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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
ⓒ 권우성 |
"(삼성전자가) 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문제는 삼성전자가 망했을 때 한국경제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예요. 더 큰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죠."
그의 표정은 답답한 듯 했다. 인터뷰 시간이 100분을 훌쩍 넘어섰다. 기자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삼성전자가 망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전세계 IT(정보통신) 기업 가운데 100년이상 유지해온 곳은 없다"라고 했다. 게다가 이미 삼성전자의 위기는 시작됐고, 삼성그룹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것. 문제는 한 기업의 몰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혹독한 시련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의 파산은 관련 중견기업들의 잇단 도산으로 이어지고, 제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기업들의 잇단 도산은 해고와 실업 증가로 이어지고, 금융시장에선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돈을 빼나갈 것이 뻔하다. 금융위기로 이어진다. 그는 "향후 한국경제가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남미형 경제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를 '삼성발 경제위기'라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박 교수는 전형적인 재벌개혁론자다. 그동안 정부와 재벌주도의 경제성장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양극화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역시 그의 화두였다. 최근엔 정보통신분야에서 관련 기업과 경영전반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그는 최근 3년 동안 핀란드의 대표적 기업이었던 노키아의 실패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노키아에서 그치지 않고 삼성전자가 무너질 경우,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대비해야할지로 이어졌다. 그 내용이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미래를소유한사람들 펴냄)이라는 제목의 책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지난 1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노키아가 진짜 망한 이유
- 노키아를 연구하기 위해 핀란드를 두차례 다녀왔다고 하는데.
"2011년에 처음 갔을 땐 노키아가 망하기 전이었다. 물론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긴 했지만, 대부분 노키아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지 전문가들 뿐 아니라 삼성 현지법인 사람들도 모두 그랬다. 게다가 애플이 2007년에 아이폰을 내놓기 전에 이미 노키아에선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빨리 무너질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그런데 노키아는 그후 3년 만에 무너졌다.
"2014년에 핀란드에 다시 갔다. 노키아 몰락에 대해 국내외 분석이 대체로 판에 박힌듯, 피상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핀란드 알토대학의 부오리 교수를 만났다. 그는 노키아 핵심 경영진 50여 명과 수차례 인터뷰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노키아 몰락을 연구해 왔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알려주기도 했다. 이후 여러 연구소를 찾아다니고, 자료도 모으고, 전문가들과 토론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그렇게 핀란드에서 노키아의 몰락을 따라갔다. 노키아는 핀란드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잘나갈 땐(2000년) 핀란드 국내총생산의 4%를 담당했다. 해외언론들은 이런 핀란드를 두고 '단일 기업경제(one firm economy) 체제'라고 불렀다. 그런 노키아가 결국 망했다. 대체로 애플 아이폰으로 불리는 스마트폰의 혁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노키아는 2006년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싸게, 가장 빠르게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였어요. 그것이 노키아의 경쟁력이었죠. 2007년 이후에도 노키아는 앱이나 소프트웨어보다 원가절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실제 이런 전략이 노키아 성공의 원동력이었고... 물론 노키아도 스마트폰 시대를 예상하고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준비를 했죠. 실제로 시장에 나오기도 했고."
- 그럼에도 사실 노키아 스마트폰은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노키아는 이미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휴대폰의 틀 안에서 점진적인 혁신을 추구했다. 하지만, 애플은 휴대폰 시장 판도를 바꾸는 단절적 혁신, 창조적 혁신으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담아낸 것이다. 사실 애플 같은 후발 도전자 입장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노키아도 내부적으로 혁신을 위해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았지만, 내부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박 교수는 "기득권이 큰 기업일수록 그 기업은 더 비대화되고 관료화되기 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직에선 결국 새로운 것보다 기존의 것을 강화하고 유지하는데 힘을 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노키아가 아이폰과 같은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 그들이 기존 시장에서 갖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는 노키아의 몰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제2의 노키아?... "2014년부터 위기 시작됐지만 이재용 승계에만 관심"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
ⓒ 권우성 |
그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삼성전자로 넘어갔다. 박 교수 역시 노키아 몰락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궁금증이 생겼다고 했다. '과연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다를까. 삼성전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삼성전자도 망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라고. 게다가 삼성이 한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삼성의 위기는 말 그대로 아찔하다.
- 삼성전자도 위기라고 한다.
"(고개를 저으며) 이미 위기가 상당히 진행됐다. 노키아와 삼성전자는 여러가지로 닮은 점도 있다. 이건희 회장과 올릴라 CEO라는 인물의 강력한 리더십이나 원가절감, 지역특화 모델 개발 등도 비슷하다. 게다가 매출 증가에 따라 조직이 관료화되는 모습도 그렇다. 특히 삼성전자의 이익 대부분을 내고 있는 휴대폰 사업이 심각하다."
- 최근에 내놓은 갤럭시 에스7(S7) 역시 시장 반응이 밋밋하다.
"그동안 삼성의 강점은 알다시피 패스트 팔로워(fast-follower) 전략이었다. 창조적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갤럭시 S4까지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확대에 따라 큰 성과를 올렸지만, 이후 S5, S6 등은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이미 신흥시장은 중국의 중저가폰에 밀리고, 프리미엄 시장은 애플에 뺏기는 상황 아닌가. 노키아도 비슷했다. 삼성도 이대로 가면 노키아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다."
