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무늬만 법인차' 막는 법, 기재부 통상마찰 우려 '총액규제'에 여전히 난색]
수억원대 고급차를 업무용으로 구입한 뒤 사적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무늬만 법인차'를 규제하는 방안이 정부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의원들은 비용처리 총액을 제한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총액 상한 설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는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합의에 실패할 경우 연간 1조원 넘는 탈세를 계속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7일 오후 조세소위원회를 열어 법인차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규제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을 논의한다. 현재 국회에는 법인용 차량 구입비에 대해 총액 기준으로 1대당 3000만∼5000만원까지 경비처리를 해 주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현행법은 업무용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임차하는 데 지출한 비용은 물론 운행과 유지·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에 대해서도 전액 필요경비 산입을 허용하고 있다. 경비처리를 제한하면 한해 최대 1조4000억원의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4일 연간 감가상각비용을 1000만원 선에서 인정해 주는 안을 조세소위에 제출했다. 당초 정부는 임직원 전용 보험 가입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금액 제한 없이 차량 관련 비용을 모두 손금에 산입할 수 있도록 했지만 수정안에서 '연간 1000만원'이라는 한도를 설정했다.
하지만 수정안 역시 경비 이월을 통해 사실상 자동차 구입·운영비 전액에 대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어서 탈세 또는 절세를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2억원짜리 고급 스포츠카를 법인용으로 구입해 개인적으로 사용하더라도 20년간 비용을 나눠서 처리할 경우 차량 구입비용을 전액 법인의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중간에 차를 1억원에 매각하더라도 차액인 1억원에 대해서는 10년에 걸쳐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안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수정안은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했다"며 "총액 기준으로 비용을 제한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호주와 캐나다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특히 총액 기준으로 한도를 설정할 경우 자칫 고가의 수입차를 차별하는 인상을 줘 통상 마찰이 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산차와 수입차에 대해 똑같은 한도를 설정하기 때문에 통상마찰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이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국산, 수입차를 막론하고) 모든 차에 적용될 한도를 설정하는 것은 정당한 조세 정책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권영진 기재위 전문위원은 "금액기준으로 손금산입 한도를 설정하는 것은 국산차와 수입차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게 되므로 '차량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직접 위반하는 것도 아니다"며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일정한 금액을 기준으로 손금산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세소위 위원들은 정부안에 난색을 표하면서 재수정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총액한도 설정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의원 발의안이나 정부안이나 모두 무분별한 법인차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통점이 있다"면서도 "총액한도 설정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안도 결코 약한 내용이 아니다"며 "일단 제도가 먼저 작동하도록 한 뒤에 시행 과정에서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논의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오는 30일로 예정된 기재위 전체회의 때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안대로 다음달 2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을 하게 된다. 이번 국회 회기에 처리되지 않을 경우 내년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어 추가 논의 없이 폐기될 공산이 크다.
시민단체들도 정부의 태도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정부안에 대해 논평을 내고 "사업자들의 업무용 차량의 사적 사용과 과도한 고가차량을 업무용 차량으로 구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훼방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국회는 정부와 달리 시민들이 바라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양영권 기자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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