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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5, 2016

[단독] 연천 530GP 사건 '김동민 일병' 11년째 독거방에 있다 국군교도소 재소자 출신들 증언.."동민이는 특별관리 대상이다"

연천 530GP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8사단 최전방 530GP에서 GP장을 포함한 장병 8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국방부는 김동민 일병을 단독범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김 일병은 대법원의 상고를 포기하고 고등군사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유족들은 김 일병은 범인이 아니라며 지금까지 12년째 진실을 밝히기 위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
사건 이후 유족들은 김 일병과 몇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장호원 국군교도소에 찾아가 면회를 신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민감한 사안’이라며 근황이나 교도소 수감 여부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 실제 교도소에 있는지 폐쇄회로(CCTV) 화면이라도 보여달라고 했으나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 후 유족들은 김 일병이 국군교도소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 측은 “김 일병이 면회를 거부해서 안 된 것이다. (수형자에 대해서는) 인권과 연계되기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김 일병이 국군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고 공식 확인된 것은 2012년 9월13일이다.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형태 의원(무소속)이 국군교도소에 찾아가 김 일병을 직접 면담했다. 김 의원과의 면담장에 나온 김 일병의 모습은 마른 체형에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복장은 수형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으며, 검은 뿔테 안경을 착용했다. 처음 수감될 당시와 비교하면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전방부대 총기난사 사건의 피의자인 김동민 일병이 2005년 6월24일 국방위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은 뒤 헌병과 수사관의 호위 속에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방부대 총기난사 사건의 피의자인 김동민 일병이 2005년 6월24일 국방위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은 뒤 헌병과 수사관의 호위 속에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 일병은 “네가 진짜 범인이냐, 아니냐를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김 의원의 말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번에는 “2008년 5월7일 고등군사재판정에서 말한 것이 지금도 유효하냐”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김 의원이 물은 ‘고등군사재판정에서 말한 것’은 당시 김 일병이 재판장한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라며 질문을 했다. 재판장이 “무슨 질문이냐”라고 묻자 김 일병은 자신의 범행이 “말뿐이지,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재판장은 “직접증거는 없지만, 주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판결을 한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것을 재차 확인한 것인데, 김 일병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것에 대해 ‘노코멘트’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증거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이전의 주장을 유지했다. 김 의원과 유족들은 이것을 김 일병이 심경의 변화를 보인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김 의원과 동행했던 보좌관은 “김 일병이 내내 울기만 했다”라고 전했다.
국회 국방위원인데도 김 일병의 만남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면담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일명 ‘보안각서’를 쓴 것이다. 김 의원과 김 일병의 만남은 국군교도소 내에 마련된 특별 장소에서였다. 그때도 김 일병의 교도소 생활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외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기자는 국군교도소에서 김 일병과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의 증언이 담긴 녹취록 2건을 입수했다. 여기에는 김 일병의 최근 근황이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다.
6월19일 대전 국립현충원 사병2묘역에서 연천 530GP 사건 1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 정락인 제공
6월19일 대전 국립현충원 사병2묘역에서 연천 530GP 사건 1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 정락인 제공
“억울해하고 뭔가 복수심이 차 있다”
이 중 한 명인 A씨는 2014년에 국군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에 따르면, 김 일병의 모습은 사건 당시나 김형태 의원이 면담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는 “사건 당시 얼굴하고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체형도 날씬하고 뿔테안경을 쓰고 있고, 그냥 시골아이처럼 순박하다”고 전했다.
A씨가 수감돼 있을 당시 국군교도소에는 사형수가 3명 있었다. 2011년 해병대 해안 소초에서 총기를 난사해 장병 4명을 살해한 김민찬 상병(26)과 1996년 강원도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총기난사로 3명을 살해한 김용식씨(41), 그리고 김동민 일병(32)이다. A씨는 김 일병이 줄곧 독거방에서 지냈다고 전했다. “(국군교도소에는) 사형수가 몇 명 있었지만 그 친구는 독거방만 쓴다”라며 “우리도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고 얘기도 몇 번 못해 봤다”고 말했다. 
김 일병의 일상도 전했다. “(교도소 내에서) 잡초도 뽑고 동물도 키우고 하는데, 동민이가 그걸 맡았다. 동물도 키우고 고양이나 토끼 밥 주고, 화단 가꾸는 것도 맡아서 했다”는 것이다. A씨는 김 일병에 대해 “전혀 사고를 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사고를 치거나 싸움을 한 적도 없었다”며 김 일병이 총기를 난사해 장병 8명을 살해했다는 것을 의아해했다.
A씨는 김 일병이 특별관리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김 일병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대화하는 것을 보면 교도소 관계자들이 제지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형수들은 별다른 제지가 없지만 유독 김 일병에 대한 제한이 심하다고 했다.
A씨는 또 “김동민에게는 어떤 느낌이라는 것이 온다.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대략적으로 보인다. 자기가 말은 안 하지만 계속 억울한 뉘앙스를 비친다. 내가 얘기해 보고 봤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억울해하고 뭔가에 복수심이 차 있는 것 같았다. 그게 군대를 향해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억울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은 A씨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는 또 김 일병이 교화가 많이 된 것 같다며 유족들에게 면회해 볼 것을 권유했다.
김 일병의 면회가 안 되고 있다는 유족들에 따르면 “다른 사형수들도 면회를 하는데 동민이만 안 된다는 것은 이해 안 간다. 나는 면회를 거절당하는 것을 몰랐다. 그때의 느낌은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A씨는 끝으로 “만약 재심을 하거나 국군교도소 생활에 대해 증언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언제든지 (증언을) 하겠다. 정의로운 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의 말을 종합하면 김동민 일병은 국군교도소 독방에 수감돼 있다. 교도소 내에서는 동물을 키우거나 화단을 가꾸는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가 없고 만약 누군가와 대화하려는 모습이 교도소 관계자의 눈에 띄면 곧바로 제지당한다. 김 일병이 억울해하는 표정이고, 뭔가에 대한 복수심에 차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지난해 국군교도소에서 출소했다. A씨와도 친하게 지냈다. B씨는 김동민 일병에 대한 면회와 관리 자체가 다른 재소자들과는 달랐다고 전했다. B씨가 본 김 일병은 항상 혼자 있었다. 말수가 없고, 종교 활동도 거의 나가지 않았다. 김 일병이 기거하는 독거방은 나름대로 시스템이 잘돼 있다고도 했다. 김 일병이 책을 읽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고 한다. B씨에 따르면, 김 일병이 한번은 같은 사형수인 김용식씨와 3~4개월 정도 같이 생활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가 “동민이 성격 때문에 같이 못 있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도 A씨와 같이 김 일병이 특별관리 대상이라고 말했다. “특정 교도관이 있었다. 동민이를 담당했던 수사관(부사관)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수사관이 항상 동민이만 보러 가고 식사할 때도 거의 같이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수사관은 국군교도소에 근무했으며 재소자들을 민간 교도소로 이송할 때 통제하기도 했지만 상주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B씨의 말은 국군교도소에는 김 일병만 전담하는 수사관이 있다는 뜻이다.

