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조계사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불자다. 그는 지난달 14일부터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피신해 수배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조계사 관음전의 작은 방에서 그는 가끔 불경을 외며 마음을 다스린다. 지난달 29일 저녁 <한겨레>와 만난 한상균 위원장은 인터뷰 뒤 방의 불을 끄고 눈을 감고 불경을 외웠다. 30일부터는 경찰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농민 백남기씨의 쾌유를 빌며 단식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올해로 창립 20돌을 맞았다. 노동자들에겐 기념할 만한 뜻깊은 해이지만 현실은 ‘물대포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다. 민주노총은 1999년 합법화 이후 처음으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했고 국가는 한상균 위원장을 불법 집회를 선동하는 범죄자로 규정하고 체포에 나섰다. 오늘(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릴 2차 민중 총궐기를 앞두고 한상균 위원장을 조계사에서 만났다. 한 위원장은 “집회를 평화적으로 이끌겠다”면서도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차벽을 세우는 모습이 국민을 더 분노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노동법 개정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자고 주문했다.
80년 광주, 2009년 쌍용차 진압, 2015년 백남기를 다 보다
▶ 헌법재판소가 2011년 ‘위헌 판정’을 한 경찰 차벽이 광화문 네거리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시민들은 차벽에 저항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시민들을 테러조직에 비유하며 비난했습니다. 경찰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과격 시위의 배후로 보고 체포에 나섰습니다. 조계사에 피신해 있는 한 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격 시위 하러 나오는 게 아니라 시위하러 나와 보니 과격해진다.’ 무슨 뜻일까요. 한 위원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논쟁해보았습니다.
오늘(5일) 열릴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과 민주 회복, 민생 살리기 범국민대회’(2차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를 두고 과격집회 논란이 일면서 경찰은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불허했다.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3일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집회 개최는 가능해졌지만, 경찰은 불법집회로 변질될 시 엄정 대응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1차 민중총궐기를 주관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한상균(53) 위원장은 14일부터 서울 조계사로 피신했고 경찰은 한 위원장 검거를 위해 조계사에 경찰력 투입을 고심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설립한 조계종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 스님)는 경찰을 상대로 중재 노력을 벌였다.
정부를 상대로 저항하던 이들은 때때로 종교의 터에 몸을 의탁해 저항의 끈을 이어붙이곤 했다. 1995년과 2002년 각각 한국통신과 발전노조 간부들이 조계사를 찾았고, 2008년 미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책임자들(박원석 현 정의당 의원 등 6명)이 조계사에 몸을 맡겼다. 2015년 겨울 조계사는 ‘현대판 소도(삼한시대 죄인이 도피해도 잡지 않았던 신성한 지역)’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까. 세간의 관심이 조계사와 경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로 쏠리고 있다.
한상균 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세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1차 인터뷰는 그의 조기 연행에 대비해 지난달 29일 미리 했고, 지난 2일과 4일 보충 인터뷰를 했다. 29일 인터뷰 장소는 한 위원장이 머물던 조계사 관음전 내였다. 한 위원장은 1차 민중총궐기에 대해 “폭력집회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고 민중의 분노라 봐야 한다”면서도 “2차 민중총궐기는 평화집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찰 출석일자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정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화를 촉구했다. 올해 창립 20돌을 맞은 민주노총 위원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는 평소 기르던 수염을 깎고 법복을 입었다.
지난 5월 세월호 1주기 집회 관련
법원이 체포영장 발부해 수배상태
현재 조계사 관음전에서 피신중
11월30일부터 백남기씨 쾌유 위해 단식
조계사 안에서 그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좀 잘못 배운 분 같다
유신시대가 부활하는 것 같다
그래도 노정간 대화할 준비 돼
대통령이 부르면 청와대 갈 생각”
“살기 힘드니까 쏟아져 나온 거지”
-예전보다 피부색이 많이 하얘졌다.
“6개월 동안 바깥을 나가지 못했더니….(경직된 웃음)”
-조계사 내부에만 머물러 있는 게 갑갑하지 않나?
“부처님도 직접 뵙고 예불도 드리고 해야 하는데 건물 안에만 갇혀 지내고 있어서 답답하긴 하다.”
