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기자의 현장칼럼 창
# 1. 김무성 대표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11일 아침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 12일 아침 최고위원회에서 그는 야당에 민생법안 처리를 거듭 압박했다. 역사 교과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국제적 트렌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국내 정치와 당리당략적 경쟁에만 매몰되어 경제와 민생 문제를 등한시한다면 우리는 세계경제 속 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영원히 중진국에 머물 수밖에 없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야당은 변치 않는 투쟁방식인 발목잡기로 선거마다 지지 않았나. 아무리 둔한 정당이라도 이 정도면 국민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치고 빠지기’와 ‘어르고 뺨치기’의 고수다. 역사 교과서로 한달 동안 국회를 마비시켜 놓고 말 몇 마디로 그 책임을 야당에 뒤집어씌우는 데 성공했다. 야당은 ‘협상과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협박과 회유의 대상’이다. 기자들은 새누리당을 ‘양심 없는 정당’이라고 부른다.
# 2. 문재인 대표는 혼자였다. 최고위원이나 고위 당직자는 아무도 없었다. 김성수 대변인이 약간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지난 8일 국회 대표실에서 주거, 중소기업, 갑을, 노동 등 ‘우리 당 4대 개혁’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꽤나 중요한 발표였는데 언론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민생을 말한다면 우리 당이 발의해서 오랫동안 논의해온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 법안을 더 이상 발목 잡지 말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합니다.”
문재인 대표의 말에서는 무게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일까. 기자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을 ‘가망 없는 정당’이라고 부른다.
여야 모두 경제와 민생을 얘기한다. 그런데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이 통계 작성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10월 수출은 435억달러로 15.8% 감소했다. 6년 만에 최대 낙폭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대, 잠재성장률은 3%대로 고착됐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화’하고 있으며 현재 저성장 초입에 와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특히 ‘인구절벽’(생산가능인구 급감)과 그로 인한 ‘소비절벽’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00만명을 정점으로 급격히 줄기 때문에 2017년부터 모든 소매 매출액이 줄어들면서 저성장기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그래프로 그리면 20년 시차로 거의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2020~2030년 사이에 ‘제로성장’ 시대에 들어선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고령화와 함께 왔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에 비해 훨씬 더 급격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상당한 부의 축적을 이룬 뒤에 고령화가 시작됐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섬뜩하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성장이 본격화할 때까지 2~3년, 제로성장까지 10여년 시간이 남아 있다. 이른바 ‘골든 타임’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답을 정확히 알고 있다.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4대 개혁을 해야 한다. 노동개혁, 공공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이다.
그러나 ‘무엇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어떻게’다. 전례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와중에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연립정부였다. 경제 쪽 장관들은 자민련 몫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에 민정당 출신 ‘티케이’ 김중권씨를 앉혔다.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넓히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국가적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국민통합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그렇게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다.
또다시 위기가 다가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개혁을 하려면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를 끌어내야 한다. 강력하면서도 집요한 설득력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조정력을 겸비한 통합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갖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딱 적임자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로 그런 리더십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뒤 지금까지 정반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과 소수 행정부 관료들이 만든 이른바 ‘경제 활성화 법안’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야당이 법안의 실효성에 이의를 제기하자 심판론까지 꺼내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야당에 대한 혐오가 이글거린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20대 ‘퍼스트레이디 대리’ 시절 경험했던 박정희 방식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 방식의 요체는 대통령 1인 지배구조다. 독재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잘될까? 안될 것이다. 지금은 1970년대가 아니다.
큰일이다.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만 바라보다가 ‘잃어버린 20년’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경로에 들어선 것 같다. 경기 부양으로 내년 4월은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7년 대통령 선거 이전에 나라 전체가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피할 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말 큰일이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