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박형철(48ㆍ사법연수원 25기) 대전고검 검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윤석열(56ㆍ23기) 대구고검 검사였다. 윤 검사는 “부산고검으로 발령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검사는 병원 치료차 서울에 있어 인사가 난지도 모르고 있었다. 박 검사는 “이제는 나가야겠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힘들다”고 친한 검사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박 검사는 결국 7일 사표를 냈다.
윤 검사와 박 검사는 2013년 국정원 정치ㆍ대선개입 특별수사팀에서 각각 팀장과 부팀장을 맡았다. 윤 검사는 대검찰청 중수1·2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친 검찰 내 대표 ‘특수통’이다. 박 검사는 대검 공안2과장과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을 거친 선거법 전문가다. 특수ㆍ공안 검사들이 한 팀에서 일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초년 검사시절 광주지검에서 함께 근무할 때부터 친했던 두 검사는 호흡이 잘 맞았다고 한다.
문제는 수사 과정에서 불거졌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에 반대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윤 검사는 고민하던 박 검사에게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한 번 써봐라. 만약 써진다면 그렇게 하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검사는 쓰지 못했다. 결국 수사팀은 그해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과 함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리고 4개월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체포 등을 막았다는 윤 검사의 주장이 나왔다. 조 지검장은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감찰 끝에 지시 불이행 등의 이유로 윤 검사에게는 정직 1개월, 박 검사에게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듬해 1월 윤 검사와 박 검사는 각각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문책성 전보 조치됐다.
2014년 4월 대전고검 사무실에서 박 검사를 만난 적이 있다.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여전히 의지가 넘쳤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수사팀 후배검사들과 함께 원 전 원장의 재판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박 검사는 지난해 유임된데 이어 지난 6일 중간 간부 인사에서 부산고검으로 발령났다.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후배 검사들과 만나는 것도 더욱 힘들어졌다. 윤 검사도 대구고검에서 역시 검찰 내 한직으로 불리는 대전고검으로 가게 됐다.
박 검사의 사표 제출로 검사들 사이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청와대나 법무부, 검찰 수뇌부에 한번 밉보이면 끝이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식의 확산은 수사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검찰로서도 결코 좋지 않다. 검찰은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이유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한 지 3년 만에 총장 직속의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만들었다. 지난해 검찰이 청와대 ‘하명’ 수사를 했다는 의심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정치적 수사 시비 등에 휘말릴 경우 수사력 강화를 빌미로 과거 중수부를 부활시켰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수사력 강화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취지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권에 불리한 수사를 했던 박 검사의 퇴장은 검사들, 그리고 국민에게도 검사 한 명의 사직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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