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기 방송통신심의위원(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이 2013년 강원도의 한 일간지에 국정원 심리전단의 활동을 옹호하는 내용의 기고를 한 것이 사실은 ‘국정원 작품’이었다는 기사는 우연히(?)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말은 취재 과정에서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은 조 위원과 국정원에 그대로 적용된다. “명확하게 해명을 안 해주시니까 저희는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 위원은 이렇게 답변했다. “의혹을 제기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대통령 추천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답변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 검찰 수사자료 가운데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해 정리한 수사보고서를 입수하게 되었고, 그 이메일의 가장 마지막 수신인이 신원미상의 ‘cho’라는 인물이었다.
검찰 수사보고서에도 신원미상이라고만 돼 있어서 처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자료를 다시 훑어보다가 이메일에 첨부돼 있던 첨부자료에서 단서를 발견했다. 첨부 파일의 제목은 ‘안부인사’였지만 실제 파일에 담긴 글의 제목은 ‘국정원 댓글사건과 개혁의 본질’이었다. 글의 제목을 검색하니 조영기 위원이 강원도의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이 나왔다. 칼럼 내용은 첨부 파일의 글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래서 신원미상의 ‘cho’를 조영기 위원으로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 직원이 조 위원에게 이메일은 보낸 것은 2013년 7월 23일, 칼럼은 이틀 후인 7월 25일자였다. 이메일의 내용은 이랬다.
‘OOOO@OOOO.net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결과는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국정원 직원이 직접 글을 작성한 후 조 위원을 통해 기고했거나, 조 위원이 작성해서 보낸 글을 국정원 직원이 검토한 후 다시 답장으로 보냈을 경우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 마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기사(?)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조 위원은 아무런 일 없다는 듯 회의에 참석했다. 세 명의 기자가 전체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나서는 조 위원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질문을 피하던 조 위원은 기자들이 방까지 따라가서 왜 국정원 직원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인지 묻자 몇 가지 답변을 했다. 그의 해명을 요약하면 “기고는 내가 직접 쓴 것이고, 이메일도 (국정원 직원에게) 내가 보낸 것이다. 강원도 쪽에도 기고를 하고 싶어서 (국정원 직원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의 해명대로 조 위원이 먼저 국정원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한 것은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발신 내역이기 때문에 조 위원이 먼저 이메일을 보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조 위원은 기자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메일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가, 막상 보여 달라고 하자 “왜 그것을 보여 주냐”며 말을 바꿨다.
조 위원이 북한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과 평소 알고 지낼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기고를 부탁하려는 것이었다면 국정원 직원에게 담당자만 소개 받으면 되는 것이지 왜 굳이 자신이 썼다는 기고를 국정원 직원에게 파일로 보냈으며, 답장을 보내는 국정원 직원은 왜 굳이 다시 이메일에 파일을 첨부했냐는 것이다. 물론 국정원 직원에게 언론사 기고를 요청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는 하다.
이번 사례와 비슷한 일은 지난해 국가보훈처에서도 있었다. 보훈처가 ‘나라사랑 교육’ 예산을 올리기 위해 나라사랑 강사를 하고 있는 대학 교수들에게 예산을 증액하자는 내용의 칼럼을 쓰도록 요청했고 일부 교수들이 보훈처가 준 참고자료를 그대로 베껴 실제 언론사에 기고한 것이다.
조 위원이 기자에게 “학자의 양심을 걸고 직접 썼다”고 말한 기고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의혹은 믿지 못하기 때문에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국정원 댓글의혹’이 해소되어야만 국정원과 정치권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 조현미 뉴스타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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