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 일방 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만 하루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광진·국민의당 문병호·더민주 은수미 의원에 이어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24일 오후 12시 50분께부터 토론을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박 의원은 이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역사에 오점을 남길 수 있는 국회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국가정보원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없이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는 테러방지법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대로 국정원에 금융 계좌 추적과 통신 감청 등의 막강한 정보 수집 권한을 주는 것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박 의원은 또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테러 방지를 명분 삼아 국정원을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한 법"이라면서 지금은 "국정원 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도 말했다.
박 의원은 토론 전반부를 △부일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 사건 △ 인민혁명당 및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 사건 등 국정원의 전신 정보 기관들이 지난 시절 저질렀던 각종 인권 침해, 사건 조작, 범죄 행위 등을 자세히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박 의원은 이어 이런 사건들의 진실 규명이 이루어진 "지금까지도 국정원은 공식적인 입장 발표도 사과도 피해자들에 대한 원상회복 조치도,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그런 구조적인 개혁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07년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에서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휘말리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했는데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국정원은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의 중심에 들어와 있는 거 아닌가"라고도 비판했다.
박 의원은 "제가 거듭해서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만 테러방지법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실효성 있고 합리적인 방향이라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이 지금까지 야기해 온 여러 정치적 문제점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6시간 훌쩍 넘겨 토론 중…與·野 평행선도 계속
박 의원이 이렇게 테러방지법 반대 토론을 이어가는 가운데,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설전을 벌이며 평행선을 달렸다.
현안 논의를 위해 자리를 찾아온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금 필리버스터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에 이 원내대표도 지지 않고 "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느냐"며 맞섰다.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미지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오전 "그것을 가로막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며 격한 반응까지 공개적으로 내놓은 터라, 새누리당으로선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 (☞ 관련 기사 : 박근혜 격노·한숨…"국회, 어쩌자는 겁니까")
선거구 획정은 나날이 지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청와대의 그늘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정치력을 발휘할 의지도 엿보이지 않는다.
박 의원에 이어 필리버스터를 하겠다고 신청한 의원은 열 명을 훌쩍 넘기고 있다. 더민주의 유승희·최민희·김경협 의원과 정의당의 김제남·서기호 의원 등이 무기한 토론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과 더민주 양당은 '비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자리를 지켜 토론하는 의원님께 힘을 실어달라"며 시간대별 조 편성 안내 문자를 소속 의원들에게 보냈다.
새누리당은 원내부대표단을 중심으로 본회의장 대기조를 꾸렸으며, 이들은 야당 의원들의 발언 시간과 내용을 모니터링 중이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2시간 안에 본회의장에 올 수 있도록 대기하라'는 지침을 소속 의원들에게 내려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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