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4대가 17일 한반도에 나타났다.
F-22는 오산에서 평양까지 7분 만에 날아가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머리 위로 정밀유도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은 요즘 적 수뇌부 제거 ‘참수작전’을 수행하는 미 특수부대, 핵 공격을 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 B-52와 최신형 원자력추진 공격형 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7800t급),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패트리엇(PAC-3) 등 핵심 전력을 잇따라 한반도로 보내고 있다. 스텔스 전폭기 B-2와 왠만한 나라의 공군 전투력을 가진 존 C 스테니스호(9만7000t급) 항모전단이 추가로 한국에 와서 3~4월 한·미 연합훈련 키 리졸브 및 독수리 연습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한·미 연합훈련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군의 무력시위는 북한의 추가적인 군사행동을 막을 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에서 불거진 핵무장 여론을 달래려는 성격까지 띄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맞을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에 머물고 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더 깊은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총선에 미치는 영향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의 한국선거 개입, 1987년 기점으로
직접 방식에서 간접 방식으로 바뀌어
사실 한국 선거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국정치외교사논총>에 실린 안문석의 논문 <1987년 이후 미국의 한국 대통령선거 개입>을 보면 미국이 개입하는 방식이 1987년을 기점으로 직접적인 방식에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안문석은 논문에서 1987년 이전의 개입 사례로 다음을 든다. “1952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상태로 개헌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를 추진할 당시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를 저지했고, 1963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군정연장 의사를 피력했을 때는 경제원조 중단이라는 대응책으로 군정연장을 막았다.”
1987년부터는 미국의 대선 개입이 대선 후보나 후보의 주변 인물들을 은밀하게 만나 정보를 얻고 미국의 뜻도 완곡한 표현으로 전달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1987년 6·29 선언 직전인 6월22일 더윈스키 미 국무부 차관이 김현욱 국회 외무위원장을 만나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노태우 후보에 대해 정치적인 조언을 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더윈스키 차관은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노태우 후보는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부드러운 방법으로 멀어져야 한다”고 충고한 것이다. 2002년 1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는 부시 행정부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워싱턴을 방문할 경우 여야를 막론하고 차관보급으로 면담수준을 제한하는 관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는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미국정부의 핵심인물들을 잇따라 면담했다. 미국이 이 총재를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인정해줌으로써 한국민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미 대사관, 2007년 대선 관련 전문 100건 본국에 보고
1997년 ‘비상 사태’에서는 다시 적극 개입 정황도
미국의 간접적인 선거 개입은 위키리크스가 2011년 9월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25만건) 속에서도 드러난다. KBS 기자 출신으로 현재 <뉴스타파> 대표인 김용진이 쓴 책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을 보면 미 대사관은 2007년 연초부터 선거일 직전까지 한국의 대선과 직접 관련된 전문만 모두 100건이나 생산해 본국에 보고했다. 사흘에 한번 꼴이다. 미 대사관은 다른 후보들보다 이명박 후보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미 대사관은 이명박 후보를 LMB라는 약칭으로 부르며 “매우 친미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유일한 후보로 평가하고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 “정감 있고, 유쾌한 상대”라든지, “군중들을 잘 다루며 카리스마 넘치는 대선 선두 주자로서 가는 곳마다 록 스타 대접을 받는다”라고 LMB를 표현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기록 하나는 2007년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 이명박 캠프의 유종하 선거대책위원장이 버시바우 대사를 찾아가 BBK 스캔들의 핵심인 김경준의 한국 송환을 연기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명박 후보의 친미 성향을 알린 대목이다.
“10월25일 회동 때 유종하 전 장관은 한미동맹과 관련해 미국은 이명박 후보에 대해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연장을 매우 강력하게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31일자 미 대사관 전문) 김경준의 송환 연기와 이라크 파병 연장을 교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1987년 이후 미국의 선거 개입이 항상 간접적이고 우회적이지만은 않았다. 앞의 논문 <1987년 이후 미국의 한국 대통령 선거 개입>을 보면 “1987년 이후 미국의 한국 대선에 대한 개입의 정도는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한 경향 속에서도 미국은 한국의 ‘비상사태’에 직면해서는 다시 개입의 정도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 사례로 1997년 대선을 들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자 야당의 김대중, 이인제 두 후보는 “집권하면 연쇄도산과 대량실업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IMF와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미국 부대사와 정치담당 공사참사관이 나서 두 야당의 핵심인물들을 만나 “그러한 주장은 한국경제의 신뢰회복을 어렵게 한다”고 강조했다. 며칠이 지나 김대중, 이인제 후보의 입장은 후퇴하는데 논문은 “주한 미국 대사관 인사들이 직접 접촉해 후보들의 입장을 변화시킨 사례는 한국 대선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한다.
