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론은 포르노다. 보기에 역겨워도 눈이 자꾸 간다. 고정 팬도 확보하고 있다. 이 포르노를 자극적으로 편집해 유포하는 집단이 언론이다.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를 두고 색깔론을 일삼는 언론을 보면 참기 힘든 변태적 취향을 느낀다.
영국의 대표적인 포르노 양산 언론은 타블로이드지 더선(the Sun)이다. 최근 공략 대상은 제레미 코빈 노동당 당수다. 지난 9월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당선된 그는 노동당 역사상 가장 좌파적인 당수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코빈은 영국 정부의 긴축 정책 반대외에도 NATO(북대서양무기조약기구) 탈퇴, 핵무기 폐기 등 급진적인 주장을 펴는 정치인이다. 시리아 반도에 근거지를 둔 테러조직 IS(이슬람국가)를 공격하면 더 많은 시리아 난민을 양산할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뒤집어 보면 코빈의 당선은 그간 보수당과 큰 차별이 없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은 노동당 지도부에 당원들이 염증을 느낀 결과다. 국내 언론도 코빈의 당선을 두고 ‘영국 정가에 분 전통 좌파의 신선한 바람’이라는 주제의 기사를 잇달아 보도했다.
하지만 더선이 연출하는 색깔론의 수위를 보면 코빈의 노동당은 집권까지 험난한 길을 가야할 것 같다. 아래 사진을 보며 설명하자.
‘영국 왕가를 증오하는 좌익(Leftie)’ 또는 ’여왕을 모욕했다‘는 선동적인 표현을 1면 제목으로 담았다. 조롱당하기 딱 좋은 사진을 골라 실었다. 노동당 당수 경선부터 당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코빈을 지지하는 노동당원은 모두 미쳤다”거나 “코빈은 영국 군대 폐지를 원하는 인물”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마구 쏟아냈다. 수구 세력들이 들끓어 응집하기 알맞은 프로파간다다.
더선의 가십성과 선동성은 국내 독자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더선의 보도를 인용한 국내 언론 보도에 대해 ‘찌라시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누리꾼이 많다. 대체로 맞는 평가다.
다만 더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일간지다. 더선의 일일 판매부수는 185만8000부 수준에 달한다. 영국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카페 테이블에는 더선이 한 부씩 놓여 있다. 수구 타블로이드임에도 영국 언론 중 (진보 정당의 주공략층인) 노동자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신문인 셈이다.
전임 대표인 에드 밀리밴드의 경우를 살피면 영향력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밀리밴드는 당선 직후 ‘노동당이 좌편향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게 한 당수였다. 2010년 9월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4대 노동조합 대표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은 점을 고려하면 그의 뚜렷한 진보적 성향을 예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코빈 등장 전, 밀리밴드 또한 전통 좌파 성향을 지닌 당수로 평가받았던 것이다. 그의 당수 당선은 지금의 코빈 만큼 영국 정가에 이변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는 임기 내내 더선의 색깔론에 시달린다. 아래 1면 사진처럼 ‘빨갱이 애드(Red Ed)'라고 조롱당하기도, 우스꽝스럽게 식사하는 사진이 실려 굴욕당하기도 한다. 그 결과 밀리밴드의 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패배해 정권 탈환에 실패한다.
이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더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환심 사려고 안달 난 모양새다. 밀리밴드를 비롯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닉 클레그 전 총리 등은 환한 얼굴로 더선을 읽고 있는 사진을 찍는다.
더선의 영향력을 파헤치면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다. 더선의 소유 회사는 뉴스유케이(전 뉴스인터내셔널)다. 이 회사는 더선외에도 보수 성향의 일간지 ‘더타임스’와 이 신문의 주말판 신문인 ‘선데이타임스’를 두고 있다. 뉴스유케이를 운영하는 그룹은 미국 미디어그룹 ‘뉴스코프’다.
뉴스코프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머독이다. 이 그룹은 미국 정론지인 월스트리트저널 등을 소유하고 있다. 소유 매체의 인지도와 규모를 고려하면, 머독이 괜히 ‘미디어 모굴(mogul∙거물)’이라고 불리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더선은 머독의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반영하는 매체다. 더선은 선거철마다 지면을 통해 지지 정당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머독은 노동당에 속한 고든 브라운 전 총리에 대해 "감정 통제에 미숙해 리더감이 못 된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당연히 더선은 2010년 당시 총선을 앞두고 브라운 총리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였다.
대표적인 예로 1면에 ‘브라운의 노동당은 동력을 잃었다. 우리는 노동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쓴다. 그해 브라운의 노동당은 패했고 현재의 보수당이 집권당으로 들어선다. 1997년 총선에서 더선은 공교롭게도 노동당을 지지한다. 더선의 지지 정당이 집권당이 돼 총리를 배출하는 건 영국 정가의 공식이다.
코빈이 더선의 집중 공세를 견딜지 주목된다. 그는 영국 정치계에 전통 좌파의 가치를 환기시키고 있다. 여기까지는 전임 당수인 밀리밴드(당선 직후 반응)와 비슷하다. 타협적인 성격이 아니라 더선에 쉽게 굴복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밀리밴드와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코빈의 노동당이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그는 영국 역사상 유일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더선의 색깔론을 극복하고 넘어선 총리로 말이다. 포르노 배우가 아니라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으로 기록될 터다.
| |||||||||||||||||||||
Monday, November 9, 2015
대통령을 만드는 신문, 그들의 오만 [글로벌 미디어] 영국 발행부수 1위 더선의 색깔론 장사… 수구 프로파간다 쏟아내지만 가장 대중적인 신문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