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는 지난 2월 26일 <"부자들은 부패" "없는자들 깽판"…계층간 혐오 극심>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만든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의 의뢰를 받아 다섯 명의 학자가 지역·성별·연령·소득을 기준으로 선별한 105명을 심층 인터뷰해 공동 연구한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진단 보고서’를 미리 입수해 기사화한 것이다. 매일경제는 3월 10일까지 관련 전문가들 및 국민대통합위원장과의 인터뷰 기사들을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는 인터넷과 SNS에서는 제법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리 크진 않았다. 중앙일보가 3월 19일 외부칼럼으로 한 번 보도한 것을 제외하고, 다른 제도권 매체들이 일절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좌절·자포자기·증오·원한의 공통정서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양상을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로 진단하고 있다. 그 내용은 충격이다.
△ 불안을 넘어선 강박 : 생존에 대한 불안이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강박으로 변모
△ 경쟁을 넘어선 고투 : 협력을 통한 선의의 경쟁 사라지고, 승자독식의 힘겨운 투쟁만 남아
△ 피로를 넘어선 탈진 : 쉬지 못하고 성과와 경쟁에 쫓겨 탈진
△ 좌절을 넘어선 포기 : 상승이 불가능해 희망을 놓아버리는 자포자기의 정서 확대
△ 격차를 넘어선 단절 : 상하위 계층간 단절과 분리의 확대
△ 불만을 넘어선 원한 : 하위계층의 상위계층에 대한 박탈감이 사회적 원한으로 진화
△ 불신을 넘어선 반감 : 차이나 다름에 대한 불관용과 공격 고착
△ 갈등을 넘어선 단죄 : 상하위 계층 간의 적대적 비난과 단죄 확산
△ 경쟁을 넘어선 고투 : 협력을 통한 선의의 경쟁 사라지고, 승자독식의 힘겨운 투쟁만 남아
△ 피로를 넘어선 탈진 : 쉬지 못하고 성과와 경쟁에 쫓겨 탈진
△ 좌절을 넘어선 포기 : 상승이 불가능해 희망을 놓아버리는 자포자기의 정서 확대
△ 격차를 넘어선 단절 : 상하위 계층간 단절과 분리의 확대
△ 불만을 넘어선 원한 : 하위계층의 상위계층에 대한 박탈감이 사회적 원한으로 진화
△ 불신을 넘어선 반감 : 차이나 다름에 대한 불관용과 공격 고착
△ 갈등을 넘어선 단죄 : 상하위 계층 간의 적대적 비난과 단죄 확산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위계층은 하위계층에 대해 “애국심도, 도덕성도 없고…‘전쟁이나 터져서 깽판으로 살자’ 식의 부류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위계층은 상위계층에 대해 "다 부정부패하고, 없는 사람을 골탕 먹인다"고 인식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원한 그리고 분노와 적대가 임계점에 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빈부격차의 확대와 고착’이 그 원인이라며, 한국 사회를 경제력 차이로 인한 위화감과 불만이 극에 달한 폭발직전의 ‘원한(怨恨)사회'로 호명하고 있다.
보고서는 위의 여덟 가지 심리적 특성을 "오늘날 한국인이 안고 있는 공통정서"로 진단하고 있다. 그 공통정서는 경제적 현실과 짝을 이뤄 전체 현실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현실 곧 심리적 현실에 다름 아니다. 보고서는 그동안 땅콩회항, 갑질 횡포, 헬조선, N포세대, 금수저·흙수저 논란들을 통해 한 단면으로만 노정되던 좌절·자포자기·증오·원한의 공통정서(또는 심리적 현실)의 전모를 보여주고 있다.
신분제 사회로의 퇴행
여기서 말하는 ‘공통정서’는 1960년대 시작돼 오늘날 현대사회 연구의 중심축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문화연구’에서 말하는 감정구조(structures of feeling)와 유사한 개념이다. 감정구조란 “특정한 시대, 계급, 집단, 사회구성원 일반이 공유하는 생각이나 감정의 집합”(R. Williams)을 말한다. 이는 구성원들의 실천들을 통해 역사적으로 생성·발전·변화되며,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거나 행위하게 하는 정형화된 사회 심리적 규칙성으로 나타난다.
보고서가 진단한 ‘원한(怨恨)사회’는 조선시대 한(恨)의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반상의 질서’로 불리는 신분제에 기초한 가혹한 억압과 수탈에 따른 증오와 원한 그리고 희망의 부재에 따른 좌절과 포기가 한(恨)의 문화, 한(恨)의 감정구조였다. 지금 우리는 반민주적 군사독재의 퇴행을 넘어 신분제로의 역사적 퇴행을 겪고 있는 것인가? 씁쓸함을 넘어 비통함이 밀려온다.
보고서가 제시한 해법은 해법인지 기만인지…
한편, 보고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반일근무를 하는 ‘반정규직제 도입’을 제1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양극화의 근본 원인엔 손대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임금을 쪼개 노동자들끼리 상부상조하라는 핵심회피의 부실한 처방에 다름 아니다.
또한 보고서는 반정규직제가 지니게 되는 구조적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한 보험과 연금 등 사회안전망 구축, 특권층의 부조리 척결, 위화감 축소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교육·세제·생활 개혁추진 등 세 가지를 추가적인 ‘솔루션’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왠지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겪었던 조작과 동원의 슬로건들과 어슷비슷 겹쳐 보이기도 한다.
원인의 핵심이 경제적 양극화라면 처방의 핵심도 그것의 해소에 맞춰져야 한다. 경제민주화, 분배개선, 부자증세, 복지증대 없이 노동자의 시간과 임금만 나누는 것은 기만이며, 또 문제를 더욱 심화·고착시키는 또 다른 폭압의 전조일 뿐이다.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억압과 좌절을 안겨준 갑질 당사자들의 반성과 사과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4월 13일 총선이 지나면, 정부는 이에 대한 처방으로 꽤나 부산을 떨 것 같다. 제대로 된 해법인지 기만인지 또 다른 억압의 시도인지 잘 살펴볼 일이다.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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