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 주말을 맞은 2일 오후 ‘란파라치’ 학원 문아무개 원장(가운데)과 수강생들이 서울 강남구의 한 예식장을 찾아 축의금 접수대 앞을 서성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
“언니, 얼마나 할 거야? 김영란법 때문에 얼마 해야 되는지 모르겠네.” “이거도 김영란법 적용되는 거야?”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첫 주말이던 1일 저녁, 중년 여성 두명이 서울 강남의 ㅅ병원 장례식장 문 앞을 들어서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곳에는 김영란법상 공직자에 해당하는 이의 부친상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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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금은 무조건 10만원 김영란법은 수십년간 이어져온 장례문화에 벌써부터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여성은 “보통은 얼마나 친한지, 저쪽에서 우리 집 경조사 때는 얼마나 부조했는지 등을 따져서 액수를 결정했는데, 이제는 김영란법 위반인지를 먼저 따지게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은 “당장 불편한 마음은 있지만, 멀리 보면 불필요한 허례허식도 줄어들고 좋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확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례식장 내부에 화환은 많았다. 장례식장 직원도 “화환 수가 특별히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화려한 고가의 화환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 꽃배달 서비스 업체 직원은 “김영란법 시행 첫날 주문이 뚝 끊겼는데, 며칠 지나 주말이 되니 다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대신 가격이 떨어졌다. 지금은 최저 4만9천원짜리 화환까지 있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또 다른 꽃집도 “화환을 문의하는 건수가 특별히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10만원 미만짜리”라고 말했다.
란파라치 수강생 ㄱ씨가 몰래카메라를 착용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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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파라치’도 기지개 란파라치 학원을 운영하는 문아무개씨도 1일 저녁 학원 수강생 2명을 데리고 이곳을 찾았다. 지난달 28일부터 신문 부고란을 스크랩해 김영란법상 공직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상주인 곳을 골라낸 데가 이곳이다. 이들의 무기는 몰래카메라다. 카메라를 겉옷에 넣어, 긴 선으로 연결된 렌즈를 왼쪽 소매 끝으로 빼서 촬영을 하고, 품 안에 숨긴 본체로 조작을 한다. 카메라로 무장한 수강생들에게 문씨는 “긴장하지 말고 태연하게 찍어야 된다. 선생님은 옷도 흰색이라 눈에 띌 수 있으니까 눈에 띄지 않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초보 란파라치들의 첫 실습 무대인 셈이다.
주요 대상은 화환이었다. 이들은 조문객인 양 여러 빈소를 어슬렁대기 시작했다. 소매에 달린 몰래카메라로 비치된 화환을 촬영했다. 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경조사비는 최대 10만원이다. 10만원의 경조사비에는 현금뿐만 아니라 화환, 음식물, 기타 선물 등의 물품도 포함돼 있다. 문씨는 “이 화환들만 해도 대략 15만원에서 30만원 정도 하는 걸로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김영란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조의금 장부에도 도전했지만 조문객의 이름이 적힌 방명록만 촬영할 수 있었다. 문씨는 “화환을 보낸 사람이 조의금도 냈으면 합쳐서 10만원이 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튿날인 2일, 문씨 일행은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을 찾았다. 생활정보지 광고 등을 통해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이곳에서 결혼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했다. 문씨는 “란파라치 활동을 하기에 엄숙한 분위기의 장례식장보다는 결혼식장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결혼식장 이름을 잘못 알아 한차례 혼란을 겪은 뒤 이미 예식이 시작된 직후에 현장에 도착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일행 중 한명이 카메라를 소매 속에 숨기고 촬영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옆에서 돕는 보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날도 방명록만 찍었을 뿐 축의금 장부를 직접 촬영하진 못했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부업으로 란파라치에 도전한 50대 남성 ㄱ씨는 첫 란파라치 활동에 대해 “원장님이 잘했다고 했다. 촬영한 방명록에 금액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원장님이 그걸 확인하는 노하우가 다 있다고 하니 좀 더 배워야겠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여러 사업을 하면서 단순한 인허가에서조차 부정부패가 너무 심한 것을 겪었기 때문에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걸 매우 환영하고, 직접 기여하고 싶어서 란파라치가 되기로 했다”며 “포상금은 내가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문씨가 수강생들에게 카메라를 시세보다 값비싸게 판매해 폭리를 취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ㄱ씨는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포상금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지 않다”면서도 가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문씨는 “카메라 구매를 강요하지 않는다. 강의를 들은 수강생 중 일부만 카메라를 구매한다”며 “금품을 받은 사람과 준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등을 추가적으로 조사해 촬영한 영상을 캡쳐한 이미지와 함께 국민권익위원회나 관할 경찰서에 신고할 것”이라고 했다.
신고 대상이 과태료 처분 등을 받으면 이들이 포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경찰청 관계자는 “화환을 포함해 10만원이 넘는 경조사비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 정도로 신고한 것은 내사종결될 사안”이라며 “해당 화환의 가격과 부조금 내역 등 입증 가능한 증거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개된 곳에서 이뤄지는 다른 사안과 달리 김영란법 위반 행위는 주로 사적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제3자가 확인하기 어렵다. 김영란법 보상·포상제도는 내부 제보자의 적극적인 신고와 사전 예방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오히려 단속을 명분으로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사적인 공간을 촬영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입수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소지도 있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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