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1년, 편집국에서 작은 책자를 받았다. 언론보도백서였다. 누가 만들었을까, 봤더니 기독교복음침례회, 구원파였다. 그들은 2014년 4월16일부터 9월15일까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일간지, 인터넷언론 등 310여 곳 언론사에서 쏟아낸 8만5000여건의 구원파 관련 보도를 전수 조사해 이 중 1만6000여건에 대해 유례없는 정정 및 반론보도청구에 나섰다. 백서에는 199건의 정정·반론 보도문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나와 있다.
87페이지 분량의 백서에는 ‘억울함’이 있었다. 백서는 △세월호 참사의 왜곡된 언론보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언론대응 △기독교복음침례회 언론대응의 결과 순으로 구성됐다. 백서에 등장한 반론보도 리스트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등장한 정부비판을 ‘구원파’와 ‘유병언’으로 덮으려했던 언론의 무차별 보도 흔적이 남아있었다. 구원파는 세월호 참사 이후 신도들과 관련된 기업이 현재 파산에 이르렀거나 청산 수순을 밟고 있고 정상적인 구직 역시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백서에는 구원파 관련 보도 분석, 언론대응 일지, 주요 쟁점, 반론보도 리스트, 언론대응의 한계가 냉정하게 담겼다. 구원파는 “언론의 무차별적 비난 보도와 허위 악의 보도, 정치권력에 편향적인 보도와 선정적 보도, 시선 돌리기식 보도가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을 향해 쏟아졌다”고 진단했다. 그들은 “막장 드라마 같은 보도에 우리가 굳이 대응해야하는지 고민했지만 그냥 넘어간다면 잘못된 보도행태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오보 대응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 언론보도백서 가운데 일부. | ||
▲ 2014년 7월 22일 경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를 전남 순천의 모 장례식장에서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옮기기 위해 엠블런스에 옮겨 싣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
시사IN이 보도한 유병언 자필문서를 보면 그가 도주하는 도중에도 언론에 대한 실망감이 어느 정도였는지가 등장한다. 유병언은 “권력 휘하에서 기식하는 언론인들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도 있어온 듯하다는 걸 실감해본다. 근간에 방송을 청취하다 보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마구 지어내기가 일쑤인 것을 듣고 보는 이들은 속고 있으면서도 판단력이나 비판력마저 상실한 상태인 것을 알아야 할 텐데”라고 적혀있었다.
대규모 정정 및 반론보도 청구는 언론사측에서 대부분 구원파 입장을 반영하며 끝이 났다. 구원파는 그러나 “본 교단의 언론대응이 우리사회의 언론보도 양태를 바꾸기에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 언론은 이미 권언유착이 심각한 수준이며, 세월호 보도 참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일부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언론대응 과정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같은 진단은 참사 이후 언론보도 탓이다. 2015년에도 언론은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참사의 구조적 문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진상규명을 원하는 국민의 염원이 담긴 세월호 청문회가 열렸지만 지상파3사는 물론 YTN과 연합뉴스TV등 보도전문채널에서도 청문회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다만 김동수씨의 ‘자해 소동’만 단신 처리됐다. 언론은 아직도 ‘기레기’라는 불신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모른다. 또는 알고도 무시하고 있다.
▲ 세월호 참사 이후 구원파 관련 언론보도백서. | ||
“통곡과 아우성 속에 사람과 앰뷸런스와 천막이 뒤엉켰던 진도 팽목항은 적막하고 쓸쓸”(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하기만 하다. 여전히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는 팽목항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의 심리치료로 끝난 사건이 아니다. 언론의 눈이 향해야 할 곳을 정확히 가리켜야 현장의 기자들도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언론은 올바른 보도로 사회를 치료할 의무가 있다. 2016년에는, 구원파가 낸 언론보도백서에서 부디 교훈을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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