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의혹에 대한 '마지막 퍼즐'을 맞추었다는 한 팟캐스트 방송 이후 인터넷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언론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금요일 밤 9시, <한겨레 TV>에서 방영하는 시사탐사쇼 '김어준의 파파이스 81회'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이 방송에 정기 출연하는 김지영 다큐멘터리 감독은 지난 1년 반 동안 세월호 참사 원인을 밝히기 위한 탐사취재를 진행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해수부가 공개한 선박자동식별장치(AIS)의 항적 조작설, 세월호의 지그재그 항해, 앵커(닻) 미스터리(세월호 사진과 영상에서 앵커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현상), 선원이 탈출할 때 갖고 나온 의문의 물체 등에 관한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방송은 이제껏 파헤친 의혹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자리였다.
'마지막 퍼즐' 맞춰지나?
결론의 초점은 '사고 당시 세월호의 진짜 항적은 무엇인가'다. 침몰 원인을 밝힐 기초 자료인 항적기록은 '해수부 AIS 기록', '해군 레이더 기록', 그리고 사고 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둘라에이스호의 레이더 기록'이 있는데 셋이 모두 다르다. 이중에서 김 감독은 둘라에이스호의 기록을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본다. 둘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이 직접 현장을 보면서 해도에 좌표를 기록했고, 정부 기록의 잘못된 선수 방향을 증명하는 실제 촬영 영상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군 레이더 기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전문가들과 각종 AIS와 레이더 영상을 분석한 끝에 "세월호가 급변침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좌우로 방향을 바꿨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해군의 기록은 (둘라에이스호와 항적의 좌표는 다르지만) 세월호가 '지그재그'로 항해한 흔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단서를 토대로 김 감독은 하나의 실험을 벌인다. '항해 과정(지그재그)'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해군 레이더 기록과 '항해 좌표(위치)'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둘라에이스호 기록을 통합하기로 한 것이다. 해군의 항적을 문 선장의 좌표 쪽으로 옮겨보았다.
그러자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가 정부와 해군이 밝힌 항적과 달리 인근 섬인 병풍도에 바짝 붙어 운항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화물기사 생존자 최은수씨가 "세월호가 섬을 받아버리는 줄 알았다"고 증언한 것과 같다. 더 놀라운 내용도 있다. 이 '새 항적'을 해당 위치의 해저 지형도 위에 얹어보면, 세월호가 급격히 방향을 트는 이상 움직임(지그재그)을 보인 장소와 바다 밑 산이 솟아있는 장소(수심이 낮은 곳)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김 감독은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서 충격적인 가설을 제시한다. '세월호가 앵커를 내린 채 병풍도 가까이서 운항했고, 앵커가 해산에 닿을 때마다 이상 움직임을 보였으며, 이 과정에서 결국 급변침이 일어나 침몰했다'는 것. 이른바 '앵커 침몰설'이다. 그는 또 사고 당시 해경과 선원이 조타실에서 들고 나온 미상의 물체는 음향을 이용해 해심을 측정하는 '에코사운더' 기록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기록지가 '앵커를 내릴 때' 사용하는 물건이므로, 앵커 침몰설을 정황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김 감독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왜 세월호가 앵커를 내리고 운항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고의 침몰설'까지 제기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사건의 폭발력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현재 세월호 앵커는 선체에서 제거된 상태이며, 해수부는 인양 때문에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논란을 둘러싼 두 반응, '흥분'과 '침묵'
김지영 감독의 주장은 예상되는 파장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만큼, 제3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 그가 여러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장기 취재를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만 취사 선택하는 '확증 편향'에 빠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내용이 방송된 이후 한국 언론이 보인 반응을 보면, 그의 분석이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검증할 기회가 마련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송 이후 인터넷은 대중의 관심으로 들끓었다. 유튜브에 올린 <파파이스> 81회는 지난 20여 일 동안 조회 수 68만을 넘겼고, 댓글도 1500개가 넘게 달렸다(평소 조회 수가 20만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3배 이상 올라간 셈이다). 방송 직후 네이버에 게재된 <한겨레> 기사 '세월호, 병풍도에 바짝 붙어 운항한 이유는?' 역시 댓글이 2200여 개나 달린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소셜 미디어, 블로그 등에서도 앵커 침몰설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며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김 감독을 옹호하는 측은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주장을, 비판하는 측은 '황당한 소설'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그의 가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앵커를 단시간에 내렸다 올리기는 불가능하지 않나', '앵커로 배를 침몰시키는 게 가능한가', '항적도가 단순 오류일 가능성은 없나"와 같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반응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김 감독의 주장을 소개하거나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방송 이후 하루 이틀 동안 "정부가 세월호 희생자 6명에게 28억 6천만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수십 개 쏟아졌을 뿐이다. 이른바 '제도권 언론'에서 김 감독의 주장을 다룬 곳은 <한겨레>와 <미디어오늘>밖에 없다. 의혹에 대한 정부 입장 역시 <미디어오늘>이 전한 합동참모본부의 "해군 레이더 항적은 정확하다"는 짤막한 반론이 전부다.