-하루하루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
“관음전 방 안에 계속 앉아 있다. 나를 도와주는 동료 한명과 함께 있다. 바깥출입이 사실상 통제된 상태다. 월요일부터 백남기씨 쾌유를 위해 단식 중이다.”
-어쩌면 이번 일로 또 감옥에 갈 수 있다. 심정이 어떤가?
“기자가 판사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판단하나? 정세를 관통하고 있나?(웃음) 세상은 이미 내가 감옥 간다고 공식화하고 있는가 보네. 나 한명 감옥 가는 게 무슨 대수이겠나. 모두 민중의 삶을 위해 투쟁하다 벌어진 일이다. 숨가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어 사사롭게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이번에 감옥 가게 되면 몇 번째인가?
“두번째다. 이전(2009년)에 쌍용차 파업으로 한번 갔다 왔으니.”
-감옥에서 지내보면 어떤가?
“감옥에서의 삶보다 정리해고 당한 이후의 삶이 더 험난하다. 해고 노동자들은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니다. 가정이 파탄나고 동지들이 죽어갔다. 온통 곡소리만 난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5월께부터 수배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4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사고 1주기 집회’와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체포영장을 법원이 5월 발부하면서부터다. 한 위원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으로서 2009년 대량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파업을 벌이다 구속됐고 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는 2012년 8월까지 형을 살았다. 지난해 12월 한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지난달 30일 조계사 내에서 뜻밖의 소동이 벌어졌다. 조계사 쪽은 한상균 전 위원장을 제외한 수행 인력 모두 한 위원장이 머무는 조계사 관음전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한 위원장 신변보호 약속을 받고 조계사를 나갔다. 1시간도 안 돼 조계사 신도회 박준 부회장 등 15명이 관음전에 들이닥쳐 강제로 한 위원장을 끌어내려 했다. 충돌 과정에서 한 위원장의 법복이 벗겨져 나갔고 그는 속옷만 입은 채 저항했다. 관음전 앞에는 “한상균과 좌파 스님들, 국가 전복 세력들을 즉각 체포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독재라고 떠드는 자들에게 다시는 그런 허튼소리를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적힌 유인물이 뿌려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언론에 발표된 그대로다. 조계사 쪽에서 오전에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다 나가달라 해서 그렇게 했는데 갑자기 그런 일을 겪었다. 그러나 더이상 이 문제를 얘기하고 싶지 않다. 이기흥 조계종 중앙신도회 대표가 오늘(2일) 찾아와 사과를 했고 조계사에서 나가달라고 한 것은 조계사 신도회 전체의 의견도 아니라고 했다.”
-신도의 난입이 우발적이었다고 보나?
“그것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경찰이 2차 민중총궐기를 불허했는데 민주노총은 곧바로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1차 때도 지도부 몇 명이 모이자고 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가득 메운 게 아니다.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드니까 쏟아져 나온 거지. 그런 마음들을 두고 물대포로, 차벽으로 막았으니 그날 그렇게 격해진 거다. 이번에는 평화적으로 국민 대궐기가 일어날 거라는 게 민주노총 지도부의 공유된 견해다.”
-경찰 차벽 때문에 충돌한 거라는 건가?
“그날 원래 노동자, 농민, 빈민, 대학생들이 다른 곳에서 사전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좀 가깝게 집회하면 좋겠다 해서 광화문으로 가게 된 거다. 10만명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거기니까. 그런데 인도까지 다 막아버리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같이 모여 집회 마무리라도 하고 해산해야 하는데 경찰이 그것도 못 하게 만드니 민중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한 거지.”
압수수색, 공안탄압의 스토리 짜맞추기
-시민들이 차도를 점령할 수 있으니 경찰도 차벽을 칠 수 있는 것 아닌가?
“9월23일 집회(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때도 차벽은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마무리 집회까지 평화적으로 잘했다. 절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집회도 가능하다. 오히려 경찰이 폭력을 유발한다.”
-경찰 차벽 없이 폴리스라인만 있었다면 시민들이 그것을 지켰을까?
“그렇다.”