미군이 지난해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인 사드(THAAD·고고도 요격 미사일)를 시험 발사하고 있다. 출처 미국 국방부 미사일방어청
사드 내준 박 대통령은 미국에게는 소중한 존재
총선 앞둔 최근 미국의 군사행동은 ‘직접 개입’
나는 이번 미국의 군사 행동이 한국 선거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F-22 같은 전략 무기의 과시는 전쟁 위기를 최대한 고조시킨다. 불안에 떠는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중심으로 뭉치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청년 실업, 빈부 격차, 성장률 저하 등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실정을 더 큰 불안이 덮어주는 것이다. 과거 ‘북풍’의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도 있지만 그건 정부 여당이 너무 표나게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부 여당을 대신해 미국이 움직여주면 우리 국민은 의심조차 품지 않을 것이다. 현재 야권의 분열도 그대로 굳어지는 효과가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야권 지지자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당의 대결이 쟁점이 되면 선거에 임박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체를 휘감는 먹구름으로 인해 야당의 문제는 왜소해지고 말았다. 두 야당은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은 채 선거일을 맞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으로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구도다.
미국이 나선 것은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사드를 배치하도록 한반도를 내줌으로써 미국의 숙원사업인 미사일 방어체제(MD)를 완성하도록 해줬다. 눈에 가시 같던 개성공단도 폐쇄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은 매우 용기 있고 중요한 조치”라고 아낌없이 칭찬해줬다.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중국을 포위하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은 이제 본격적인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주고 있는 것이다. ‘뼛속까지 친미’라는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 만큼 해주지는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그런 최상의 파트너가 이번 총선에서 기가 꺾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지난해 9월25일 미국과 중국 정상이 백악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2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가졌던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여기서 헤어진 뒤 다섯 시간 뒤 다시 백악관 2층 만찬장에서 만난다. 워싱턴/ AP 연합
중국이 국내 선거에 영향력 행사한 적 없지만
사드 배치 상황에서 초유의 사태 벌어질수도
중국은 한국의 선거에 끼어든 적이 없다. 그런데 사드 배치로 미국의 칼끝이 분명하게 중국을 겨냥하자 예전에 보지 못하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의 대응이 한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대만 선거에는 노골적으로 끼어들었다. 1996년에는 총통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고 대만 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한 경험도 있다. 대만 유권자들을 위협함으로써 공공연하게 대만의 독립 노선을 주장한 리덩후이 후보의 총통 당선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올초 대만 총통 선거를 두 달 앞둔 지난해 11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분단 66년 만의 첫 양안 정상 회담이다. 시진핑은 “우리는 뼈가 부러져도 살은 이어진 형제”라고 했다. 회담 이유가 선거에서 민진당에 밀리는 ‘국민당 구하기’임을 잘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한반도에서 중국은 서서히 ‘온도’를 높여갈 것이다. 처음에는 은근히 심리적 압박을 가하겠지만 효과가 없다면 실질적인 경제 제재에 나설 수 있다.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군사적 압박을 가할지도 모른다. 이미 중국 언론들은 ‘사드가 인민해방군의 공격 대상’이라고 공공연하게 보도하고 있다. 사드가 최종적으로 어디에 배치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대구 군산 원주 등지의 유권자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사실상 우리 국민에게 ‘대결이냐 평화냐’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나타날 것이다. 미국과 중국 두 열강은 한반도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 군사적 지형을 건설하기 위해 남의 나라 총선에서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총선의 쟁점은 더 이상 국내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다. 한국 총선의 양쪽 사령관은 박근혜-김무성 대 문재인-안철수가 아니라 오바마 대 시진핑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판이 커진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중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사드를 한반도 남쪽에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치르던 남북 대결과 총선 경쟁이라는 두 개의 ‘내전’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국제전’으로 비화한 모양새다. 6·25 때도 그랬다. 이승만 대 김일성의 전쟁에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면서 맥아더 대 펑더화이의 전쟁으로 비화했다. 좁디 좁은 한반도 땅에 1차 대전 때보다도 더 많은 폭탄이 사용됐고 수백만명이 죽고 다쳤다. 한반도의 앞날이 갈수록 불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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