간간이 개인들의 반론만 눈에 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쓴 오준호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앵커가 배를 붙잡는 힘인 파주력이 닻줄 길이에 비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닻줄 길이는 300미터보다 훨씬 길어야 했을 것"이라며 "김지영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해저 지형도에 맞춰 배가 걸린다는 건 이상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뉴스타파> 최기훈 기자 역시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면서도 "이번 파파이스를 보고 든 생각은 자신들이 세운 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취합해서 논리를 만들었다는 것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더군다나 가정이나 추론을 은근슬쩍 사실인양 끼워 넣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쏟아지는 관심, 보도 안 하나 못 하나
한국 언론은 이처럼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는 의혹 제기에 대해 왜 이렇게 침묵하고 있는 걸까? 우선 보수언론의 경우에는 정권에 부담이 되는 세월호 보도에 대해 한결같이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온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표한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 관련 신문‧방송 보도 모니터 보고서'를 봐도, 청문회가 진행된 3일간 <한겨레>, <경향>, <JTBC> 정도만 청문회 내용과 해경의 위증, 희생자 가족의 분노 등에 대해 보도했을 뿐 조중동과 지상파 3사, <TV조선>, <채널A> 등은 세월호 의인 김동수 씨의 자해 사건만을 부각하거나 침묵을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벌어진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는 보수언론이 가설이 섞인 의혹을 다루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언론은 어떨까? 한 미디어전문지 기자는 "기자들이 '확실한 한 방'이라고 여길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적극적으로 취재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며 "대형 참사의 경우 워낙 진상 규명이 힘든데다 언론 환경도 장기간 관심을 이어가며 취재 시간을 투입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전했다. 한 일간지 기자 역시 "각 출입처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출입처 외 다른 사안은 신경쓰기 힘들다"며 "매일 기사를 쏟아내야 하는 기자들이 한 가지 사안에만 깊이 몰두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부처에 출입한 다른 일간지 기자는 "우선 '고의 침몰'이라는 주장에 명분이 마땅치 않아 해당 사안을 파고들 가치를 판단할 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면서 "김 감독이 다루는 내용이 전문적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결론에 동의하기 위해선 문제를 파고든 과정이나 설명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현실적으로 김 감독이 쏟은 시간만큼 취재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의 기성 언론은 잘 드러나지 않는 실체적 진실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탐사보도를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KBS 지종익 기자는 <탐사보도와 저널리즘>에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이규연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등 탐사보도 언론인을 인터뷰 한 후, 기성 언론이 '이윤 동기', '정파성', '정치권력과의 파트너십', '출입처 관행', '한정된 인력', '재정 문제' 등으로 장기적인 탐사보도를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 언론에서 김지영 감독처럼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에 대해 오랫동안 파고드는 언론인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한겨레21> 정은주 기자 정도가 사고 이후 정부의 조작과 은폐, 구조 지휘 실패 등을 지속적으로 탐사보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김 감독 역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이끈 '프로젝트 부'를 통해 충분한 자금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랜 탐사취재가 가능했다. 구조적으로 이런 취재를 하기 어려운 기성 언론이 세월호 참사 원인을 장기간 추적하면서 김 감독의 주장을 제대로 뒷받침하거나 반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시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김지영 감독은 방송에서 "이제까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텐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올 가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추가로 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다양한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나름대로의 추가 검증을 통해 더 탄탄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지켜볼만 하다.
한 '외로운' 다큐멘터리 감독의 유례없는 장기 탐사취재는 '희대의 특종'으로 기억될까, '고약한 음모론'으로 남게 될까? 김 감독의 가설이 옳으면 옳은 대로 그르면 그른 대로, 그 내용을 면밀히 검증하거나 검증되도록 도와야할 책무는 상당수 언론에 있다. 그러나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언론이 그 책임을 미루면서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가늠할 기회는 자꾸 늦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고립된 채 외면당하고 있거나, 엉성한 모양으로 완성을 기다리고 있거나, 거짓으로 둔갑해 날개치고 있다. 모든 시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지난 1월 15일 금요일 밤 9시, <한겨레 TV>에서 방영하는 시사탐사쇼 '김어준의 파파이스 81회'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이 방송에 정기 출연하는 김지영 다큐멘터리 감독은 지난 1년 반 동안 세월호 참사 원인을 밝히기 위한 탐사취재를 진행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해수부가 공개한 선박자동식별장치(AIS)의 항적 조작설, 세월호의 지그재그 항해, 앵커(닻) 미스터리(세월호 사진과 영상에서 앵커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현상), 선원이 탈출할 때 갖고 나온 의문의 물체 등에 관한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방송은 이제껏 파헤친 의혹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자리였다.