-현장에선 ‘청와대로 가자’고 하는 말이 횡행했다.
“그 말은 대회사에서 내가 한 것이다. 그건 청와대로 가자는 뜻이 아니다. 청와대 앞마당을 우리가 점령한다고 뭘 할 수도 없다. 그냥 우리 노동자와 농민의 목소리, 하소연을 좀 들어달라는 취지로 한 연설이었다. 우리가 좀 가까이 가서 외쳐야 들릴 것 아닌가.”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면 정말 박근혜 대통령이 시민들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거라고 생각하나?
“(살짝 웃다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밀어붙이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복면도 못 쓰게 하려는 걸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좀 잘못 배운 분 같다.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유신시대가 부활하는 것 같다.”
-경찰 차벽을 밧줄로 끌어내리려는 건 민주노총의 전략이었나,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이었나?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이었다.”
-그런데 왜 경찰은 민주노총을 의심한다고 보나?
“공안탄압의 스토리를 짜맞추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노동자 대표조직들을 가맹조직 포함해 8곳을, 지역본부까지 수사하고 있는데 이건 전체 노동자들이 투쟁을 아예 못 하게 하려는 그런 목적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가 폭력집회를 조직했다는 어떤 증거도 안 나왔다.”
-경찰 압수수색으로 나온 해머와 밧줄은 뭔가?
“민주노총 기자회견이나 집회 때 얼음 깨는 퍼포먼스를 많이 한다. 그때 용도로 몇 개 준비해 둔 거다. 밧줄은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때 안전용으로 준비해둔 것이다. 2013년 철도노조 파업을 진압하려고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었다.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한 서울 중구) 경향신문 건물이 굉장히 복잡하다. 고층건물의 좁은 계단에서 경찰과 조합원이 실랑이하면 추락사고가 벌어지기 쉽다. 계단과 계단 사이 층층을 묶어 안전망으로 사용하려던 거였다. 과일 깎는 칼 하나 발견했다고 살인 혐의 증거 잡았다고 여론을 호도하고 선전하는 게 경찰의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폭력집회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폭력이란 표현에 동의 안 한다. 그건 민중의 분노였다. 평화와 불법,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다.”
-민주노총이 주관단체였다면 어느 정도 시민들을 집회에서 통제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중립적으로 할 수 있는 집회가 있을 수 있나. 이 정권이 그 정도 이야기하고 소통이 되는 정권이냐. 노동자·서민들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을 것 같아 그렇게 거리에 나가 민심을 표현한 건데 (민중총궐기 대회에 나온) 13만의 목소리에다 그 위험한 최루액으로 온몸을 목욕시키니 허탈하고 분노가 커질 수밖에.”
“자승 스님 편하게 느껴왔다”
-민주노총 압수수색은 1999년 민주노총 합법화 이후 처음이다.
“그야말로 막가자는 것이지. 노동자 대표조직을 압수수색하다니. 공포를 줘서 이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선전포고다. 더 반항하면 이렇게 된다는 본을 보이려는 목적이었을 거다. 주말에 기습적으로 당해 우리가 대비를 못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이렇게까지 민주노총에 강공일까?
“(단호한 말투로) 노동운동을 궤멸시키려는 거다. 지금 정부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를 법외노조로 만들려 하고 있다. 거기서 끝나지 않을 거다.”
-통합진보당 해산시킨 것처럼 민주노총도?
“소위 정권에 대항하는 저항세력으로 마지막 남은 게 민주노총이다. 저들은 해체하고 싶은 욕망이 클 거다. 자본은 계속 비정규직 늘려 이익을 찾으려 한다. 경제위기를 넘겨야 하고 권력은 영구집권을 해야 하니 민주노총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위대 일부를 두고 테러리스트 집단(IS)과 비교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쓰는 단어로 보기 어렵다. 국민 모두가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이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13만명을 어떻게 테러집단과 비교하나. 정권에 순응하지 않으면 적으로 규정하고 다시 독재로 돌아가겠다는 것인지.”
