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가 '30시간의 법칙'을 깨고 독자 행보에 나섰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김 대표의 옥새 투쟁은 결국 결실을 봤다. 동구을(유승민 의원), 은평을(이재오 의원) 지역 무공천을 끝내 관철해 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자'로 지목한 유승민 의원은 사실상 무소속으로 단독 출마하게 돼 생환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김 대표는 유승민을 얻었고, 박근혜를 버렸다. 박 대통령과 관계는 회복 불능 상태로 들어섰다. 현재 권력과 차기 권력의 싸움만 남았다.
25일 후보 등록을 끝내고 31일부터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돌입하면 박근혜 대통령이나 친박계가 김 대표나 유 의원을 흔들기 어려워진다. 박 대통령은 31일 미국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참석 일정 등 외교 안보 관련 일정 때문에, 친박계는 각자도생을 위해 바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당내 계파 구도의 판을 뒤흔들었다. 친박계의 빈틈을 정확히 노렸다. 김무성 옥새 투쟁이 '신의 한수'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김무성계' 의원들의 공천 탈락을 막아낸 그가, 비박(非朴) 세력의 상징으로 떠오른 유 의원, 그리고 친이계 좌장인 이 의원 지역의 무공천을 관철해내면서 김 대표는 총선 이후 정치 일정을 느긋하게 짤 수 있게 됐다. '여당 내 야당' 수장으로 대권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갈 수 있게 됐다.
김 대표가 옥새 투쟁에서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요인 중 가장 큰 부분은 어이없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자충수 때문이었다. 청와대의 대리인 격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진박 감별사'인 최경환 의원을 내세운 안하무인 식 무리한 '진박 심기'가 현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이른바 '진박 풍선효과(balloon effect)'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당을 짓누르자 유승민 의원이 틈새를 벌렸고 김무성 대표가 이를 정확히 공략했다.
친박계는 허를 찔렸다. "(유승민, 이재오 등) 탈당한 5명의 후보하고 (김무성 대표가) 미리 사전에 (옥새 투쟁을) 조율한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추측할 수 있다(친박계 박종희 공천관리위원)"는 의혹이 제기될 만 하다. '음모론'이다.
어찌됐든 '비박 학살'은 반전을 맞았다. 총선 후 친박계와 '김무성 유승민 연합군'은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특히 김 대표의 임기가 끝나는 7월에 두 세력의 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친박계가 당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비박 세력이 지도부에 1~2명의 최고위원을 밀어 넣으면, 사사건건 주류에 대한 견제가 들어갈 수 있다. 현재 친박계에서는 최경환 의원이 유력 당권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비박 세력도 주자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이런 그림 하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큰 변수로 작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당의 분열로 인해 지지층이 결집할 가능성은 높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박 세력 일부가 이탈하면 선거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 야권 분열에 따른 180석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비박 섞인 180석보다 진박 중심의 150석이 낫다"는 친박 내부의 전략에 비춰봐도, 새누리당의 압도적 승리를 관측하는 당내 인사는 현재 많지 않다. 그렇게 되면 친박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내각제 개헌' 구상도 차질을 빚게 된다.
총선에서 승리하든, 못하든 비박 세력 입장에서 나쁠 것은 없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의석수를 잃으면 잃을 수록 비박 세력의 힘은 커지게 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이상을 달성하더라도 친박계는 비박 세력에 사사건건 '결제'를 받으러 다닐 수밖에 없다.
무소불위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파워도 자연스럽게 약해질 것이다. 당이 추진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막거나, 테러방지법 처리를 밀어붙이는 방식의 국정운영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대선 시점까지 1년 반 가량 남았다. 국회의원 선거는 4년이나 남았다. 비박 세력이 청와대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야당의 공세까지 막아내야 하는 청와대와 친박계가, 과거 유승민 의원을 공격하듯 비박 세력을 찍어 누르기는 어려워진다. 물론 박 대통령이 총선 후 궁지에 몰리면 몰릴 수록 국정원 등 정보 기관 의존성이 커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의 '마지막 무기'지만 이는 양날의 칼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지금 '진박 후보'들이 정말 '진박'으로 행동할까? 선거가 끝난 후 '진박'을 표방했던 그들이 임기 1년 반의 대통령에게 충성할지, 4년 후 공천권을 휘두를 차기 실세에게 충성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2년 총선에서는 80명에 가까운 초선 의원들이 '박근혜 키드'로 국회에 입성했다. 모두 친박이었다. 3년 후 그들 중 최소 절반 이상은 '비박'으로 분류됐다. '진박'은 말장난 뿐일 수 있다. '진박 국회'도 허황된 꿈일 수 있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가 됐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김무성과 유승민으로부터 시작됐다. 공천권을 볼모 잡고 칼을 휘두르던 '박근혜 왕국'의 해도 저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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