'마지막 퍼즐' 맞춰지나?
▲ 세월호의 항적을 살펴볼 수 있는 세 개의 항적 기록. 김지영 감독이 조작된 것이라 확신하는 정부(해수부) 기록, '지그재그' 운항 과정을 담고 있는 해군 기록, 그리고 둘라에이스호 선장의 좌표 기록. | |
ⓒ <파파이스> 캡처 |
결론의 초점은 '사고 당시 세월호의 진짜 항적은 무엇인가'다. 침몰 원인을 밝힐 기초 자료인 항적기록은 '해수부 AIS 기록', '해군 레이더 기록', 그리고 사고 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둘라에이스호의 레이더 기록'이 있는데 셋이 모두 다르다. 이중에서 김 감독은 둘라에이스호의 기록을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본다. 둘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이 직접 현장을 보면서 해도에 좌표를 기록했고, 정부 기록의 잘못된 선수 방향을 증명하는 실제 촬영 영상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군 레이더 기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전문가들과 각종 AIS와 레이더 영상을 분석한 끝에 "세월호가 급변침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좌우로 방향을 바꿨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해군의 기록은 (둘라에이스호와 항적의 좌표는 다르지만) 세월호가 '지그재그'로 항해한 흔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단서를 토대로 김 감독은 하나의 실험을 벌인다. '항해 과정(지그재그)'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해군 레이더 기록과 '항해 좌표(위치)'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둘라에이스호 기록을 통합하기로 한 것이다. 해군의 항적을 문 선장의 좌표 쪽으로 옮겨보았다.
그러자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가 정부와 해군이 밝힌 항적과 달리 인근 섬인 병풍도에 바짝 붙어 운항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화물기사 생존자 최은수씨가 "세월호가 섬을 받아버리는 줄 알았다"고 증언한 것과 같다. 더 놀라운 내용도 있다. 이 '새 항적'을 해당 위치의 해저 지형도 위에 얹어보면, 세월호가 급격히 방향을 트는 이상 움직임(지그재그)을 보인 장소와 바다 밑 산이 솟아있는 장소(수심이 낮은 곳)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 해군 항적을 둘라에이스호 좌표로 옮긴 '새 항적'을 해저 지형도 위에 얹어보면, 세월호가 급격히 각도를 튼 장소와 바다 밑 산 지역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 |
ⓒ <파파이스> 캡처 |
김 감독은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서 충격적인 가설을 제시한다. '세월호가 앵커를 내린 채 병풍도 가까이서 운항했고, 앵커가 해산에 닿을 때마다 이상 움직임을 보였으며, 이 과정에서 결국 급변침이 일어나 침몰했다'는 것. 이른바 '앵커 침몰설'이다. 그는 또 사고 당시 해경과 선원이 조타실에서 들고 나온 미상의 물체는 음향을 이용해 해심을 측정하는 '에코사운더' 기록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기록지가 '앵커를 내릴 때' 사용하는 물건이므로, 앵커 침몰설을 정황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김 감독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왜 세월호가 앵커를 내리고 운항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고의 침몰설'까지 제기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사건의 폭발력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현재 세월호 앵커는 선체에서 제거된 상태이며, 해수부는 인양 때문에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논란을 둘러싼 두 반응, '흥분'과 '침묵'
김지영 감독의 주장은 예상되는 파장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만큼, 제3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 그가 여러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장기 취재를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만 취사 선택하는 '확증 편향'에 빠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내용이 방송된 이후 한국 언론이 보인 반응을 보면, 그의 분석이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검증할 기회가 마련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송 이후 인터넷은 대중의 관심으로 들끓었다. 유튜브에 올린 <파파이스> 81회는 지난 20여 일 동안 조회 수 68만을 넘겼고, 댓글도 1500개가 넘게 달렸다(평소 조회 수가 20만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3배 이상 올라간 셈이다). 방송 직후 네이버에 게재된 <한겨레> 기사 '세월호, 병풍도에 바짝 붙어 운항한 이유는?' 역시 댓글이 2200여 개나 달린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소셜 미디어, 블로그 등에서도 앵커 침몰설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며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김 감독을 옹호하는 측은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주장을, 비판하는 측은 '황당한 소설'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그의 가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앵커를 단시간에 내렸다 올리기는 불가능하지 않나', '앵커로 배를 침몰시키는 게 가능한가', '항적도가 단순 오류일 가능성은 없나"와 같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반응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김 감독의 주장을 소개하거나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방송 이후 하루 이틀 동안 "정부가 세월호 희생자 6명에게 28억 6천만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수십 개 쏟아졌을 뿐이다. 이른바 '제도권 언론'에서 김 감독의 주장을 다룬 곳은 <한겨레>와 <미디어오늘>밖에 없다. 의혹에 대한 정부 입장 역시 <미디어오늘>이 전한 합동참모본부의 "해군 레이더 항적은 정확하다"는 짤막한 반론이 전부다.