-도피처로 조계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어지러울 때 민중이 기댈 곳은 종교의 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불자다. 평소 사찰을 찾아 108배도 하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게 참 좋았다. 또 쌍용차 해고자들이 계속 죽음을 맞을 때 자승 총무원장께서 ‘살아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평택도 찾아와 위로해주시고 했다. 저는 그분을 참 편하게 느꼈다. 그래서 조계사로 오고 싶었다.”
-조계사 신도회에서 6일까지만 한 위원장의 조계사 체류를 인내하겠다고 밝혔는데.
“고민 중이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내 의지대로 되는 부분이 아니라 장담하기 어렵다. 5일 이전에 경찰력이 투입될 수도 있다.”
경찰이 체포영장을 통해 밝힌 한상균 위원장의 혐의는 4월16일, 4월18일, 4월24일, 5월1일 서울 도심에서 연 집회에 대한 ‘일반교통방해’다.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때 벌어진 일을 두고 경찰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를 추가해 다시 출석요구서를 발부한 상태다.
법원도 세월호 추모집회 관련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한상균 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한 위원장은 7월22일 열린 1차 공판, 8월16일 열린 2차 공판, 11월14일 열린 3차 공판에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 쪽은 법원에 출석하는 순간 경찰이 체포영장을 집행할 것이라 재판정에 출석하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왜 미리 경찰에 출석해 조사받지 않아 체포영장까지 발부받는 건가?
“민주노총의 대표는 관례적으로 경찰과 협의해 출석 일정을 조율해왔는데 이번에 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 출석요구서를 받고 ‘노동법이 개악되려 하는 살얼음판을 걷는 시기이니 6월에 경찰 출석하겠다’고 통보했는데 경찰이 5월에 바로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법원이 발부해버렸다.”
-종교시설을 투쟁의 거점으로 삼으려 하는 거 아닌가?
“난 오히려 이곳에서 제약된 생활을 하고 있다. 회의도 제대로 할 수 없다. 투쟁본부로 삼을 만한 공간이 아니다.”
“비정규직 연장은 재벌의 소원수리”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 그 대상이다.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새누리당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취업규칙 변경요건의 완화다. 채용, 인사, 해고 등과 관련한 사항의 변경을 좀더 완화하려는 게 정부·여당의 생각이다. 또 현재 법적으로 가능한 징계 해고와 정리해고 외에 ‘일반 해고’를 신설해 저성과자 직원을 해고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이밖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재원을 절감하고 그 비용을 청년 일자리 창출에 쓰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고 정부·여당은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이러한 노동법 개정이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리게 할 것이라며 개정안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2년 만에 회사에서 잘리는 걸 막고 4년간 고용보장을 더 늘리면 좋은 거 아닌가?
“황당한 소리다. 이 땅의 청년 노동자들이 인턴 거치고 비정규직 4년 거쳐서 정규직에 채용되려고 하면 30대 중반이 된다. 중간에 해고라도 당하면 더 나이를 먹는다. 그러면 정규직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후 연금이 있겠나, 뭐가 있겠나. 노후는 그냥 이 사회의 걸림돌이 될 게 뻔한데. 비정규직 사용 기한 4년 연장은 재벌의 소원수리다. 이걸 마치 청년과 비정규직 불평등을 해소하는 좋은 정책인 양 호도하다니.”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도 2년 비정규직 근무 뒤 정규직 채용이 무산됐다.
“그게 현실이다. 취업규칙을 재벌 마음대로 만들어서 사쪽에 찍힌 노동자를 저성과자로 내몰아 해고하고 노동조합 탄압 수단으로 만들게 뻔하다.”
-우리 경제가 계속 살아나지 못하니까 정부로서도 뭔가 대책을 내놓는 거 아니겠나?
“(심각한 표정으로) 신자유주의의 모순들이 적체돼 이제 과잉생산된 제품들이 팔리지 못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가 선순환되는 패턴이 멈춘 거다. 결국 전세계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소비를 촉진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안 그러면 이 체제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민주노총이 제안한 최저임금 1만원도 못 받겠다고 하고 있지 않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민주노총만 없었다면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었을 거라고 하던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몸을 던져 만들어온 노동자 조직에 어떻게 그런 막말을 할 수 있는지. 엊그제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적자를 운운하던 그런 정치인이 노동자 민중은 안중에도 없나? 소득이 3만달러 되고 5만달러 되면 뭐하나? 재벌들은 배가 터지고 청년과 노동자들은 굶주리고 사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혹시 대화하자고 하면 응할 건가?
