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취임선서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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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만 3년 되는 날이다. 하지만 이날을 맞이하는 국민 일반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지난 3년간 수고한 대통령의 칭송보다는 남은 임기에 대한 걱정부터 앞서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앞으로 2년이나 임기가 남았다"는 탄식도 SNS상에서는 꽤 자주 볼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율은 긍정보다 부정이 앞선 지 오래됐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7시간 동안 행적이 묘연했다. 그의 7시간 미스터리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 국민에게 그는 자신의 지지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을 양분하기 시작했다. 말로는 민생을 언급하고, 또 '경제가 우선'이라는 현수막을 거리에 달았지만 실제 행동은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 행태를 보여줬다.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만 언급해도 이러한 행보는 확연하다. 예를 들어 역사 국정교과서 강행과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전교조의 '노조 아님' 통보와 개성공단 전격 폐쇄 등이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방적 합의 타결과 사드 배치 강행 등도 국민 통합과는 배치되는 일방적 강행이다. 한마디로 지난 3년간 걸어온 박근혜 정권의 행보를 떠올리면 국민들의 피로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의 법적 정통성, '임기 내내 논란' 이유는?
▲ 2015년 2월 9일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 원장에게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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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는 이러한 임기 내 공적 논란 이전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바로 '정권 자체에 대한 법적 정통성 논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매우 심각한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였다. 바로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 권력기관의 대선 개입과 이러한 불법행위로 박근혜 후보가 도움을 받았다는 논란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나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국가 권력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초유의 불법 행위가 사실로 드러났고 이로 인해 관련자 일부가 법적 처벌을 받았음에도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도 없다. '강 건너 불구경하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제삼자적 태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15년 5월, 경기도의회에서 본회의 통과된 건의안이 그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한 그 건의안의 정식 명칭은 '정부기관의 18대 대선 개입 관련 박근혜 대통령 사과 및 엄정한 법 집행 촉구 건의안' (아래 '사과 건의안')이었다.
사과 건의안의 내용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18대 대통령 선거일 며칠 전,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인터넷 댓글 사건을 필두로 국가정보원 대북심리전단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정황이 밝혀졌고, 투표일 직전 경찰청의 갑작스러운 중간 수사결과 발표 등 국가기관의 정치 중립 위반 및 선거개입 사건은 핵심 권력기관의 불신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고 쓰여 있다.
이어 "정부기관의 선거개입 관련 진실이 은폐된다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야 할 대통령의 신성한 권위를 실추시킬 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며 "국가기관의 정치 중립 위반 및 선거개입 행위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대국민 사과가 있어야 한다"며 정부기관의 부정 선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 사과 건의안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또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안건이 경기도의회에서 공식 발의되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과 건의안이 본회의까지 표결로 통과되었다는 점이다. 정치적 공방으로 발의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실제로 현직 대통령의 실명을 담은 발의 안건이 처리, 통과된 것은 그야말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사과 건의안이 경기도의회에서 처리되었다는 것을 아는 국민이 거의 없다. 조중동 등 주요 언론이 보도하지 않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보도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박근혜 권력의 눈치 보기 때문에 무시한 것일까?
이에 기자는 이 '사과 건의안'을 대표 발의한 경기도의회 이재준 의원(경기 고양2)을 경기도 화정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 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3년을 맞이하여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이 사과 건의안의 발의 배경과 본회의 통과 이후 후속 결과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 경기도의회 이재준 도의원(새정치민주연합, 고양) | |
ⓒ 이민선 |
이재준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재선 도의원이다. 지난 2010년 경기도 고양 2선거구에서 도의원으로 당선된 후 다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재선되었다. 먼저 이러한 사과 건의안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답변은 담백했다.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 권력기관의 선거 개입은 명백히 불법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은 일체 사과도, 시인도, 인정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2014년 말경 건의안을 대표 발의, 이후 약 반년 후인 2015년 5월경 본회의에서 처리됐습니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건의안에 대해 경기도의회 새누리당 소속 도의원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대통령 실명이 담긴 정부기관 부정선거 사과 건의안 상정을 그냥 보고 있었을까 싶었다. 흔히 예상하는 단상 점거 등 반발과 저항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들려준 답변은 의외였다.
"아니요. 단상 점거도 없었고 별다른 큰 저항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 사과 건의안을 본회의 상정하기 전 대통령의 실명만이라도 빼달라는 요구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과 주체인 대통령 실명을 빼고 사과 건의안을 상정하는 것은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거부했지요. 그러자 사과 건의안이 본회의 상정 될 당시 새누리당 소속 도의원들이 집단 퇴장을 했어요. 그러나 점거 등 물리적 행위는 없었습니다."
