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필리버스터 스타’로 떠오른 은수미 의원
국회 본회의장 발언이나, 청문회를 통해 ‘스타 정치인’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테러방지법 제정안 직권상정으로 43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도 예상과 달리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매면서 뜻밖의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10시간18분, 최장 본회의 발언 기록을 남기게 된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53)이 대표적이다. 필리버스터 후 그의 의원회관 사무실엔 격려 전화가 쇄도했고, 이틀 새 1000건이 넘는 후원금 행렬도 이어졌다.
은 의원은 2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대한 버텨서 다른 의원들이 발언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이런 (여론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필리버스터는 어떻게 하게 됐나.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나는 ‘지더라도 싸우면서 지자’는 쪽이었다. (필리버스터에) 찬성하는 사람들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위원회 소속으로 테러방지법을 잘 아는 김광진 의원이 1번을, 내가 2번을 하게 됐다. 오후 6시30분부터는 밥도 물도 안 먹었다. 생리현상 때문에 곤란해지면 안되니까.”
- 과거 고문당한 얘기가 많이 회자됐다. 떠올리고 싶은 기억이 아닐 텐데.
“정치인이니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 반응이 뜨겁다.
“나도 놀랐다. 발언 끝나고 의원실에 와보니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격려·후원 전화라고 했다. 내 후원계좌가 3개인데 24~25일 사이에 한 계좌로만 천몇백건의 후원금이 들어왔다. ‘응원합니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이름도 없이, 1만원, 5000원, 2만원 이런 소액이.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분이 전화해서 ‘신기록 세웠다’고 알려주더라. 하루 언급량이 50만건 넘었다고.”
- 왜 그렇다고 보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내가 했던 것 같다. 체력도 약하고 왜소한 사람이 열 시간 넘게. ‘잠들기 전에 은수미가 있었는데 깨고 나서도 은수미가 있더라’는 메시지도 받았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들과 함께하고 싶어한다는 신호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국민들은 함께하고 싶다는 구조신호를 계속 보냈다. 세월호도, 메르스도 너무 참담했으니까.”
- 울컥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만난 청년 아르바이트생, 유성·쌍용차 노동자들, 고공농성하는 사람들, 로또방에서 로또 긁고 있는 일용직 아저씨들, 횡단보도에서 손녀 학원 가는 뒷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현실이 이렇습니다’하던 어떤 할머니…. 이렇게 해도 결국 법은 통과되고 힘든 사람들이 많이 생길 텐데,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지 않겠다, 국민들을 믿는다, 그런 얘기밖에 못하는 게 가슴 아팠다.”
- 이번 일로 인지도가 많이 올랐다.
“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인권보호, 특히 청년들을 위해 잘 쓰이면 되는 사람이다. ‘이 자리는 내 거야, 내가 얻은 자리야’ 생각하는 순간 정치하면 안된다.”
- 메시지에 체험이 녹아 있었다.
“나는 ‘양심수였다’는 훈장이라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비참한 기억을 훈장으로 치장 못한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비참을 얘기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차마 못하는 비참하고 지질한 얘기를 내가 대신 해야 한다. 그러려면 쉽지 않지만 내 체험도 얘기해야 한다.”
- 발언 끝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계속 같은 얘기를 해왔지만 세상은 더 나빠지고, 사람들은 더 고통스러워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구하지 못했는데, 내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는데, 그런데 또 같은 얘기를 하는구나, 그래도 해야지, 앞으로도 계속할 거야, 그러면서 운다.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힘은 빠져 있지, 거리두기는 안되지, 갑자기 사람들이 내 안으로 확 들어와버린 거다.”
- 지지 시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포기하지 말고 태산같이 버티면서 옳다는 걸 하시라. 끝까지 응원하겠다. 살아 있는 한 응원할 테니, 힘내시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