- 실제 삼성전자 매출이나 이익 등을 보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2012년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찍은 이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그 당시에만 보더라도(2012년-2013년) 이 회사의 매출(50%)과 이익(70%) 대부분이 휴대폰에서 나왔다. 하지만 2014년엔 전체 매출이 2013년보다 10% 가까이 줄어서 206조2100억 원, 작년엔 더 줄어들어 간신히 200조6500억 원이었다. 영업이익도 2014년에 25조300억 원, 작년엔 26조4100억 원이었다. 2013년과 비교하면 30%이상 줄었다. 노키아처럼 불과 3년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 삼성전자 역시 위기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룹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사업을 개편하고 있는데.
"물론 어느정도 (위기를 넘기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삼성의 위기는 이미 2014년부터 시작됐는데, 이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 현재 진행중인 계열사 합병이나 사업 매각 등은 이재용 중심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는 것 아닌가. 삼성 스스로 위기라고 말하지만, 오로지 관심은 오너의 승계에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삼성발 경제위기... 삼성전자 이대로라면 5년, 10년 안에 사라질 것"
그는 답답한 듯 말을 이어갔다. 박 교수는 "삼성그룹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히 독보적"이라고 했다. 핀란드가 노키아에 의존한 것을 두고 '단일기업 경제'라고 했지만, 한국은 더 심각하다. 오히려 '단일기업 집단'인 삼성에 훨씬 더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2014년 기준으로 삼성그룹 총 매출액이 303조 원이었는데, 그때 우리나라 전체 GDP가 1485조 원이예요. 매출액으로 따지면 GDP대비 20%가 넘죠. 노키아와 비교하면 삼성 쏠림은 더 심하죠. GDP 점유율(GDP대비 부가가치 생산액의 비율)이 2000년에 노키아는 4.0%였지만, 삼성그룹은 2013년에 4.7%였어요. 법인세도 노키아가 14.2% 책임졌지만, 삼성은 19.3%(2014년기준)나 냈어요. 수출도 노키아는 핀란드 수출의 20.7%(2000년)였지만, 삼성은 28%예요."
여기서 그의 생각은 만약 삼성전자가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로 이어진다. 그는 "사람도 늙으면 죽기 마련"이라며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노화가 필연적인듯 기업도 언젠가 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삼성이 망하면 한국경제는 어떻게 되느냐는 것. 그는 삼성전자의 실적 감소에 따른 주가 하락을 놓고, 삼성 몰락 시나리오를 직접 그렸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 책을 보니 시뮬레이션의 결과에 자못 놀랐는데.
"휴대폰 판매 부진 등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가장 높았을 때 대비해 70% 하락할 경우, 그룹의 여타 계열사 주가도 폭락하게 된다. 지배체제의 핵심인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주가는 각각 70%, 63% 급락한다. 이 영향으로 다시 삼성전자 주가는 87%까지 폭락한다. 이것은 사실상 삼성그룹 계열사의 파산을 의미한다."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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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망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삼성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삼성 계열사 주가가 폭락하면 금융시장이 휘청거린다. 삼성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위태롭다.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는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외국인이 돈을 빼내가면 외환위기가 오게된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아까 법인세 이야기했지만,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에 19조 원을 투자하고 있어요. (삼성이 망하면) 이 돈도 다 날아가는거예요. 삼성전자와 관련된 중소하청업체들도 타격을 입죠. 사람들은 삼성이 망하도록 가만히 있겠느냐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노키아도 한순간이었어요. 이번 시뮬레이션은 그나마 보수적으로 잡은건데... 정말 예전 IMF 이상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어요."
- 이런 가정이 실제로 언제쯤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
"(잠시 생각하더니) 좀더 연구를 해봐야 한다. 삼성전자가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빠르면 5년 안에 일어날 수도 있다. 10년은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이 남긴 것
- 5년 안에, 10년 안에 삼성전자가 망하고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
"그렇다. 삼성전자가 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한국경제는 살아남아야 하고,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 근간이 흔들리고, 앞으로 중남미식 경제로 떨어질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대안은 뻔하다. 다시 재벌개혁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 때마다 나온 단골메뉴다. 박 교수는 "왜 아직도 재벌개혁이 나오나"라고 반문한다.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소개한 것은 이스라엘식 재벌개혁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2013년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경제력집중법을 통과시켰어요. 우파정권이 지난 2010년부터 준비를 했던 것인데, 핵심은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바꾸고, 경제력 집중을 거의 없애는 거예요. 아주 강력한 법이에요. 이스라엘의 1, 2대 재벌은 금융 또는 비금융 사업 가운데 택일을 해야 하고, 지주회사와 자회사 구조로 지배구조를 짜야 합니다. 그것도 법 시행 후 6년 안에 하도록 했어요."
그는 지난해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해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스라엘 우파 정부가 이런 강력한 재벌 개혁정책을 추진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고 했다. 이같은 특정 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으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으로) 시장경제도 되지 않고, 정치적 민주화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앞으로 5년 안에 우리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어렵다고 했다. 또 총선과 대선에 맞춰, 경제민주화가 다시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제대로 된 실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것이기도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마지막으로 가고 있었다.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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