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5일 오후 1시 52분]
"우와, 굉장히 크네요."
13일 현장에서 만난 기생충 학자인 경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기생충학교실 손운목 주임교수(61)의 일성이었다. 손 교수와 함께 강변을 거닐며 죽은 세 마리의 강준치를 수거했고, 그 중 한놈의 배를 가르자 엄청난 양의 기생충이 나온 것이다. 도저히 한 마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양의 기생충이 강준치의 뱃속에 가득 들어있었다.
▲ 강준치의 배를 가르자 뱃속에 기생충인 촌충이 가득 들어있다. | |
ⓒ 정수근 |
손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이날 강준치 한 마리에서 나온 기생충은 5,6마리 정도고, 그 기생충은 리굴라(Ligula sp.)라고 하는 조충(cestode, tapeworm; 일명 촌충)이다(아래 촌충으로 명명).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종이라, 연구도 많지 않다고 했다.
한 배에서 나온 촌충의 길이는 대략 50센티 이상이었고, 폭은 나무젓가락만 했다. 모양은 창자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손으로 만졌을 때 끈적거림은 없었고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인체에 감염은 되지 않는다"는 손 교수의 설명에 안심하며 촌충을 만질 수 있었다.
▲ 강준치의 뱃속에 든 기생충을 꺼내보니 크기가 50센티가 넘는 놈들이 여러 마리 들어있었다. | |
ⓒ 정수근 |
그렇다면 촌충은 왜 강준치의 뱃속에 가득 들어있을까? 촌충이 강준치의 뱃속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재미있다.
"'리굴라'라는 이 촌충의 숙주는 조류(새)입니다. 새들이 촌충을 먹고 똥을 싸면 그 안에 많은 촌충의 알이 들어있어요. 부화한 어린 유충은 물벼룩이 잡아먹고, 물벼룩을 어린 물고기가 잡아먹게 되고, 그 어린 물고기를 강준치 같은 대형 어류들이 잡아먹어서 강준치 뱃속에서 촌충이 성충으로 자라나게 되는 겁니다. 철새들은 그 물고기를 잡아먹어서 촌충이라는 이 기생충을 전파하는 최종 숙주 역할을 하는 것이고요."
먹이사슬을 통한 순환 과정 속에 촌충이 놓여있다는 손 교수의 설명이다.
기생충과 물고기 떼죽음
"그런데 이 촌충이 재밌는 것은, 이것이 어떤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켜 물고기를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촌충이 물고기 몸속에서 자라면 물고기가 비실비실해져 물가로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고, 그것을 새들이 쉽게 잡아먹게 되지요."
▲ 뱃속에서 삐져나온 기생충을 달고 비실비실 대며 강가로 나온 강준치 | |
ⓒ 정수근 |
▲ 물닭이 강준치 한마리를 낚아챘다. | |
ⓒ 정수근 |
기자가 며칠 동안 강에서 목격한 그대로였다. 움직임이 평소와는 달리 비실비실해진 강준치가 물가로 어슬렁거리며 나왔고, 그것을 물닭이 잡아먹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비실비실해져 죽기 직전인 강준치를 쪽대로 건져 올려보았다. 녀석의 뱃속은 역시나 터질듯 불룩했고, 배를 가르자 그 안에는 촌충이 가득 들어있었다.
"일반적으로 겨울에는 물고기가 물가로 나오지 않잖아요. 그런데 물가로 나오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지요. 촌충이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왜 연가시란 놈이 있잖아요. 그 연가시도 기생충인데 풀벌레 몸속에 들어있다가 풀벌레를 물가로 유인해서 물속에 알을 낳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되지요."
강속 먹이사슬을 통해 촌충을 먹은 강준치나 큰 물고기가 물가로 나오고, 그 물고기를 새들이 쉽게 잡아먹게 되는 이 놀라운 생명그물의 순환과정이 그 속에 그대로 들어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준치가 계속해서 떼죽음하고 있는 것이다. 13일도 20마리가량의 죽은 강준치를 목격했다. 11일 대구지방환경청 직원들이 나와서 모두 수거해 갔는데도 또 폐사한 강준치가 보인다는 것은 강준치가 계속해서 죽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 강준치의 뱃속에 든 기생충을 빼내보고 있다 | |
ⓒ 정수근 |
"이 지역에 강준치뿐만 아니라 다른 물고기도 있었을 텐데 촌충에 감염되어 있는 강준치만 죽었다면 촌충이 강준치 집단폐사의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요. 아마도 촌충이 너무 자라서 장기를 압박하고, 그것이 사인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강준치 외에 죽은 다른 물고기는 이 일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유독 강준치만 죽은 것으로 볼 때, 손 교수의 설명대로 촌충이 원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철새들이 숙주이기 때문에 철새가 늘어난 것이 원인이 아닐까요."
손 교수의 의견이다. 다시 설명해보면 물고기를 잡아먹는 철새들이 늘어난 것이 원인일 수 있겠다. 4대강 사업 이후 전체 철새는 줄었다고 보지만, 물고기를 잡아먹는 '잠수성 오리류'의 철새들인 물닭과 민물가마우지는 눈에 많이 띈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이 호수와도 같은 강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수면성 오리류인 두루미와 기러기 같은 철새는 줄고, 물닭이나 민물가마우지 같은 잠수성 오리류의 철새들이 늘어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 4대강사업 이후 유독 많이 보이고 있는 물닭. 잠수성 오리류인 물닭과 민물가마우지가 4대강사업 이후 많이 목격되고 있다. | |
ⓒ 정수근 |
더 늦기 전에 4대강을 흐르게 하자
이에 대해 '습지와새들의친구' 김경철 국장은 말한다.
"과거에도 기생충이 원인이 돼 낙동강 하구에서 물고기가 떼죽음한 사례가 있었다. 철새들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4대강 사업 이후 수면성이나 잠수성 오리류이거나 간에 현재 철새들은 오히려 감소했다. 낙동강이 현재 호수처럼 변해버려서 기생충이 더 번성할 조건이 된 것이 원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물고기 떼죽음과의 인과관계는 더 면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강이 심각하게 변해간다는 것이다. 강의 물리적 생물학적 환경이 심각하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이전에 없던 녹조 현상이 일상화되고 매년 물고기가 떼죽음하고, 기생충이 창궐하는 환경이 되어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4대강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낙동강만 예를 들더라도 아이들이 놀아도 안전한 모래강으로 얕고 유유히 흘러갔던 낙동강이 이제 4대강 보로 막혀 깊고 위험한 강으로 변해버렸다. 얕은 강일 때는 강의 좌우를 맘대로 건너다니던 야생동물들에겐 강은 건널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그들의 생존 공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 물고기 떼죽음, 언제까지 이를 방치할 것인가? 우선 생명들이 살 수 있도록 강을 흐르게 만들자. 더 늦기 전에. | |
ⓒ 정수근 |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는 생명마저 살 수가 없다. 그 생명이 살 수 없는 강물을 1300만 영남인들이 매일 마시고 살고 있다. 물고기가 떼죽음하는 강물을, 기생충이 들끓는 강물을 과연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것일까?
녹조가 사라지고, 물고기가 죽지 않고, 사람들이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실 수는 없을까? 환경단체의 주장대로 4대강 재자연화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강을 빨리 흐르게 해 강의 자정작용을 되살려 주는 일, 그것만이 강을 되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강을 흐르게 만들자.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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