국군교도소장에게 면담요청서 보내
연천530GP피격사건전사자유족회(유족회) 측은 김동민 일병에 대한 면회를 재차 추진했다. 지난 9월26일 오전에는 박영섭 유족회장이 직접 면회를 갔으나 역시 불허됐다. 교도소 측은 “김 일병이 면회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교도소 측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며 육군교도소장 면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족회 측과 연천530GP피격사건진상규명촉구국민협의회(국민협의회)는 국군교도소장 앞으로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9월28일 발송했다. 
또 국방부 장관과 국민권익위원장 앞으로는 김 일병의 수감생활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송영인 국민협의회 대표는 “국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재소자의 말에 따르면 김 일병이 11년째 독거방에서 생활하고, 또 일반 재소자와 접촉을 제한하는 것과 사건 발생 당시 수사관이 감시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두 단체는 향후 육군교도소 앞에서의 기자회견 등을 계획하고 있다.  

“군이 의도적으로 김 일병과 접촉을 막고 있다”
- 박영섭 연천530GP피격사건전사자유족회 회장 인터뷰​ 

© 박영섭 제공
© 박영섭 제공
9월26일 면회가 왜 성사되지 않았나.
이날 오전 9시에 7군단 위병소에 도착했다. 국군교도소에 가려면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위병소에서 교도소에 전화하니 면회가 가능하니 기다리라는 연락을 받았다. 약 1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교도소 측에서 면회가 안 된다는 연락이 왔다. 김 일병이 면회를 거부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다음 날에라도 면회할 테니 접수해 달라고 신상정보를 알려줬다. 그날 오후 5시30분쯤 교도소 측에서 전화가 와서 재차 안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진짜 김 일병이 거부한다고 보는 것인가.
우리도 그게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김 일병이 거부하는 것인지 교도소 측에서 의도적으로 접촉을 막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고, 이를 위해 김 일병이 자필로 써서 거부의사를 전해 달라고 했다. 동민이 필체가 있으니 그것과 대조해 보려는 것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안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 일병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라며 거부했다는 것이다.
군이 김 일병과 유족의 접촉을 막을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 지금까지 유족이 면회를 요청하면 군 교도소는 김 일병 핑계를 댔다. 실제 김 일병이 면회를 거부하고 있는지 확인된 것은 없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군에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것을 우려해 유족과 김 일병의 접촉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본다.
김 일병의 면회가 성사되면 무엇을 물어보려 하는가.
우리는 김동민이 범인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유족이 확보하고 공개한 자료를 근거해서 말하는 것이다. 김동민은 범인일 수가 없다. 증거도 자백뿐이고, 당시 동선도 맞지 않을뿐더러 김 일병이 범행하는 것을 본 장병도 없다. 우리는 김 일병을 통해 그동안의 의문점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국방부가 떳떳하다면 김 일병과 유족의 면회를 주선해서 의문점을 해소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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