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이 몰리는 도시인 세종시가 자영업자들의 무덤으로 전락하고 있다. 주택청약 시장은 몇십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지만 상가·오피스텔 등 상업용 부동산은 공급과잉과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초토화됐다.
정부부처 이전 4년차를 맞아 세종시는 인구 21만명 규모의 중소도시로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세종시는 지난해 인구 순유입률이 29%로 전국 시도 가운데 단연 수위를 달렸다.
지난 2014년 말 기준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 증감률은 각각 22.5%, 25.0%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이런 통계는 수개월 반짝 개업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세종시 자영업자들의 빛과 그림자를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상가 공사비를 받지 못해 유치권을 행사하는 건설사까지 속속 나타나는 판국이다.
정부청사 입주 초기만 해도 첫 마을 주변 상가들은 공무원들의 탄탄한 수요를 등에 업고 순항하는 듯했다.
하지만 차별화되지 않은 업종 때문에 얼마 못 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경제부처의 한 과장은 "처음에는 첫 마을에 김밥집만 생겨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며 "지금은 청사 주변에 새로운 메뉴의 식당이 많아 굳이 첫 마을로 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비슷한 업태이다 보니 출혈경쟁도 심각하다. 미국 이민생활을 접고 몇년 전 세종시에 편의점을 낸 최모(62)씨는 "반경 100m 안에 편의점이 네 개에 달할 정도"라며 "모국에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가게를 냈는데 유지가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비싼 분양가와 임대료는 자영업자들이 세종시를 등지는 가장 큰 원인이다. 첫 마을 일대 1층 전용 42.9㎡ 상가의 분양가격은 8억2,000만원 수준이다.
설 연휴를 앞둔 세종시는 더욱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상가와 오피스텔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지만 임차인을 찾지 못해 건물 외벽마다 커다랗게 '임대' 현수막만 펄럭이고 있었다. 텅 빈 상가의 유리창 너머로는 임차인이 버리고 떠난 사무용품만 먼지가 쌓인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상가 유리창 외벽에 덕지덕지 붙은 임대인과 부동산 중개업소의 전화번호 팸플릿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한솔동 첫 마을 1단지에 3년째 거주 중인 김모씨는 "처음에는 모든 아파트 단지 내 상가가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임차인이 넘쳤다"며 "임대기간이 끝나고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후속 임차인을 찾지 못해 동네 전체가 흉물스럽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세종시 입주에 맞춰 꾼 대박의 꿈이 2년도 채 안 돼 쪽박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한솔동의 한 식당 주인은 "공직자들이 설을 앞두고 재래시장을 방문한다 하는데 굳이 멀리 찾아갈 필요가 있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1층 전용 42.9㎡ 상가의 분양 가격이 8억2,000만원이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도 상권이 발달한 위례나 마곡지구의 분양 가격과 엇비슷한 수준"이라며 "높은 가격에 상가를 낙찰받았던 점주들이 높은 가격에 상가를 분양하고 자연스럽게 높은 임대료와 가격으로 전가되면서 자영업자들이 실패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시가 처음 조성됐을 때만 해도 상권이 드문드문 조성된 탓에 세종시 주민들과 공무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먼 거리를 찾아가 상권을 활용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편의점 등 비슷한 매장들은 흔해졌기 때문이다. 비싼 임대료 장벽에 막혀 입점 업체가 다양해지지 못한 것이다. 정부청사 인근인 도담동 도램마을 주변 상권도 부동산중개업소와 편의점 외는 상가가 텅텅 비어 있다. 인근 J 중개업소 관계자는 "직원이 2명 안팎인 중개업소는 한 달에 매매·전세 거래 몇 건만 해도 임대료를 낼 정도는 된다"며 "업종 차별화가 안 되니 장사가 안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세종시의 상권 구조조정은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와 이마트가 각각 지난 2014년 11월, 지난해 2월 들어서면서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세종시를 떠받치는 연령대는 30대 중후반의 젊은 공무원들이라 이들이 놀이방에 아이를 맡기고 식당과 미용실·안경점·커피숍을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형마트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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