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가 브리트 알레니우스(Inga-Britt Ahlenius) 전 유엔 내부감찰실(OIOS) 실장이 지난 2011년 스웨덴 출신 니클라스 에크달(Niklas Ekdal) 기자와 함께 출간한 책 <미스터 찬스 : 반기문의 리더십 아래에서 후퇴한 유엔(Mr. Chance-The deterioration of the UN during Ban Ki-moon's leadership> 표지 | |
ⓒ 이경태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을 했으나,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의견을 말하면 반 전 총장은 거의 화를 내거나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여기곤 했다."
차기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반기문 전 총장에게 뼈 아픈 평가가 또 나왔다. 자신에게 직언하는 인사에 대해 역정을 내는 등 '독선적 태도'를 보였다는 얘기다. 이는 잉가 브리트 알레니우스(Inga-Britt Ahlenius) 전 유엔 내부감찰실(OIOS) 실장이 지난 2011년 스웨덴 출신 니클라스 에크달(Niklas Ekdal) 기자와 함께 출간한 책 <미스터 찬스 : 반기문의 리더십 아래에서 후퇴한 유엔(Mr. Chance-The deterioration of the UN during Ban Ki-moon's leadership>을 통해 내놓은 '반기문 평가' 중 일부다.
그간 반 전 총장이 <워싱턴포스트>나 <이코노미스트>, <르몽드> 등으로부터 "유엔의 투명인간" 등 유엔 운영에 있어서의 무능력을 비판받은 바는 있지만 이처럼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관련기사 : 반기문은 '본능적으로' 미국의 의견을 따른다)
특히 반 전 총장이 최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등에서 '협치'와 '분권' 등을 앞세운 것을 감안할 때 잉가 알레니우스 전 실장의 이러한 평가는 반 전 총장의 대선가도에 적잖은 상처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은 팀워크가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했다"
▲ 관훈토론 참석하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관훈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잉가 알레니우스 전 실장의 평가는 혹독했다. 그는 "훌륭한 연설문 작성자 덕분에 반기문은 종종 옳은 소리를 하곤 했지만 그가 하는 말은 수사에 그칠 뿐 그의 경험에서 우러난 말이 아니었으며 그 말을 이행할 능력도 없었다"고 질타했다.
실제로 유엔은 그전까지는 한 지역에서 채용된 직원은 사실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곳에서 정년을 맞는 인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반 전 총장은 이를 주요 개혁 대상으로 봤다. 그리고 뉴욕과 제네바 등 '좋은 근무지'에서는 최장 7년까지만 근무하고 이후 반드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순환근무제를 유엔 노조의 반발도 무릅쓰고 단행했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행 비행기에서 한 <조선일보> 등과의 인터뷰에서도 "유엔은 한 번 발령 받으면 10년, 15년 한다. 재수 없는 사람은 아프리카에 가면 10년, 15년 계속 있어야 하고 뉴욕이나 제네바에 있는 사람은 죽어도 안 움직이고. 그걸 7년을 싸워서 유엔 총회 회원국들을 설득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잉가 알레니우스 전 실장은 "OIOS가 이 개혁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한 질의를 했을 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 전 총장 측의) 대답이 돌아왔다"면서 "반기문의 리더십에는 개혁에 대한 명확한 구상이나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혹평했다. 즉, 반 전 총장이 분명한 비전이나 효과를 밝히지 못한 채 순환근무제 도입 등을 단행했다는 얘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반 전 총장의 중동 방문 당시 일화를 반 전 총장을 '무지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의 업적은 상징적이었으며 비효율적인 데다 비생산적이었다. 세계에 대한 그의 무지함은 때로는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곤 했다. 이스라엘에서 텔아비브로 가던 중 반기문이 헬기 아래의 바다를 보면서 그의 수행원에게 물었다. '여기가 대서양인가? 지중해인가', '사무총장님, 여기는 지중해입니다'."
2010년 사임 당시에도 "반기문, 개탄스럽다" 메모 남겨
한편, 잉가 알레니우스 전 실장의 혹평은 이미 예상된 것이다. 그가 지난 2010년 7월 사임 당시에도 "유엔은 투명성을 잃었고 책임도 결여돼 있다. 당신(반 전 총장)의 행동은 개탄스럽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내용의 50페이지짜리 메모를 반 전 총장 앞으로 남긴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메모를 입수해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잉가 전 실장은 이 메모에서도 "사무국은 단지 붕괴하는 게 아니라 표류하고 있다. 파편적이고 부적절한 '개혁'에 대한 생각은 적절한 분석이나 전체적 조망과 이해 없이 밀어 붙여졌다"며 반 전 총장의 개혁을 비판했다.
또한 "반 전 총장은 내부감찰실을 지켜주지 못했고 우리의 독립성을 조직적으로 침해했다. 나아가 자신의 통제를 받는 별도의 감사기관을 신설하려고 했다"고도 주장했다. "미국 연방검사 출신인 로버트 애플턴을 내부감찰실 감찰책임자로 고용하자고 9차례나 설득했는데 실패했다"는 내용도 그 근거로 적었다.
이에 대해 당시 반 전 총장 측은 "잉가 알레니우스 전 실장이 많은 사실을 간과하거나 왜곡했다"고 반박했다. 비제이 남비아르(Vijay Nambiar) 당시 비서실장은 "반 전 총장은 그동안 기후변화와 여권신장 등 주요 이슈에서 통찰력 있는 리더십을 보여 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아울러, 잉가 알레니우스 전 실장의 '내부감찰실 독립성 침해' 및 '별도의 감사기관' 주장에 대해서는 "잉가 알레니우스 전 실장이 추천한 인사에 대한 채용을 거부한 것은 다른 여성 후보들에 대한 검토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도의 감사기관은) 유엔의 부패척결 역량을 강화할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선기획취재팀]
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분석) 고정미(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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