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탄 박근혜의 폭주가 날마다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인 자신은 ‘지고지존(至高至尊)’의 존재로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건 중세 암흑시대의 성직자들처럼 ‘무류(無謬-잘못이 없음)’하다는 듯한 태도이다. 그는 지난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참으로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한 기성세대나 청년·학생들 가운데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극우보수 세력 말고 누가 있을까? 일제 침략자들이 조선을 근대화한 것이 아니라 착취와 억압으로 일관했다는 사실, 박정희가 ‘천황 폐하’에게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된 이래 친일부역 행위를 했다는 것, 이승만이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로 살상하고 포악한 독재를 자행하다가 권좌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모르는 중고교생이 있다면 잘못된 교과서로 배워서 그럴 것이다.
박정희 정권 18년의 야만적 독재, 전두환과 노태우의 광주학살과 민중 탄압,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을 빌미로 한 협잡과 자연 파괴, 그리고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국고 탕진,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에 힘입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고 있는 국민은 ‘역사를 바르게 배우지 못해서 혼이 비정상’일까? 박근혜의 혼이 정상이고 대다수 국민의 혼은 비정상, 곧 ‘정신이상’이라면 그는 그런 백성과 함께 어떻게 국가를 지탱해 나갈 수 있을까? 혼이 비정상인 인간을 고유의 우리말로 표현하면 ‘넋 빠진 사람’이 된다. 박근혜는 이 말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성과 양심, 진정한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박근혜는 주권자 절대 다수의 ‘혼이 비정상’이라고 몰아붙인 바로 그 국무회의 자리에서 내년 4월 총선에서는 “진실한 사람만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가 말하는 ‘진실한 사람’이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정의당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정치세력의 구성원들을 가리키지 않음은 자명하다. 박근혜가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리에서 추방한 유승민, 부친상 빈소에서 ‘대통령의 조화’조차 받지 못한 유승민도 박근혜가 보기에는 ‘진실한 사람’이 못될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차라리 “이번에 장관 자리나 청와대 고위직을 떠나서 출마하는 사람들과 친박계를 찍어 달라”고 솔직히 부탁하는 쪽이 ‘진실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 ||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집필진도 공개하지 않는 밀실 속의 비밀공작처럼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어록’에 또 하나의 독선적 발언을 추가했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정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정쟁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말이 바로 그렇다. 사회주의국가인 베트남조차 유엔의 권고에 따라 국정 역사교과서를 검정으로 바꿨는데 민주주의국가를 자칭하는 한국이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역사학계와 야당, 시민단체들이 당연히 반대운동을 벌여야 옳다. 그것을 ‘정쟁’으로 보는 사람은 박근혜와 그의 ‘콘크리트 지지층’뿐이다.
박근혜 정권은 이제 유치원 어린이들조차 ‘국정화’ 방식으로 세뇌하려 들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국회 예결특위에 제출한 ‘2016년도 정부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나라사랑 정신계승발전’ 사업의 일환으로 ‘나라사랑 꾸러기 유치원’에 6천만원의 예산을 주기로 되어 있다. 유신독재 계승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새마을운동 지원예산’은 전년 대비 2.6배나 늘어난 143억여원으로 책정되었다. 거액의 예산을 ‘이념 국정화’에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방송인 김제동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마음까지 국정화하시겠습니까”라고 힐난한 말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는 ‘제 나라 말’을 어법에 맞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유체이탈’식 화법을 남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보기를 들어보자.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어려움도 있고 그렇지만, 사람은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는 열정이 어디에서 생기느냐면 이런 보람 ‘나라가, 지역이 발전해 가는 한 걸음을 내딛었구나’ 그런 데서 어떤 일이 있어도 참 기쁘게 힘을 갖고 나아가는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2014년 2월 17일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 뒤 오찬에서).
이 기나긴 문장에서는 주어가 무엇인지 서술어가 무엇인지를 가려낼 길이 없다. 마지막에 나오는 ‘생각을 했다’는 단어들을 보면 서술의 주체는 박근혜인데 주어와 서술어의 일치라는 문법의 기본조차 찾아볼 수 없다. 오죽하면 소셜 네트워크에 ‘박근혜 번역기’가 등장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을까?
박근혜가 과거에 공개적으로 한 말을 잊어버린 채 당장 편하게 쓰곤 하는 ‘유체이탈’ 식 화법은 하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그는 ‘대통령 노무현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대해 2007년 1월 9일 이렇게 폄하했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는가?” 최근의 박근혜는 어떤가? “진실한 사람만을 선택해 달라”는 말은 ‘좋은 대통령’이라서 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이야 말로 그런 유체이탈 식 화법을 들어야 하는 ‘국민이 불행하다.’ 현재 박근혜 자신의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는 것이 분명한데, 과거의 폭언에 대해 고인이 된 노무현에게 사과할 뜻은 없는가?
지금 박근혜 정권은 역사는 물론이고 공영방송조차 국정화 하려 들고 있다. KBS와 EBS의 신임 사장 선임 과정에서 그런 기도가 뚜렷이 실체를 드러냈다. KBS의 여당 추천 이사들은 밀실 회의를 통해 그 회사의 두 노조가 ‘최악의 후보’로 꼽은 사람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기로 결정했다. EBS의 관변 이사들 역시 뉴라이트가 만든 교학사 교과서를 대표집필한 극우적 역사학자 등을 유력한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가뜩이나 ‘관영방송’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공영방송이 사상 최악의 낙하산 사장들을 통해 국정화 되면 내년 총선과 그 이듬해 대선 시기에 어떤 보도와 논평을 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나는 이 모든 ‘국정화 공작’의 중심에 서 있는 박근혜가 자신의 언행에 자신이 있다면 ‘국정 박근혜 어록’을 펴내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중고등학교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어록’을 널리 보급해서 학생들이 그 책을 읽고 자유롭게 독후감이나 논설문을 쓰게 하면 박근혜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포부’를 이해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최근 수십년에 걸친 군부독재에서 벗어나게 된 버마(미얀마는 군부가 붙인 국호)에서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이 선거혁명에 성공한 것을 부러워하는 한국인들이 많을 것이다. 전설적인 독립운동가의 딸이 온갖 고난과 박해를 딛고 일어서 민주화로 가는 길을 텄기 때문이다. 비록 군부가 실권을 계속 잡고 있기는 하지만 버마 민중의 힘은 언젠가 바람직한 민주체제를 일구어 낼 것이다.
아웅산 수치는 군부의 파렴치한 권력연장 책동에 대해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장미는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이다.” 이 말을 어떤 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이 변용할 수 있을 것이다. “벌레 먹은 장미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추악한 냄새를 풍길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