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www.amnesty.or.kr)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www.minkahyup.org)는 한국의 인권 문제와 양심수의 족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체다.
"유신이 선포되고 계엄령이나 다름없는 대통령 긴급조치가 연속으로 발동되면서 세상은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이 되어버렸다. 하얀 것을 하얗다고 할 수 없었고, 검은 것을 검다고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언론은 철저히 감시되었고, 술자리에서도 함부로 말을 하거나 불평을 하거나 하면 어디론가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심하면 캄캄한 감옥에 갇혀 몇 년간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움을 바라고 싶어도 도와주는 사람 역시 같은 혐의로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 하나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김영현, 그해 겨울의 내의 한 벌 – 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앰네스티 양심수, 철조망에 갇힌 촛불과 노란색
이른바 '오적(五賊)' 필화 사건의 김지하 시인 구명운동을 계기로 1972년에 창립된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박정희 정권이 독재로 치닫던 시절에 국제사회와 연대해 양심수 구명운동을 펼친 유일한 단체였다. 75년 자작시 <겨울공화국>을 낭송해 교직에서 해직되고 77년 장시 '노예수첩'으로 구속된 양성우 시인도 앰네스티 양심수였다. 시인 고은과 조태일은 시집 <겨울 공화국>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등 박정희 정권은 시인의 은유처럼 '동토의 왕국'으로 치달았다.
초창기 윤현 목사와 한승헌 변호사가 주도한 앰네스티 운동은 종교인과 사회 명망가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양심수 구원, 사형제 폐지, 고문 철폐, 수감자 처우 개선 같은 인권을 내세운 앰네스티 활동마저 독재 권력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비쳤다. 한승헌 변호사를 필두로 당시 앰네스티 이사였던 문동환-백윤석 목사, 이재정-정호경 신부, 백낙청-이문영 교수 등은 양심수 석방을 외쳤다가 구속되거나 구류처분을 경험했다.
앰네스티는 1980년 5월 당시 한국지부 이사장이었던 한승헌 변호사 등 활동가들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며 지부가 폐쇄되기도 했다. 철조망에 갇힌 촛불과 노란색은 앰네스티 양심수를 상징한다.
민가협이 출범한 1985년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수많은 청년-학생, 노동자, 민주인사들이 구금되고, 안기부와 보안사, 치안본부 대공분실 같은 수사기관에서 고문에 의한 간첩조작과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그해 8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된 김근태 민청련 의장은 당시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만나 22일 동안 전기고문 등을 받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그 엄혹한 시절에 보랏빛 스카프를 두른 민가협 어머니들은 인권이 침해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맨 먼저 달려가는 '인권 119'였다.
나는 1980년대 중후반에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서툴지만 인권의 눈으로 우리 사회의 어둡고 낮은 곳을 탐색하곤 했다. <시사저널>에서'한국의 남파와 빨치'라는 기획기사로 제도권 언론에서는 처음으로 남파간첩 및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실태와 보안감호의 문제점 등을 세상에 알렸다.
노태우 정부 공안정국 하에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누구보다도 끈질기게 추적 보도했고, 김영삼 정부 들어 첫 간첩사건인 남매 간첩 사건 조작 의혹을 단독 보도하면서 정보기관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팩스신문 <인권하루소식>을 발간하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당시 운영위원은 곽노현 교수, 백승헌-임종인 변호사 등 진보적 법학자와 민변 변호사 10여 명이 참여했는데 기자는 나뿐이었다).
민가협 남규선 총무와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
그 시절 주요 취재원이었던 남규선 민가협 총무는 취재의욕을 북돋을 요량이었는지 "인권보도상을 만들면 맨 먼저 김 기자한테 주겠다"고 꼬드겼다. 민가협은 문민정부 출범으로 대중의 인권 감수성이 무뎌지자 대중의 인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고 고민했다. 문화예술인과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하루감옥체험'과 '인권콘서트' 같은기획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남 총무는 자신의 취향을 담아 "인기가수 김종서를 초청하면 어떻겠냐"고 묻고, 나는 "인권 하면 전인권이 좋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뒤로 정태춘-박은옥이 단골이던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양밤)은 전인권, 자우림, 인순이도 참여하는 인권콘서트로 발전했다.
