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작심 발언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국민들에 대해 정치적 언어가 아닌 종교적, 또는 초현실적 언어를 사용해 편을 가르는가 하면 차기 총선과 관련해 정치적 중립선을 일탈했다는 논란이 일 정도의 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은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참으로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한 이른바 ‘올바른’ 역사관과 방향을 달리하는 국민을 향해 ‘혼이 없거나 비정상’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혼’은 종교 또는 무속의 영역에서 언급될 수 있는 것인데 반해 정치는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실 정치’가 최상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반대하는 역사를 배운 국민에 대해 혼이 비정상적으로 된다고 한 발언은 상식적으로 해석하기 곤란하다. 잘못된 지식이 주입되거나 학습되는 것은 오도, 세뇌 또는 오해, 착각 등으로 표현되고 이는 또 다른 교육에 의해 교정 또는 시정될 수 있다는 것이 교육의 기본 논리다. 그런데 잘못 학습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는 것은 비교육적, 비정치적 표현으로 국무회의라는 국정을 논의하는 최고의 기구에서 대통령이 입에 담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대통령이 정상적인 역사 교과서 내용이라고 신뢰하는 것은 교학사 역사 교과서 내용인 것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행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학습하는 학생이 전체의 99.9%라는 점, 역사학자의 90%가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현실에 비춰볼 때 대통령의 발언은 논란을 자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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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현행 검인정 역사 교과서에 대해 근거도 없는 비방을 되풀이 했다. 즉 "현 역사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으로, 북한은 국가수립으로 서술되고 대한민국에 분단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근현대사 집필진 대부분이 전교조를 비롯해 특정이념에 경도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의 국사편찬위원장 등은 박 대통령과 현 정권 고위인사들의 비판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이다. 현 정권의 청와대에서도 이들 교과서 검인정 최종 단계에서 검토한 바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보수적 성향답게 국사편찬위원회도 주로 보수적 인사로 구성했었다는 점에서 현 정권의 현행 검인정 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이 이런 사정을 아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평소 신문과 방송을 전혀 보지 않거나 청와대 비서진의 상황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통령은 이날 19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경제 활성화 법안 등이 자동 폐기된다면 국민들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나서고,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 5대 법안과 경제 활성화 법안, 한중 FTA 비준안 등의 조속한 처리를 거듭 촉구하면서 국회를 향해 민생과 국민을 위한 입법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써 차기 총선과 직결된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대통령이 총선에 올인한다는 식의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 정가에서는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 등 대구 경북 PK 물갈이와 함께 이른바 박 대통령 호위무사들이 대거 총선에 출마할 것이란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친박 세력의 총선 출마와 비박 세력의 제거 움직임에 힘을 실어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정치는 말이다. 말로써 여론을 주도하거나 정치적 의제 선점 등이 가능하다. 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에 있어야 하지만 행정부 장관급이 할 일이나 입법부 차원의 사안까지 대통령이 작심 발언이라는 형식으로 챙기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선거이후에는 전체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야당을 격렬히 자극하는 방식으로 입법 작업이 지연되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유엔이 반대하고 위헌 요소까지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국민과 정치권을 양분시켜놓았다. 그리고 특유의 유체이탈 식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원인의 하나가 된 정치적 갈등이나 국민적 양분화 현상에 대해 ‘나하고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국회와 야당을 질타하거나 일부 국민을 비방, 적대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지금 박 대통령의 언행은 흔히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부적절한 모습이다.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비웃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식의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자주 해외에 나가는 입장에서 창피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