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대통령 관여 정황 확인…직권남용 혐의 검토
박대통령 비판한 인사 관리 ‘적군리스트’도 확보

김기춘 실장이 총괄주도해 대통령에게 보고
대통령, 2000억 세금을 ‘사적 이익’ 위해 휘두른 셈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진보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인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해 만든 뒤 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전 실장은 또 블랙리스트와 별도로 박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들을 따로 관리한 이른바 ‘적군 리스트’도 만들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리스트는 모두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던 시절 정무수석실 주도로 만들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8일 특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진보·보수를 기준으로 나눠 생산한 진보성향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외에도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문화계 인사 명단인 이른바 ‘적군 리스트’를 별도로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여당 성향 인사라도 박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을 문제 삼을 경우 이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진보성향의 블랙리스트 외에 대통령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들을 모두 리스트로 만들어 관리한 셈이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적군 리스트’ 등 각종 리스트들이 김 전 실장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된 사실도 파악했다. 특검팀은 각종 리스트 작성은 대통령의 묵인하에 김 전 실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8월 취임한 김 실장은 ‘좌파척결’과 ‘보수가치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통해 2014년 초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전달됐고, 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기금 개선방안’을 만들어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지원을 끊기 위해 나섰다.
특검팀은 문체부 관계자를 비롯한 관련자 진술 등을 통해 이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과 실행방안 등 구체적인 내용이 문체부를 통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김 전 실장에게 보고된 다음 박 대통령에게 전달된 사실을 파악했다. 특검 수사로 박 대통령이 겉으로는 ‘문화융성’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2000억원에 달하는 문체부의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사적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휘두른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난 셈이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초기부터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조만간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등을 소환해 해당 의혹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박 특검팀은 ‘삼성 뇌물 의혹’과 관련해 9일 오전 10시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서영지 최현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