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은 어제 “한국과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협의하기로 했다고 해서 반드시 배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사드 배치에 급급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사드 논의 공식 발표 당시 “강력 지지한다”던 입장과는 차이가 크다. 한국이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이상기류는 미국이 한·미 실무협의 약정서 체결을 돌연 연기했을 때부터 감지됐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대북 제재에 중국을 동참시키기 위한 압박 카드로 사드를 활용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국이 사드 배치 입장을 굽히지 않는 사이에 중국은 미국이 보낸 사드 배치와 대북 제재 연계 신호를 받아들였다. 사드 배치가 중국의 안보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며 밀어붙인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것이다. 국제 관계의 변동성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대북 강경책만을 고집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애초 사드 배치 논의 결정 자체가 무모했다. 사드는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데다 인체 유해성 등 부적절한 요소가 많다는 여론을 정부는 무시했다. 중국 변수도 고려하지 않았다. 중국은 사드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한국의 설명을 믿지 않았다. 이때 한국은 사드 배치 문제를 재검토할 기회를 맞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중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주한 중국대사가 “한·중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이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며 도를 넘는 발언을 할 정도이다. 사드 갈등을 미국과 중국이 봉합하면서 한국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동북아 질서 주도권을 다투는 미·중 사이에서 한반도 이슈는 언제든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드 배치 논의의 동력은 크게 약화됐다. 앞으로 사드 논의가 재개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북 제재의 원활한 이행을 위한 열쇠를 쥔 중국은 이를 사드 배치를 막는 무기로 활용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사드 배치를 고집한다면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라도 바뀐 상황에 맞춰 입장을 재정립해야 한다. 감정적, 즉자적 대응을 넘어서는 철저한 전략적 사고와 유연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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