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표가 본인만의 승부수를 던졌다. 정면돌파다. 무릎 꿇는 퍼포먼스 등 감정에 대한 호소보다는, 특유의 논리적인 언변을 동원해 광주 유권자를 자극하려 했다. 사과를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광주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 성향을 건드리기 위해 간 것이었다. '비호남' 지역의 대표 주자라는 점을 내세워 호남을 잡겠다는 강한 의도를 내비쳤다.
문 전 대표는 4.13 총선을 일주일 앞둔 8일 광주광역시 충장로에서 약 300여 명의 시민을 앞에 두고 '광주시민들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문 전 대표는 "(호남 유권자가)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광주 8석을 포함해 호남 28석 중 절반 이상 승리하지 못할 경우 대선 불출마를 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관련기사 : 문재인 '충장로 연설' 전문)
문 전 대표는 이어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후보는,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다.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 저는 저에 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 나름의 승부수다. 조건부지만 정계 은퇴와 대선 불출마 입장까지 밝히면서 배수진을 친 셈이다.
문재인 "호남 바깥은 우리가 잘 하고 있다…호남이 손 잡아주면 정권 만든다"
이어 문 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강점을 어필했다. 대권 주자로서 '비호남'권을 묶어 낼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결단코 호남 홀대는 없었다. 오히려 역대 어느 정부보다 호남을 배려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그러자 연설을 듣고 있던 한 지자자는 "호남 홀대 없다. 종편이 호남 사람을 이간질하고 있다"고 외쳤다. 여기저기에서 "언제 문재인이 호남을 홀대했느냐"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 전 대표는 "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을 이간하여, 호남을 다시 고립화시키려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말아 달라" 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이 다시 굳건하게 손을 잡을 때만이, 세 번째 민주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호남만으로도 안 되고, 이른바 '친노' 만으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친노' 등 광주에서는 금기시되는 단어까지 사용을 했다.
문 전 대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호남 바깥에서는 잘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부산에서, 경남에서, 울산에서, 대구에서, 경북에서, 강원에서 더 늘어난 승리를 보여드릴 것"이라며 "호남이 손을 거둬들이지만 않는다면, 정권교체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광주시민, 전남북 도민들께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총선이 끝난 후에도) 앞으로 당권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더이상 국회의원도 아닌 만큼,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정권교체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대권 도전 의지를 드러냈다. 문 전 대표는 "총선이 끝나면, 더 여유로운 신분으로 자주 놀러 오겠다. 정치인 문재인이 아니라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못난 아들놈처럼 맞아 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연설 도중 지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외쳤다. 문 전 대표가 죄송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일부 지지자들은 "뭘 잘못했느냐. 잘못한 것 없다"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자 지지자들이 "(문재인과 김홍걸) 한번 껴안으라"고 요구했다. 문 전 대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이 서로 포옹을 하자 지지자들은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대중"을 연호하는 등 환호성을 질렀다.
문재인의 '논리적' 솔직함, 호남 유권자 '성'에 찰까?
문 전 대표의 입장문은 크게 무능력에 대한 사과, 조건부 대선 불출마, 그리고 '호남 홀대론'에 대한 반박이다. 논리를 좋아하고, 보여주기식 행동을 하지 않는 문 전 대표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자연인 그대로, 가장 솔직한 생각과 말, 스타일을 광주 연설에서 보여준 것 같다"고 평했다. 이때문에 '쇼맨십'은 없었다. 연설 전 "문 전 대표가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 같으냐"는 질문에 한 참모는 "봅시다"라고만 했다.
문 전 대표의 이같은 태도가 광주에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지는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유권자들에 대한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억지 '쇼'가 오히려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화묘지를 참배한 후 광주천을 따라 걸으며 양동시장, 광주공원 등을 들렀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경호 인력도 사실상 보이지 않았다. "문 전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돌진하는 시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만나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눴다.
이날 오후 2시 30분 경 시작된 입장문 발표 전까지 특별한 돌발 상황은 없었다. 간혹 "이 기득권자야", "광주는 (표) 자판기가 아냐"라고 외치며 문 전 대표를 비난하는 시민들이 보였지만, 이들은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야유를 받고 물러서야 했다.
문 전 대표의 지지자들은 문 전 대표의 광주 방문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한 지지자는 "문 전 대표가 반대 세력에게 봉변을 당할 까봐 일부러 나왔다. 광주가 문재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문 전 대표의 광주 방문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주승용 후보 지원을 위해 전남 여수를 찾은 김한길 의원은 "오늘 문재인 전 대표가 광주를 찾았다고 한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일회성 방문으로 말 몇 마디 한다고 해서 계파 패권주의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책임, 야권을 분열시킨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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