“우리는 일관되게 노정간의 대화를 촉구해왔다. 한국 사회 소득 양극화와 노동자 일자리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적 준비가 다 되어 있다.”
-노사정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은 건 민주노총이잖나?
“그런 정해진 틀에 의해 정해진 주제로만 논의하는 자리를 갖자는 게 아니다. 거기서 민주노총은 들러리 역할만 하게 될 거다. 노사정 협의에 참여한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마저도 지금 노동개악 합의를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있지 않나. 노사정 협의에서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고 자본과 한편이 되어 있다. 이걸 받을래, 안 받을래 그런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니 이건 대화가 아니고 협박, 겁박이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대화하자는 건가? 예를 들어봐달라.
“내가 청와대도 갈 수 있다. 초청만 해주면. 티브이에서 정부 관료와 백분토론도 가능하다.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
80년 광주서 동창생들 쓰러질 때
도망칠 수 없어 학생시민군 역할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공장 지붕
노동자들 쓰러져가는 것 목격
2015년 오늘 다시 피가 끓는다
“평화시위를 하자
물대포를 쏘면 몸이 얼어도
동지애로 녹여 나가자
불의한 정권의 횡포가 결국
평화시위에 막힐 것이다”
“파업을 위해 파업하지는 않을 것”
-민주노총을 보면 좀 복잡한 느낌이다. 총파업을 선언할 때마다 막상 파업에 참여하는 사업장은 별로 없다. 그런데 후보군 중 강경파로 분류되던 한상균 위원장을 직접선거로 뽑은 것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었다.
“사실 총파업이 어렵다. 쉬우면 총파업이란 말도 안 나왔겠지. 다만 총파업을 가장 크게 할 수 있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12월 노동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고 여당이 통과시키려 하면 그때가 타이밍이다. 우리는 총파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파업을 위한 파업은 하지 않을 거다. 내용을 다 갖춰서 투쟁을 할 거다.”
-국민들이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지지할까? 국민 다수는 민주노총 주장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반감이 크다.
“잘 안다. 민주노총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가장 영향력이 컸을 때가 87년 대투쟁 이후였다. 투쟁도 훨씬 강하게 했고 파업도 장기간 할 수 있었다. 그건 노동자들이 이 투쟁으로 삶을 바꿔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국민에게서 멀어진 것 아닌가 싶다. 뼈를 깎는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내가 그래서 위원장에 출마한 것이다.”
한상균 위원장에게선 ‘학출’(학생 출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학의 먹물’을 먹지 않은 때문일까. 그가 사용하는 단어와 어법,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에선 어딘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진다. 세련되지 않은 그의 화법은 진정성의 몸뚱이를 가졌으되 투박함의 옷을 입었다. 노동자들은 그의 호소에 그래도 귀 기울인다. 중요한 건 옷이 아니라 몸뚱이다. 현장 노동자 출신이라는 진정성과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이란 신뢰감이 한 위원장에겐 가장 중요한 무기다.
한 위원장을 잘 아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동료는 이렇게 전했다. “2009년 쌍용차 파업 끝나고 한상균 지부장이 노조 간부들에게 ‘모든 것은 자신이 다 지시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경찰에 진술하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진술을 했고 간부들은 형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한상균 위원장만 3년형을 받았다. 조직의 리더로서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스타일이다.”
한 위원장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2009년 쌍용차 해고 반대 파업 때부터다. 그 이전에 그와 관련한 기록은 별로 찾을 수가 없다. 한 위원장이 노조 활동은 지속했지만 대체로는 공장 조립라인에서 노동자로서의 삶에 충실했기에 별다른 이력도 없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좀체 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고향이 어디인가?
“전남 나주다.”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이던데.
“광주기계공업고등학교(현 광주공업고)를 나왔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 먹고살기 힘들었다.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려고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62년생이니까 고등학교 다니던 시기에 광주민중항쟁을 목격했겠네.
