문체부의 의도라고 지목합니다. 문체부의 권력은 2차관과 체육정책관 라인이 핵심입니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냐에 따라 한국 체육의 대계가 달라집니다.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고, 호오의 감정도 있는 분들입니다. 지난달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돼 새롭게 출범한 대한체육회의 뒤에는 이들의 추진력이 큰 힘이 됐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형태로 대한체육회를 압박하면서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온 것도 사실이지만, 어쨋튼 역대 정부에서도 하지 못한 통합 대한체육회를 출범시킨 공로는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체부의 체육회 통합 추진 과정에서도 저는 언론 플레이로 의심받을 만한 여러 건을 목도한 바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속속들이 취재를 해보면 문체부의 미디어 활용은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제 핸드폰에도 체육정책관이 보내온 문자들이 있는데, 대한체육회 사람들이 미디어에 소스(정보)를 흘려서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글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식으로 문자를 보낸 체육정책관과 달리 저는 단 한번도 대한체육회 쪽으로부터 소스를 흘려받은 적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들 라인은 박태환이 대표팀에 복귀하는 것을 썩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강조한 게 4대악 척결이라 해서 체육계의 부패를 도려내는 것이 포함돼 있습니다. 또 원칙을 강조하는 것도 이 정부이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문체부 핵심라인은 이런 정책 기조에 매우 충실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들의 세계관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스포츠 현장, 스포츠 이면의 애환, 스포츠인들의 정서는 전혀 감도 못잡고 있습니다. 마케팅이나 산업을 강조하지만 그것도 현대 스포츠 여러 부문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정책추진 과정에서 독선적이라거나 돌쇠형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더욱이 스포츠계가 목소리 한번 제대로 결집해 낼 수 없는 취약한 집단이어서 권력이 타깃으로 삼거나 그때그때 활용하기에는 딱 좋습니다. 이런 가운데 박태환 건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발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박태환은 25일부터 광주에서 열리는 동아수영대회 겸 국가대표선발전에 출전할 예정이었습니다. 물론 기록은 무척 좋게 나올 것입니다. 그 뒤에는 여론에서 박태환을 올림픽에 보내야 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명예회복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해왔다는 게 박태환을 지도해온 노민상 감독의 얘기입니다. 만약 여론이 불같이 일어서 박태환을 보내기 위해 대표선수 선발규정을 바꿔야 한다면. 이들 문체부 관계자들이 떨떠름하게 느낄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마침 공정위원회 위원장이 위원들에게 박태환 건에 대한 사견을 물어보고, 그 사실이 보고 라인으로 올라오고, 그것이 누군가를 통해 특정 미디어에 노출되고, 곡해된 정보가 다음날 기정사실처럼 되면서 박태환은 퇴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흐뭇해 할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제가 통화해본 많은 체육관련 학자들은 박태환을 대표팀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막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 5조6항이 이중처벌이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태환 때문에 규정을 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박태환 문제가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정식 안건도 아닌 기타 안건으로, 그것도 개인의 의견을 물은 뒤 마치 결정된 사항처럼 미디어에 의해 유통되면서 결국 한 사람을 코너에 몰고 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건강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걸러질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한번 더 기회를 주자는 주장이 득세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스럽고 기품없는 일처리로 인해 우리가 한 때 사랑했던 한 시대의 영웅의 퇴장은 너무 거칠고 천박하게 이뤄지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경기력향상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포츠공정위원회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중대한 사안이라면, 정식 안건에 다뤄 토론하고 결정된 사항을 공개적으로 발표했어야 합니다. 국민적 관심사라고 한다면, 특정그룹의 이해에 맞게 재단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사는 짓은 애초부터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공정위원회의 한 위원은 이번 사안을 취재하는 기자한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정말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하겠다.” 또 다른 위원은 아예 “전화를 받기 어렵다”며 끊었습니다. 공정위원회가 뭐가 떳떳하지 못해 그런 걸까요. ‘페어니스’(Fairness)라는 이름의 공정위원회도 권력과 미디어, 그 틈새에서 헤매는 것은 아닐까요. 한 인물을 퇴장시킬 때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박태환이 지난해 3월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태환이 지난해 3월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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