▲ 네이버에서 제목에 '세월호'를 포함한 기사를 시간순으로 검색한 결과 화면. 김지영 감독의 주장을 소개한 <한겨레> 기사 이후로 정부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 |
ⓒ 곽영신 |
간간이 개인들의 반론만 눈에 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쓴 오준호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앵커가 배를 붙잡는 힘인 파주력이 닻줄 길이에 비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닻줄 길이는 300미터보다 훨씬 길어야 했을 것"이라며 "김지영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해저 지형도에 맞춰 배가 걸린다는 건 이상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뉴스타파> 최기훈 기자 역시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면서도 "이번 파파이스를 보고 든 생각은 자신들이 세운 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취합해서 논리를 만들었다는 것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더군다나 가정이나 추론을 은근슬쩍 사실인양 끼워 넣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쏟아지는 관심, 보도 안 하나 못 하나
한국 언론은 이처럼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는 의혹 제기에 대해 왜 이렇게 침묵하고 있는 걸까? 우선 보수언론의 경우에는 정권에 부담이 되는 세월호 보도에 대해 한결같이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온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표한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 관련 신문‧방송 보도 모니터 보고서'를 봐도, 청문회가 진행된 3일간 <한겨레>, <경향>, <JTBC> 정도만 청문회 내용과 해경의 위증, 희생자 가족의 분노 등에 대해 보도했을 뿐 조중동과 지상파 3사, <TV조선>, <채널A> 등은 세월호 의인 김동수 씨의 자해 사건만을 부각하거나 침묵을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벌어진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는 보수언론이 가설이 섞인 의혹을 다루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 선박이 앵커를 내리고 있는 모습 | |
ⓒ <파파이스> 캡처 |
그렇다면 다른 언론은 어떨까? 한 미디어전문지 기자는 "기자들이 '확실한 한 방'이라고 여길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적극적으로 취재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며 "대형 참사의 경우 워낙 진상 규명이 힘든데다 언론 환경도 장기간 관심을 이어가며 취재 시간을 투입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전했다. 한 일간지 기자 역시 "각 출입처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출입처 외 다른 사안은 신경쓰기 힘들다"며 "매일 기사를 쏟아내야 하는 기자들이 한 가지 사안에만 깊이 몰두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부처에 출입한 다른 일간지 기자는 "우선 '고의 침몰'이라는 주장에 명분이 마땅치 않아 해당 사안을 파고들 가치를 판단할 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면서 "김 감독이 다루는 내용이 전문적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결론에 동의하기 위해선 문제를 파고든 과정이나 설명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현실적으로 김 감독이 쏟은 시간만큼 취재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의 기성 언론은 잘 드러나지 않는 실체적 진실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탐사보도를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KBS 지종익 기자는 <탐사보도와 저널리즘>에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이규연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등 탐사보도 언론인을 인터뷰 한 후, 기성 언론이 '이윤 동기', '정파성', '정치권력과의 파트너십', '출입처 관행', '한정된 인력', '재정 문제' 등으로 장기적인 탐사보도를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 언론에서 김지영 감독처럼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에 대해 오랫동안 파고드는 언론인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한겨레21> 정은주 기자 정도가 사고 이후 정부의 조작과 은폐, 구조 지휘 실패 등을 지속적으로 탐사보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김 감독 역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이끈 '프로젝트 부'를 통해 충분한 자금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랜 탐사취재가 가능했다. 구조적으로 이런 취재를 하기 어려운 기성 언론이 세월호 참사 원인을 장기간 추적하면서 김 감독의 주장을 제대로 뒷받침하거나 반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시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김지영 감독은 방송에서 "이제까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텐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올 가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추가로 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다양한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나름대로의 추가 검증을 통해 더 탄탄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지켜볼만 하다.
한 '외로운' 다큐멘터리 감독의 유례없는 장기 탐사취재는 '희대의 특종'으로 기억될까, '고약한 음모론'으로 남게 될까? 김 감독의 가설이 옳으면 옳은 대로 그르면 그른 대로, 그 내용을 면밀히 검증하거나 검증되도록 도와야할 책무는 상당수 언론에 있다. 그러나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언론이 그 책임을 미루면서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가늠할 기회는 자꾸 늦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고립된 채 외면당하고 있거나, 엉성한 모양으로 완성을 기다리고 있거나, 거짓으로 둔갑해 날개치고 있다. 모든 시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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