“그렇다. 그때는 나보다 더 어린 학생들도 나섰던 시기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내 눈앞에 펼쳐지는 살인 만행을 가만두고 보기 어려웠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죄없는 시민들이 피 흘리고 죽는 것이 잘못된 것이란 것은 알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총알 먹고’ 돌아가신 분들, 부상당하신 분들을 병원으로 옮겼던 기억이 난다. 전쟁터 같은 곳에서 나는 학생 시민군이었다. 전남도청에도 들어가 지키려 했는데 형님들이 너무 어리다고 못 들어가게 해서 그것만 못 했다.”
-겁나지 않았나?
“그때는 내 목숨을 지키자는 생각은 잘 안 들었다. 다들 그랬다. 같이 시위 나왔던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 쓰러지고 피 흘리고 있는데 그걸 보고 도망갈 생각이 들 수 있겠나.”
-1980년 봄 광주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살아가는 데에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지. 국가가 국민을 공격하는 것을 볼 때 남들과는 같은 심정일 수 없다.”
-비슷한 장면을 2009년 8월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또 보고 말았는데.
“그때 가진 충격과 트라우마가 지금도 계속된다. 우리가 분명 민주화를 거쳤는데 국가는 어느 순간 다시 80년대로 돌아가 있었다. 내 동료들이 그 충격으로 하나둘 죽어갔고 그 영혼들이 지금도 내 가슴속에 핏덩이처럼 맺혀 있다.”
-2015년 겨울 비슷한 장면을 또 보는 느낌이겠다.
“칠순의 농민이 자신을 죽일 것처럼 쏘아댄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못 깨어나고 있다. 80년대에는 총칼을 앞세운 국가권력이었는데 지금은 총칼이 없어도 더 무서워. 자본을 앞세운 국가권력은 군사독재보다 더 참혹하다. 80년대 광주에서는 그래도 사람들에게 뭐가 있었냐면, 그렇게 열악한 삶이어도 내가 노력하면 삶이 좋아질 거란 희망이란 게 있었다. 비정규직이란 게 없던 시기였지. 그런데 이제는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평생 삶이 나아지지 않아. 국가가 온통 재벌들 곳간 불리는 일만 해. 이런 삶이 더 끔찍한 거다.”
2015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알려지기 전 한상균은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이끌면서 주목받은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9년 8월5일 평택 쌍용자동차 도장공장 지붕 위에서 국가가 휘두르는 곤봉에 노동자들이 낙엽처럼 쓰러져 가는 것을 목격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도 얼마 안 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파업구호가 현실로 다가왔지만 한 위원장이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 멀리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면 한상균은 군사정권의 ‘광기’가 학살의 춤을 추던 1980년 광주에서 국가폭력을 눈에 담고 피끓던 ‘열여덟 소년’이었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2015년 현재 그는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농민 백남기’를 마주하며 피끓는 시기를 다시 보내고 있다. 소년 한상균이 중년이 되어가는 동안 그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였을까. “글쎄… 어려운 질문이네. 국민에게 국가는 선거 때만 존재하는 개념 같다. 뭐라 답하기가 어려워.”
조인트 까이던 ‘공돌이’
-쌍용자동차 입사는 언제 어떻게 한 건가?
“군대 제대하고 80년대 초에 부산으로 갔다. 사상공단에서 용접도 하고 이런저런 일 하다가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랑 거화(쌍용자동차의 전신. 거화가 동아자동차가 되었다가 쌍용자동차에 인수된다) 두 군데에 이력서를 냈는데 다 붙었다. 자동차 쪽에 마음이 더 끌려 거화에 입사했고 그렇게 쌍용자동차 직원이 된 거다.”
-노동조합 활동은 언제부터 했나?
“1987년 민주노조 바람이 불 때 내가 스물다섯 때였다. 그때 노조설립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공장들에서도 다 고만고만한 나이에 노조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그때 우리는 노동자 대접을 못 받았다. 그냥 공돌이 공순이였다. 관리자들이 막말하고 그냥 불러다 ‘조인트’ 까고 그런 세상이었다. 그런데 노조를 세우니까 대우가 달라져. 노조의 중요성을 체감한 거지.”
