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사활을 건 옥새 투쟁에 돌입했다. 친박계의 공세가 주춤한 틈을 타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한 후 옥새를 들고 부산에 내려가 버렸다. 김무성의 '3.24 거사'다. 김 대표의 거사가 성공할지 실패할 지 아직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점이다. '배신자'의 생환을 도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23일 오후 5시 경 공천에서 탈락한 유승민(대구 동을), 류성걸(대구 동갑), 이재오(서울 은평을), 이종진(대구 달성, 불출마) 의원 지역구를 비롯해 유일호 의원의 빈자리인 서울 송파을 지역 공천을 무공천 지역으로 하겠다고 선언할 때만 해도 변수가 많았다. 비례대표 명단 추인이 안 돼 최고위원회의를 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날 밤 9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비례대표 명단만을 의결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와 원 원내대표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김 대표의 '반란'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날 오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관위원 표결을 통해 유승민 의원 지역구에 '진박' 인증 후보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 후보를 공천키로 하자, 김 대표가 또 다시 '30시간 법칙'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김 대표는 마지막 공관위 회의가 열린 후 기자회견을 열고, 5곳의 무공천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그리고 "후보 등록이 끝나는 내일까지 최고위원회의를 열지 않겠다"며 옥새(당 대표 직인)를 들고 부산에 내려가 버렸다.
친박계는 허를 찔렸다. 김 대표가 후보 등록 마감 시간인 25일 오후 6시까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지 않고, 직인도 내놓지 않는다면 무공천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날 오후 2시 30분에 기자회견을 했으니, 김 대표의 투쟁은 약 27시간 30분가량 지속될 수 있다. 김 대표가 '30시간의 법칙(김 대표의 결심은 30시간을 넘지 못한다는 속설)'이라는 오욕을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공직선거법 49조에 따르면 정당의 당인(黨印)과 대표자의 직인(職印)이 날인된 추천서가 있어야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관위는 원칙적으로 후보자 등록신청서를 받아야 하고, 그 신청서에 당인과 대표 직인이 모두 찍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 직인이 없으면 당이 추천한 공직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옥새 투쟁'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조순형 당시 당대표에 맞서 조 전 대표가 추천한 인사를 배제하기 위해 총무국장을 시켜 당대표 직인을 몰래 빼돌렸던 적이 있다. 조 전 대표는 총무국장을 해임하고 경찰에 직인 도난 신고를 했다. 결국 당대표 직인이 찍힌 두 건의 공천 명단이 선관위에 접수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선관위는 유권 해석을 내려 조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당대표 당무 거부 '사고'로 가정하고 의결 시도할 수도
친박계는 발칵 뒤집혔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5시에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했다. 김무성 대표가 불참했기 때문에 의결 권한이 없는 최고위원회의다. 원 원내대표는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오늘 김무성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최고위 회의를 개최하지 않겠다는 것은 정상적 당무를 거부한 심각한 상황"이라고 비난했다.
원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최고위는 집단 지도 체제이고 합의로 의사 결정하는 민주적 체제이다. 당의 얼굴인 대표가 개인 의견을 사전 조율 없이 정상적 의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언론과 국민 앞에서 독단적으로 (무공천 방침을) 발표한 것은 당대표로서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당 의전 서열 2위가, 1위를 들이받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원 원내대표는 "만약 김 대표가 끝까지 소집과 (회의) 진행을 거부한다면 당헌 30조와 당규 4조, 7조에 의거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우리 새누리당의 공천 신청자들은 공무담임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최고위원들은 회의를 마친 즉시 부산에 내려가 김 대표를 만나겠다는 방침이다. 최악의 경우 김 대표의 당무 거부를 궐위로 유권 해석하고 당대표 직인을 새로 파 김 대표를 제외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진박 공천'을 의결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새누리당 당헌 30조 1항은 "대표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 의장이 되고 대표최고위원이 사고, 해외 출장 등으로 회의를 주재할 수 없을 때에는 권한 대리 규정에 따른 위원이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당규 4조와 7조에는 "임시회의는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혹은 재적위원 3분의 1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의장이 소집한다"고 돼 있다.
문제는 김 대표의 '당무 거부'를 "사고"로 볼 수 있느냐 여부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이 세상에 풀지 못할 문제는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고, 서청원 최고위원은 "당헌 당규에 나온것에 따르면 원내대표가 대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친박의 '친위 쿠데타'가 벌어질 수 있다.
최고위 의결을 강행할 경우 당은 '진박 공천'을 밀어붙이고, 김 대표는 이를 '무효'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김 대표와 친박계의 관계는 끝이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현 상황을 두고 "심리적 분당 상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 무공천은 박 대통령에게 '배신자'에 불과한 무소속 후보의 생환을 돕는 행위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마다 않던 이재오 의원과 유승민 의원, 그리고 '친유승민계'인 류성걸 의원의 복귀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진박' 후보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은 공천 심사를 통과해놓고도 공천장을 받지 못해 아예 선거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친박계 사이에서 '진박 공천'은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다름 없이 통용된다. 박 대통령의 의지를 당 대표가 거스른 사건은 박 대통령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처참하게 제거당한 유승민 의원의 사례가 김 대표에게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 대표의 '반란'은 30시간을 넘기고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성공한다면 김 대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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