민가협 인권상을 주겠다던 남 총무는 '부도수표'를 내고 김대중 정부 출범 후 국가인권위 시민인권교육팀장으로 가버렸다(현재는 전순옥 의원 보좌관이다). '양밤'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8회째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커튼콜'(curtain call)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만인 지난해 인권콘서트가 재개되었다. 그리고 12월 1일 저녁 두 번째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맨발의 디바' 이은미가 노래하는 '2015 인권콘서트 : 인권,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 행사가 열렸다. 20년 전에 '인권운동사랑방'의 열성적인 활동가였던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은 다시 '후퇴하는 한국의 인권 이야기'를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했다.
앰네스티는 1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올해 소외된 인권 문제를 발굴해내고 이를 심층취재, 보도하여 인권 가치와 의미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언론인(기획)에 수여하는 제18회 앰네스티 언론상 시상식을 가졌다. 올해의 수상작은 ▲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오마이뉴스, 강민수-박소희) ▲ 끌려간 소녀들, 버마전선에서 사라지다(KBS, 노윤정-한규석) ▲ '눈물의 밥상' 및 '인권밥상' 기획보도(한겨레21, 이문영) ▲ 윤일병 사망사건 주범, 군 교도소 내 가혹행위 연속보도(SBS, 김종원) ▲ 청주 지게차 사망 사고 산업재해 은폐의혹 연속보도(청주CBS, 박현호-장나래) ▲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프레시안, 서어리) ▲북한이탈주민 김련희 이야기(한겨레, 허재현) ▲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하시마 섬의 비밀(김태호 외 11명, 특별상)이다.
1948년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 제정일이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앰네스티언론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2년 연속 탈북자 간첩조작 의혹을 고발한 기사들이 수상작이 되었다. 1993년에 내가 추적했던 남매 간첩(김삼석-김은주 역시 앰네스티 양심수였다) 조작 사건은 그로부터 20년 뒤에 화교 남매 간첩(유우성-유가려) 조작 사건으로 대체되었다. 80년대 간첩조작의 '황금어장'이었던 납북귀환어부와 재일동포 유학생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탈북자 집단으로 대체되었을 따름이다.
독재자의 딸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겨울공화국'
심사평에서 지적하듯, 한국 언론의 자유는 현재 위기 상황이다. KBS, MBC 등 공영방송의 이사진과 경영진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지는가 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의견을 담은 언론인들의 연대서명조차 '정치행위'로 몰리는 실정이다. 올해 출품작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앰네스티 언론상의 역사가 20여 년 가까이 되어 자리를 잡은 덕분이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 인권 상황이 후퇴하는 경향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를 반증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겨레>는 1일자 사설(대통령 비판했다고 구속-처벌하는'야만적 인치')에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한 환경운동가 박성수씨를 7개월째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이라며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잡아 가두는 것은, 막걸리에 취한 술주정까지 처벌했던 1970년대 유신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얼마 전에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낮과 밤처럼 남한과 북한을 확연하게 구별해주던 민주적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키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우려했다.
박 대통령은 2005년 3월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럼스펠드 국방장관으로부터 '깜짝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럼스펠드는 "197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과 당신을 만난 일을 기억하고 있다"며 박 대표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해 환한 남한과 불 꺼진 북한이 확연히 비교되는 한반도 야간 위성사진을 보여주었다. <뉴욕타임스> 사설은 이를 빗댄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남한 정권이 북한 정권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니, '헬조선'이 따로 없다. 양성우 시인이 40년 전에 은유적으로 비판한 '겨울 공화국'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의 딸'에게 전승되는 요즘이다.