-좀 과격하단 평가를 들으면 뭐라 답하나?
“사람들이 나더러 과격하다고 하는데 나는 인문학파다. 파블로 네루다의 책, 만델라 자서전, <백범일지>를 좋아한다. <백범일지>에서는 ‘아무리 내가 갖고 가는 짐이 적더라도 허투루 삶을 보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만델라 자서전을 보고는 ‘잊지는 말되 용서하라’는 교훈을 얻었다. 노동자를 탄압해온 사람들과의 갈등을 잊어선 안 되지만 나로서부터 화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쌍용차 동지들이 하나둘 죽어갈 때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책이다. 용서라는 메시지는 내게 큰 힘을 주었다.”
-당신이 민주노총 위원장이 된 뒤에도 쌍용차 해고자 문제는 전혀 진척이 없다.
“이 나라에 해고 사업장이 수십 군데다. 쌍용차는 그중 한 곳이다. 내 가슴속에 박혀 있는 그게 왜 없겠나. 하지만 내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쌍용차 문제 해결에만 나서면 여러 우려가 있을 것 같았다. 쌍용차 동지들에겐 미안하다.”
-부모가 살아계신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살아계신다. 어머니는 지금도 ‘누가 뭐라 해도 정의로운 일이니까 힘내라’고 격려하신다. 어머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자식들은 무얼 하나?
“큰딸이 올해 대학 4학년, 아들애가 대학 1학년이다. 지난주가 내 생일이었다. 전화로 축하한다고 연락을 주더라. 애들이 청소년기에 아빠가 감옥을 가고 해고자였다. 애들 입학과 졸업을 한번도 못 챙겨줬다. 이런 아빠한테 화 한번 내지 않는 애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재산의 99%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한 얘기가 ‘딸아,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렴’이었다. 나도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다. 딸이 시집갈 때 손도 꼭 잡아주고.”
한상균 위원장은 지난달 30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경찰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고 투병 중인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단식이라 한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묻자 그는 5일 집회에 참석하려는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평화시위를 하자. 물대포를 쏘면 몸이 얼어도 동지애로 녹여 나가자. 우리가 광장에 왜 나왔는지 그 본질이 희석되지 않도록 시민들에게 알리자. 불의한 정권의 횡포가 결국 우리의 평화시위에 막힐 것이다. 꼭. 꼭. 평화적으로.”
쌍용자동차 공장점거 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2009)가 있다. 파업 중인 조합원이 ‘저 달이 차기 전엔 끝나겠지…’라고 혼잣말하는 것을 듣고 제작진이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쌍용차 노조의 한상균 전 지부장은 여전히 복직투쟁 중이고,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은 이제 단식투쟁 중이다. 그가 바라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은 달이 얼마나 배를 불리고 꺼졌다를 반복해야 올 수 있을까. 한 위원장의 임기는 2017년 말까지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달변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연설은 호소력이 있다. 그가 살아온 길이 전하는 묵직한 무게감에서 비롯한 것 아닐까. 그는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파업을 이끌다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2015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그는 다시 한번 가시밭 같은 시련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관음전에서 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한상균 위원장이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법원이 체포영장 발부해 수배상태
현재 조계사 관음전에서 피신중
11월30일부터 백남기씨 쾌유 위해 단식
조계사 안에서 그를 만났다
좀 잘못 배운 분 같다
유신시대가 부활하는 것 같다
그래도 노정간 대화할 준비 돼
대통령이 부르면 청와대 갈 생각”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 정문 앞에서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는 집회를 마친 농민들과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시위대를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아이에스(IS)에 비유한 것에 항의하며 가면을 쓰고 집회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도망칠 수 없어 학생시민군 역할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공장 지붕
노동자들 쓰러져가는 것 목격
2015년 오늘 다시 피가 끓는다
물대포를 쏘면 몸이 얼어도
동지애로 녹여 나가자
불의한 정권의 횡포가 결국
평화시위에 막힐 것이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촬영하던 한 방송사 카메라 기자가 최루액이 담긴 물대포를 집중적으로 맞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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