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재단’의 숱한 의혹 가운데 하나는 왜 그리 ‘숨넘어가듯이’ 재단 설립을 서둘렀는가이다. 미르는 늦어도 지난해 7월부터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별 진척이 없다가 그해 10월24~27일 딱 나흘 사이에 뚝딱 만들어졌다. 전경련이 긴급 사발통문을 돌렸고, 기업 임직원 50여명이 팔래스호텔에 모여 가짜서류에 도장을 찍느라 분주했으며, 문체부는 ‘출장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의문의 실타래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의 발언으로 풀리기 시작한다. 박 회장이 미르재단 설립 배경으로 “리커창이 한-중 간에 문화예술 교류를 활성화시키자는 얘기를 하면서 뭔가가 됐겠죠”라고 말한 것이다.
재계와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미르재단 설립과 관련한 청와대의 의중이 기업 쪽에 최초로 전달된 건 지난해 7월24일 대기업 총수 17명이 청와대에서 점심을 먹은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이날 오찬 직후부터 대기업의 재무 쪽 임원들은 돈을 낼 준비에 들어간다. 대통령의 구상이 더욱 원대해진 건 두달 뒤인 9월2일 베이징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만나면서다. 두 사람은 “한·중을 하나의 문화공동시장으로 만들고 세계시장에 함께 진출하자”는 데 뜻을 같이한다. 그러고는 이를 위해 2000억원짜리 문화 관련 벤처펀드를 조성하기로 약속했다. 박 대통령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재계에서는 이 벤처펀드와 미르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성격의 펀드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고 미르재단의 486억원보다는 4배 이상 되는 큰돈이다. 그리고 다음날 박 대통령은 천안문 성루에 올라 열병식을 참관한다. 미국의 따가운 눈총을 뚫고 감행한 것인 만큼 전날의 약조는 반드시 지킬 것으로 믿었을 법하다. 두 정상의 약속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중 외교 실무진은 여러차례 만나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 리커창이 10월31일 한국에 들어온다니 박 대통령으로서는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난번 지시 사항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죠?”라고 물은 게 10월20일 무렵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진은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하기 싫어서인지, 잊고 있어서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대통령의 말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건 그 이후의 상황이 증명한다. 이와 관련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금요일인 23일 청와대가 갑자기 대기업 주요 임원 몇 명을 불러서 재단 설립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지목한 대기업 주요 임원을 <한겨레>가 접촉해 보았으나 “그런 적이 없다”는 반응만 보였다. 23일 모임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24~27일 군사작전 치르듯 재단이 설립된 데는 뭔가가 분명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이런 북새통을 떨었지만 막상 서울을 찾은 리커창 총리는 ‘빈손’이었다. 2000억원짜리 펀드와 관련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저 “문화산업 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 확대의 중요성을 공감했다”는 ‘입에 발린 말’이 다였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미르라는 그릇을 만들어놓으면 중국이 다 채워줄 것으로 청와대는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의겸 류이근 이정애 기자
kyummy@hani.co.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