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한 야당 국회의원들의 필리버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어제 참여정부 때 장관과 총리를 지낸 분과 이것을 화제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분이 장관이 되고 얼마 안 있어 국정원에서 30억 원을 현금으로 보내더란다. 관행을 잘 모르는 장관님은, 장관 하다 보면 이런 돈이 필요한가 보다 받아 놓았다. 얼마 후, 이 장관님이 그 부처가 정례적으로 주제하는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 민간 조직의 행정 책임자 한 300여 명이 참석하는 모임이었다. 장관에게 건의할 말, 장관이 당부하고자 하는 말, 기분좋게 나누고 돌아 왔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그 모임에 참석했던 고교 동창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런데 어제 왜 돈을 안 주는지 의아했다”고 하더란다. 깜짝 놀라서 무슨 돈 말이냐고 물었더니 어제 그 모임이 끝나면 늘 1천만 원이 든 봉투가 전달됐다고 하더란다. 그 때에서야 며칠 전 자신에게 온 국정원 돈이 이 모임 참석자들에게 1인당 1천만 원씩 주는 촌지용이란 걸 알았다는 거다.
민간조직 행정책임자들에게 장관 말 잘 들으라고 주는 돈이고, 그 돈은 또 일부가 “내 말 잘 들으라”며 밑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나 보고 국정원 말 잘 들으라는 얘기 아니냐고 생각한 이 장관님은 바로 그날 이 돈을 국정원에 반납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도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각 정부 부처에는 경조사 부의금 등의 용도로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일정한 액수의 예산이 합법적으로 편성됐었다고 한다. 수십 개 부서가 나눠 써야 하기 때문에 이 돈도 늘 모자라기 마련인데 그럴 경우 용이하게 끌어다 쓸 수 있는 매력적인 자금이 국정원 예산이었다. 하지만 참여정부 청와대나 총리실에서 국정원 돈을 끌어다 쓴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분은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국정원 예산이 누구는 8천억 정도라고도 하고 누구는 1조 원이 넘는다고 추측만 하지 정확한 규모를 국회 등 외부에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어떤 국정원 예산은 다른 정부 부처 예산에 숨어 있다고 한다. 그중 상당 부분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제대로 쓰였는지 사후 감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정원이란 기관 자체가 비밀 정보조직이어서 모든 활동이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보호막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대한 국정원 예산 중 일부가 국정원의 (법에 규정된) 고유 임무가 아니라 국내 통치용으로 전용돼 쓸 여지가 생긴다. 참여정부에서도 국정원에 발목 잡힌다며 국정원의 이런 자금을 돌려주거나 쓰지 않았을 뿐, 이런 예산 편성 관행을 없애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민간인사찰 사건을 덮으려고 등장했던 관봉 현금 덩어리를 보면 국정원 예산을 통치자금으로 전용해 쓰는 관행이 이명박과 함께 부활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 지금은 어떤가. 앞으로는 어떨까.
테러위협을 빙자해, 막강한 조직과 막대한 비밀자금을 쓰는 이런 비밀조직의 권력을 더 강력하게 만들자는 것이 테러방지법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무너졌지만 야당 의원들만이라도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슨 짓을 해서라도 결사적으로 막아야 하는 것이 이 법, ‘영구집권 음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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