"유신이 선포되고 계엄령이나 다름없는 대통령 긴급조치가 연속으로 발동되면서 세상은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이 되어버렸다. 하얀 것을 하얗다고 할 수 없었고, 검은 것을 검다고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언론은 철저히 감시되었고, 술자리에서도 함부로 말을 하거나 불평을 하거나 하면 어디론가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심하면 캄캄한 감옥에 갇혀 몇 년간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움을 바라고 싶어도 도와주는 사람 역시 같은 혐의로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 하나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김영현, 그해 겨울의 내의 한 벌 – 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앰네스티 양심수, 철조망에 갇힌 촛불과 노란색
▲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현 한국지부) 창립총회에서 한승헌 변호사가 창립선언문을 읽고 있다. | |
ⓒ 국제앰네스티 |
이른바 '오적(五賊)' 필화 사건의 김지하 시인 구명운동을 계기로 1972년에 창립된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박정희 정권이 독재로 치닫던 시절에 국제사회와 연대해 양심수 구명운동을 펼친 유일한 단체였다. 75년 자작시 <겨울공화국>을 낭송해 교직에서 해직되고 77년 장시 '노예수첩'으로 구속된 양성우 시인도 앰네스티 양심수였다. 시인 고은과 조태일은 시집 <겨울 공화국>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등 박정희 정권은 시인의 은유처럼 '동토의 왕국'으로 치달았다.
초창기 윤현 목사와 한승헌 변호사가 주도한 앰네스티 운동은 종교인과 사회 명망가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양심수 구원, 사형제 폐지, 고문 철폐, 수감자 처우 개선 같은 인권을 내세운 앰네스티 활동마저 독재 권력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비쳤다. 한승헌 변호사를 필두로 당시 앰네스티 이사였던 문동환-백윤석 목사, 이재정-정호경 신부, 백낙청-이문영 교수 등은 양심수 석방을 외쳤다가 구속되거나 구류처분을 경험했다.
앰네스티는 1980년 5월 당시 한국지부 이사장이었던 한승헌 변호사 등 활동가들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며 지부가 폐쇄되기도 했다. 철조망에 갇힌 촛불과 노란색은 앰네스티 양심수를 상징한다.
민가협이 출범한 1985년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수많은 청년-학생, 노동자, 민주인사들이 구금되고, 안기부와 보안사, 치안본부 대공분실 같은 수사기관에서 고문에 의한 간첩조작과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그해 8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된 김근태 민청련 의장은 당시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만나 22일 동안 전기고문 등을 받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그 엄혹한 시절에 보랏빛 스카프를 두른 민가협 어머니들은 인권이 침해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맨 먼저 달려가는 '인권 119'였다.
나는 1980년대 중후반에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서툴지만 인권의 눈으로 우리 사회의 어둡고 낮은 곳을 탐색하곤 했다. <시사저널>에서'한국의 남파와 빨치'라는 기획기사로 제도권 언론에서는 처음으로 남파간첩 및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실태와 보안감호의 문제점 등을 세상에 알렸다.
노태우 정부 공안정국 하에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누구보다도 끈질기게 추적 보도했고, 김영삼 정부 들어 첫 간첩사건인 남매 간첩 사건 조작 의혹을 단독 보도하면서 정보기관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팩스신문 <인권하루소식>을 발간하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당시 운영위원은 곽노현 교수, 백승헌-임종인 변호사 등 진보적 법학자와 민변 변호사 10여 명이 참여했는데 기자는 나뿐이었다).
민가협 남규선 총무와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
▲ 인재근씨 등 민가협 회원들이 국제앰네스티가 양심수로 선정한 김근태 민청련 의장 등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
ⓒ 국제앰네스티 |
그 시절 주요 취재원이었던 남규선 민가협 총무는 취재의욕을 북돋을 요량이었는지 "인권보도상을 만들면 맨 먼저 김 기자한테 주겠다"고 꼬드겼다. 민가협은 문민정부 출범으로 대중의 인권 감수성이 무뎌지자 대중의 인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고 고민했다. 문화예술인과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하루감옥체험'과 '인권콘서트' 같은기획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남 총무는 자신의 취향을 담아 "인기가수 김종서를 초청하면 어떻겠냐"고 묻고, 나는 "인권 하면 전인권이 좋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뒤로 정태춘-박은옥이 단골이던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양밤)은 전인권, 자우림, 인순이도 참여하는 인권콘서트로 발전했다.
