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상주 기자 =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때 ‘남미의 부자나라’ 소리를 듣던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붕괴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0%를 기록했다. 재정적자는 GDP의 20%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통화인 볼리바르는 지난 2년 동안 92%의 가치를 잃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의 재앙이 피할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유가의 지속과 정정의 혼란으로 인해 국가부도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이로 인해 남미 이웃국가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하버드대학 국제개발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의 리카르도 하우스만 소장은 이날 FT에 기고한 글을 통해 베네수엘라가 저유가로 인한 '디폴트(채무불이행) 도미노'의 첫 번째 희생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2001년 12월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했던 아르헨티나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5위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하우스만은 다른 산유국들과는 달리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팔아 벌어들이는 돈을 한 푼도 저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외채까지 끌어들여 펑펑 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베네수엘라 국고 탕진의 한 가운데 있는 인물은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다. 1998년 12월 56대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된 차베스는 이후 59대까지 4선을 기록하면서 14년간 장기집권을 했다. 차베스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저가주택 공급, 각종 현금 보조금 등 사회주의 복지정책을 펴는 데도 재정을 쏟아부었다. 쿠바와 아이티 등 이른바 형제국가들에 대해 막대한 경제지원도 베풀었다.
그러나 오일 붐이 끝나면서 축제도 끝이 났다. 베네수엘라는 빚더미 위에서 무기력한 처지에 놓여 있게 됐다. 지난해는 베네수엘라에게 악몽 같은 해였다. 2014년 -4%를 기록했던 GDP 성장률은 2015년
-10%로 추락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은 200%에 달했다. 재정적자는 GDP의 20%까지 부풀어 올랐다.
-10%로 추락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은 200%에 달했다. 재정적자는 GDP의 20%까지 부풀어 올랐다.
볼리바르의 통화가치는 지난 2년 동안 92%를 잃었다. 공식 환율은 달러당 6.3 볼리바르이다. 그러나 암시장에서 달러는 공식환율의 150배에 달하는 1000볼리바르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올해 베네수엘라 경제 전망은 이보다 훨씬 암울하다. 만일 지금처럼 저유가 상태가 지속된다면 베네수엘라의 수출은 올해 18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국가 채무 비용만 10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부분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수입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돈이 80억 달러도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수입액은 370억 달러 규모였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외환보유고는 1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무역거래를 하기엔 아주 위험한 나라인 것이다.
정치 상황마저 혼란스럽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총선에서 우파 야권통합연대(MUD)는 총 167석 중 112석을 차지하면서 절대과반을 확보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급진 운동당(Causa R, Radical Cause)은 2일 오는 2019년까지 보장된 마두로 대통령의 임기를 2년 단축하는 헌법 개정을 제안했다. 현행 대통령 임기 6년을 4년으로 단축하고 재선에 제한을 두는 내용이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때부터 서방국가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붕괴는 당장 남미 경제에도 큰 충격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의 국가 채무는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 채권국들에게 금융위기를 전가할 우려가 높은 것이다.
하우스만은 이처럼 심각한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는 놀라울 만치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제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립된 IMF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2004년 이후부터 IMF에 경제 상황을 통보하지 않고 있다. 하우스만은 베네수엘라 발(發)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나서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관리감독을 시작하도록 IMF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베네수엘라가 재앙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수 있지만, 재앙의 지속 기간과 강도를 줄일 수 있는 구제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우스만은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이 권좌에 머물러 있는 한 베네수엘라에 대한 금융지원 정책을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하우스만은 국제사회가 베네수엘라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안 정부를 먼저 구성하는 게 필요하고, 이런 신호를 베네수엘라에 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맺었다.
한편 블룸버그 통신은 3일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가 달러당 1000볼리바르를 넘어 거래됐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달러투데이닷컴의 자료를 인용해 이날 베네수엘라 암시장에서 볼리바르화는 달러당 1003볼리바르에 거래됐다고 전했다. 볼리바르 가치는 지난 2년간 92% 폭락했다. 지난 1년간에만 81% 떨어졌다. 특히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던 지난 1개월 동안 16.9% 폭락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적용하고 있는 공식 환율은 달러당 6.3볼리바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일부 필수품에 대해서는 달러당 13.5볼리바르, 달러당 200볼리바르의 환율을 적용하고 있다.
볼리바르의 폭락은 원유 가격의 폭락 때문이다. 앞날을 점치기 힘든 베네수엘라 정정의 불안도 통화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를 팔아 번 돈으로 생활필수품을 수입하고 있다. 대부분 제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볼리바르 가치 하락은 곧장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현재 경제동향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마지막으로 발표된 베네수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4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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