경기도의회에서 대선 개입 '사과 건의안' 통과 가능했던 이유
그렇다면 경기도의회에서 이러한 '사과 건의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2015년 5월 당시, 경기도의회 도의원의 구성 비율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경기도 의회는 모두 128명의 도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안건이 처리될 당시, 경기도의회는 새정치연합 소속 77명, 새누리당 소속이 50명이었다. 야당 도의원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새누리당 소속 도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선거 관련 사과 건의안' 상정을 왜 끝까지 막지 않았을까. 신사적이라서? 그것은 아니다. 사실 2015년 5월 본회의에서 통과된 이 '사과 건의안' 이전에 18대 대선 부정선거와 관련된 결의안이 또 하나 있었다.
2013년 발의된 이 결의안의 명칭은 '18대 대선 관련 부정선거 기존 수사팀 복귀 및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 촉구 결의안'. 이 역시 이재준 도의원이 대표 발의한 결의안이었다. 하지만 이 결의안은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이유는 새누리당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의안 상정은 너무한다"는 논리였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새누리당의 반대는 명분이 있었다. 결국 결의안을 상정하지 않고 폐기한 이유다. 하지만 2014년,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 결과 3년 실형을 선고받고 바로 법정 구속된 것이다.
그러자 새누리당이 그동안 반대해 온 명분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이재준 의원은 이전 결의안보다 더 강한 '사과 건의안'을 대표 발의한다. 그것이 바로 2015년 5월 처리된 것이다. 이러한 발의에 대해 당시 새정치연합 경기도의회 원내대표단의 반응은 어떠했을지 궁금했다.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 껄끄럽게 여기지는 않았을까.
"아닙니다. 당시 새정치연합 경기도의회 김현삼 대표의원(안산 7)이 오히려 본회의 안건 상정을 많이 도와줬고, 이후 소속 도의원들 역시 새누리당의 반발에 맞서 만장일치로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안건을 대표 발의한 입장에서 너무나 고맙게 생각합니다."
한편 재미있는 일은 이 '사과 건의안' 처리를 전후한 경기도의회 새누리당의 행보였다. 당시 새누리당은 안건 처리에 있어 물리적 저지는 하지 않았지만 본회의 안건 상정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 그중 하나가 '박근혜 대통령 사과 건의안'을 요구하는 야당에 맞서 자신들도 '또 하나의 대국민 사과 촉구 건의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른바 '성완종 특별사면 진상규명을 위한 문재인 대표의 검찰 수사 및 대국민사과 촉구 건의안'이다.
새누리당이 "이완구 전 총리, 홍준표 경남지사 등 여권 실세에게 돈을 건넸다는 성완종씨를 참여정부 당시 특별사면한 경위를 수사하라"며 맞불용으로 낸 야당 저격용 발의였다. 하지만 이 건의안은 경기도의회 운영위 표결 결과 부결된다. 찬성 2, 반대 7. 다수당인 새정치연합의 뜻대로 '박근혜 대통령 사과 촉구 결의안'만 처리된 것이다.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운영위 직후 당시 강득구 도의회 의장을 만나 대통령 사과 촉구 결의안의 본회의 상정 보류를 요구하는 한편, 부결된 '성완종 관련 문재인 대표 책임 촉구 성명서'를 장외에서 발표하는 결의 대회를 갖겠다며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저항도 결국 소용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사과 건의안은 본회의를 가볍게 통과한다.
'사과 건의안' 받은 박근혜 대통령. 응답하라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이렇게 통과된 경기도의회의 사과 건의안은 이후 어떤 효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본회의를 통과한 사과 건의안은 이후 경기도의회 사무처를 통해 청와대와 국회로 보내졌습니다. 2015년 5월에 처리가 되었으니 건의안이 청와대로 간 지 약 8개월 정도가 지나가고 있는 거죠."
"그럼 답변이 왔습니까?"
"아니요. 8개월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까지 청와대로부터 아무런 답변이 없네요.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절차에 의하면 지방의회에서 보낸 건의안은 해당 기관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면 법률에 의거, 건의안을 접수한 해당 기관은 이에 대한 답변을 공문으로 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건의안을 접수한 청와대는 경기도의회가 보낸 '정부기관의 18대 대선 개입 관련 박근혜 대통령 사과 및 엄정한 법 집행 촉구 건의안'에 대해 답변을 보내야 하지만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과연 청와대는 답변을 보내올까. 지금으로부터 만 3년 전 그때, 2012년 12월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정보원 등 정부기관의 부정선거. 그리고 이러한 정부 권력기관에 의한 부정선거 개입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런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거짓 부인한' 경찰의 행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상 치욕으로 남을 일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 그중 3년의 임기가 지나가고 있다. 남은 임기는 2년. 이 남은 임기동안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경기도의회가 송달한 '정부기관의 18대 대선 개입 관련 박근혜 대통령 사과 및 엄정한 법 집행 촉구 건의안'에 대해 응답을 보낼까. 그래서 나 역시 한마디를 남긴다.
"응답하라, 청와대. 응답하라,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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