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일이 또 터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모하고 독단적인 성정으로 보나 그녀의 능란한 정치 셈법으로 보나 이제 일이 또 터질 때가 되었는데 하던 중이었다. 박 대통령은 무언가 ‘꽂힌 일’에는, 대개 극우적인 황당무계한 일이 그렇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이는 행동을 하곤 했다. 그녀의 유일한 성공 경력 증명서라고 할 수 있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대변하듯이 박 대통령은 동물적인 본능으로 정치적 속셈도 잘한다. 벌써 경제 실정과 엉터리 위안부 합의 책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지 않았나.
무모하기는 북한의 김정은도 매일반이다. 그런 그가 때마침 좋은 핑계를 만들어주었는데 우리 박 대통령께서 그런 호기를 마다할 리가 없다. 물론 박 대통령의 뒤에는 당연히 미국과 일본의 치밀한 계산과 전폭적인 지원이 따르겠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 호들갑이었다. 그런데 수천 개의 멀쩡한 기업을 도산 위기로 몰아넣으며 해야 할 만큼 개성공단 폐쇄가 그리도 시급하고 불가피했나. 개성공단 폐쇄가 정말 북한의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막는 데 효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나. 달리 대안은 없었나. 박 대통령의 강공에 과연 북한이 무릎 꿇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렇게 하기 위한 추가적인 수단은 있나.
이제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있는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는 선언적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 박 대통령의 외교적 대북 압박이란 사실 미국에 매달리겠다는 것이다. 흡사 ‘빅 브러더’에게 “쟤 좀 혼내주세요” 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 우리와 이미 입을 맞춘 듯이 재바르게 나서고 있다. 신속하게 대북제재법안을 통과시켰고, 그보다 더 신속하게 남한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이 우리를 위해서, 돈독한(?) 전략적 외교관계를 맺은 박 대통령을 위해서 북한을 혼내주려는 건가? 대북제재법안은 별 효과가 없을 테니 결국 사드인데, 그러면 사드는 우리를 위한 것인가? 미국은 절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군사전문가들의 분석과 설명을 종합 평가해 보면 사드는 북핵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남한의 안전을 위한 것도 아니다. 남북한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사정거리 수천킬로미터짜리 장거리 미사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드는 미국과 일본을 위한 것이고, 그러니 미·일이 합심해서 군사적으로 견제하기 바쁜 중국도 당연히 사드의 감시 대상에 포함된다는 건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물건이다. 중국이 극력 반발하고 러시아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면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보복 등 피해도 우려되지만, 중국의 주요 공격 대상에 남한도 포함될 것이므로 우리나라의 안보는 극히 위험해진다. 중국이 자국의 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적국의(미국이든 한국이든) 방어체계를 유사시 선제적으로 파괴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냉전시대 때 본 미-소 간의 창과 방패의 끝없는 군비경쟁 아니었던가.
그러니 이번 사태는 미·일과 중국의 군비경쟁에 우리가 끌려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미·일의 이해에 우리나라가 동원되고, 그런데 이익은 미·일이 모두 먹고 위험은 우리가 고스란히 다 짊어지는 일이다. 사드 비용까지 우리 돈을 대가면서. 이렇게 안보 위험을 감수하면서 미·일의 이익을 위한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한 단계 더 높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왔다는 박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인가?
이것이 박 대통령이 대책 없이 저지른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의 정치경제학적 계산의 결과다. 경제는 무능하고, 외교는 무지하고, 안보는 무모한 대통령. 죽어나는 건 국민들뿐이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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