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책, 무상보육ㆍ육아휴직 등
대부분 자녀 있는 가족에만 집중
초혼연령 상승 등 핵심요인 외면
“성별ㆍ나이 고려한 맞춤대책 필요”
복지부 “작년 말 관련 대책 반영”
“비정규직이다보니 결혼, 자녀 등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결혼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을 위해 대체인력을 뽑아주는 회사가 없어 출산은 거의 불가능하다.”(29세 미혼 여성 A씨)
“결혼이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집이었다. 실제 집을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부의 주택정책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35세 결혼 예정 남성 B씨)
정부 저출산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해 관련 대책의 성과가 미진하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다. 젊은 세대가 결혼 및 출산 자체를 기피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 출산 및 양육 정책에만 예산을 몰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이나 출산을 주저하는 이유 또는 처지가 각기 다른 만큼 성별, 취업 여부 등을 감안한 맞춤형 저출산 대책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국무총리 산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책임연구원 김영란)은 최근 기획재정부에 정책연구 용역 보고서 ‘저출산 대책의 정책 효과성 제고방안 연구’를 제출했다. 3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이 보고서에서 연구팀은 정부가 저출산 해소를 위해 다각적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성과는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제1차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계획이 수립된 2006년 이래 80조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명에서 지난해 1.24명으로 소폭 상승에 그쳤다는 것이다.
출산 증진 효과가 미진한 것은 정부 대책의 초점이 틀렸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인식이다. 연구팀은 선행연구 검토를 통해 ▦남녀 초혼 연령 상승에 따른 가임 기간 축소 ▦취업ㆍ만혼 여성을 중심으로 한 출산 지연을 저출산의 핵심 요인으로 뽑았다. 전자는 주로 고용 불안정과 집값 부담, 후자는 여성 경력 유지와 양육 부담에서 비롯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기존 정부 대책은 무상보육, 육아휴직제, 유연근로제 등 대부분 자녀가 있는 집단을 대상으로 한 양육지원 정책이라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예컨대 2차 기본계획(2011~15) 집행기에 소요된 저출산 관련 예산 37조7,200억원 중 34조8,500억원(92%)이 출산ㆍ양육정책에 투입된 반면 고용정책 예산은 2조6,900억원에 불과했고, 주거 및 교육정책은 모두 비예산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 첫 자녀 출산 이전 대상 예산이 거의 책정되지 않는 등 저출산 대책이 청년세대의 정책지원 욕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사회적 현상으로 고착화하고 있는 만혼 문제를 주로 개인의 선택 문제로 받아들이다 보니 일자리, 주거 등 결혼 지원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청년층 내부에서도 성별, 취업 여부, 자녀 수 등에 따라 결혼 및 출산 애로점이 다른 만큼 각 집단별로 최적화한 정책패키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 대안 제시를 위해 연구팀은 25~39세 성인 1,000명을 성별, 결혼 여부, 취업 여부, 출산 상황(첫째 출산 전, 둘째 출산 전)을 기준으로 100명씩 10개 집단으로 나눠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결혼 전 집단은 ‘생애 첫 일자리 5년 보장’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안정된 고용 지원책을 선호했고, 기혼 집단은 ‘육아휴직제 강화’ 등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을 원했다. 결혼 전 집단 중 남성은 ‘주택 마련 비용 지원’ 등 주거 정책에 대한 높은 수요를 보였다. 기혼 여성 중 취업자는 육아휴직제, 직장어린이집 확충 등 일-가정 양립 지원책을, 미취업자는 시간제일자리 확대, 보육비용 지원을 각각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존 1, 2차 기본계획에 대한 평가를 반영, 지난해 12월 발표한 현행 3차 기본계획에선 주거, 고용, 일-가정 양립 대책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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