민가협 인권상을 주겠다던 남 총무는 '부도수표'를 내고 김대중 정부 출범 후 국가인권위 시민인권교육팀장으로 가버렸다(현재는 전순옥 의원 보좌관이다). '양밤'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8회째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커튼콜'(curtain call)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만인 지난해 인권콘서트가 재개되었다. 그리고 12월 1일 저녁 두 번째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맨발의 디바' 이은미가 노래하는 '2015 인권콘서트 : 인권,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 행사가 열렸다. 20년 전에 '인권운동사랑방'의 열성적인 활동가였던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은 다시 '후퇴하는 한국의 인권 이야기'를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했다.
앰네스티는 1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올해 소외된 인권 문제를 발굴해내고 이를 심층취재, 보도하여 인권 가치와 의미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언론인(기획)에 수여하는 제18회 앰네스티 언론상 시상식을 가졌다. 올해의 수상작은 ▲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오마이뉴스, 강민수-박소희) ▲ 끌려간 소녀들, 버마전선에서 사라지다(KBS, 노윤정-한규석) ▲ '눈물의 밥상' 및 '인권밥상' 기획보도(한겨레21, 이문영) ▲ 윤일병 사망사건 주범, 군 교도소 내 가혹행위 연속보도(SBS, 김종원) ▲ 청주 지게차 사망 사고 산업재해 은폐의혹 연속보도(청주CBS, 박현호-장나래) ▲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프레시안, 서어리) ▲북한이탈주민 김련희 이야기(한겨레, 허재현) ▲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하시마 섬의 비밀(김태호 외 11명, 특별상)이다.
1948년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 제정일이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앰네스티언론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2년 연속 탈북자 간첩조작 의혹을 고발한 기사들이 수상작이 되었다. 1993년에 내가 추적했던 남매 간첩(김삼석-김은주 역시 앰네스티 양심수였다) 조작 사건은 그로부터 20년 뒤에 화교 남매 간첩(유우성-유가려) 조작 사건으로 대체되었다. 80년대 간첩조작의 '황금어장'이었던 납북귀환어부와 재일동포 유학생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탈북자 집단으로 대체되었을 따름이다.
독재자의 딸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겨울공화국'
▲ 2015년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
ⓒ 김당 |
심사평에서 지적하듯, 한국 언론의 자유는 현재 위기 상황이다. KBS, MBC 등 공영방송의 이사진과 경영진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지는가 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의견을 담은 언론인들의 연대서명조차 '정치행위'로 몰리는 실정이다. 올해 출품작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앰네스티 언론상의 역사가 20여 년 가까이 되어 자리를 잡은 덕분이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 인권 상황이 후퇴하는 경향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를 반증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겨레>는 1일자 사설(대통령 비판했다고 구속-처벌하는'야만적 인치')에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한 환경운동가 박성수씨를 7개월째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이라며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잡아 가두는 것은, 막걸리에 취한 술주정까지 처벌했던 1970년대 유신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얼마 전에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낮과 밤처럼 남한과 북한을 확연하게 구별해주던 민주적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키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우려했다.
박 대통령은 2005년 3월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럼스펠드 국방장관으로부터 '깜짝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럼스펠드는 "197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과 당신을 만난 일을 기억하고 있다"며 박 대표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해 환한 남한과 불 꺼진 북한이 확연히 비교되는 한반도 야간 위성사진을 보여주었다. <뉴욕타임스> 사설은 이를 빗댄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남한 정권이 북한 정권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니, '헬조선'이 따로 없다. 양성우 시인이 40년 전에 은유적으로 비판한 '겨울 공화국'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의 딸'에게 전승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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