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상했을까? 이번 선거가 어느 때보다 신뢰할 수 있는 여론조사 자료가 제공되지 못했고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공천 악수가 쏟아진 '깜깜이' 선거였더라도, 이 날의 결과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여론조사 전문가들, 정치평론가들은 아마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실제로 운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다.
표면적인 결과는 국민의당의 승리다. 제3정당을 표방한 수많은 선행사례들이 그랬듯이, 국민의당도 소리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막강한' 캐스팅보트를 가진, 향후 정국을 주도할 세력으로 우뚝 섰다. 새누리당이건 더민주건 이제 국민의당을 설득하지 못하는 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모양새가 됐다. 의석수는 38석이지만 과반 의석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보유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결과에서 주목할 지점은 무엇보다 한국 정치를 둘러싼 기존의 행동양식이 균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묻지마 지지를 낳게 한, '패권정치의 균열'이다.
흔들리는 패권, 높아진 선택의 자율성
가장 먼저 무너진 패권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신화다. 새누리당은 공천 잡음으로 판세가 흔들리자, 콘크리트 지지율을 가졌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연계하는 전략을 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개입'이라는 세간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격전지를 방문했고, 선거 당일 날에도 빨간 옷을 코디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총선결과를 연계한 전략은 정권의 레임덕을 가속화 하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사실은 진흙으로 만든 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 작은 균열도 커다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벌써부터 신화가 해체된 빈자리를 총선 책임론을 둘러싼 갈등이 대체할 기미가 보인다.
총선 결과의 후폭풍은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나타난 공동의 위기 앞에 타협과 화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올 법 하지만, 그간 정부가 보인 행태로 짐작건대 그 정도의 포용력과 이해심을 갖춘 멘탈리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화해와 타협은 일정한 양보와 잘못의 인정을 전제로 하지만, 과연 그럴 정도의 소양이 있을 것인가? 가능성이 낮다.
지역주의를 근간으로 한 패권도 흔들렸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은 물론, 더민주의 텃밭인 호남 역시 요동쳤다. 새누리당은 영원한 아성인 대구가 뚫렸음은 물론, 부산과 울산에서는 치명타를 입었다. 어떠한 '바람'에도 수도 서울의 교두보 역할을 해내던 강남신화도 깨졌다. 강남의 무효표 양산은 지금의 정치세력이 강남지역에 존재하는 어떤 마지노선마저 깨버렸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권이 승리한 곳의 내용도 흥미롭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 달성구(병)에서는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조원진 의원이 3선에 성공했지만, 무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공약으로 내세운 무소속 조석원 무소속 후보가 24%를 득표했다. 게다가 울산에서 승리한 두 명의 무소속 노동자 후보는 박근혜 정부가 해산시킨 통합진보당 출신이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주력하고 있는 노동개혁안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단지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으로 머물지 않았다. 지역패권이 균열된 것은 호남도 마찬가지다. 야권에서는 지역 이상의 의미를 가진 광주에서 더민주의 전패, 그리고 전남과 전북에서 고작 2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얻은 것은 묻지마 지지를 요구한 지역주의가 크게 흔들린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20대 총선은 야당의 승리가 아니라 여당의 패배다. 더민주는 야권분열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서울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실상은 더민주를 지지한 표심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서울 총 49석 중에 35석을 얻은 더민주는 서울지역 정당득표에서는 25.93%에 머물러 28.83%를 얻은 국민의당에 뒤졌다. 유권자들이 정권심판 투표를 감행하면서도 '더민주가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진 것이다.
결국 이번 총선은 집권여당의 패배임은 분명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를 규정하던 낡은 정치적 행동양식이 커다랗게 흔들리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일시적인 것인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인지는 아직 확언할 수 없지만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구조적 힘은 약해지고 변화를 가능케 할 행위의 자율성과 선택의 폭은 매우 높아진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국민의당의 약진, 야권 대선전략 수정은 불가피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최대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처럼 기존 구도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 정서가 한몫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야권 분열이 야당에 일방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진단과 달리, 국민의당 표는 '새누리는 싫지만 더민주도 싫은', '더민주도 싫지만 차마 새누리는 찍을 수 없는' 표를 쓸어 담았다.
이런 결과는 국민의당의 약진이 이른바 '안철수 현상'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2011년 재보궐 선거에서부터 나타난 안철수 현상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과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 투영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당의 성공적 결과 역시 거대 양당체제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결과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추구하는 새정치는 내용상의 새로움이라기보다 위치상의 새로움이다. 새누리의 막가파식 정치에 질린 합리적 보수와 '운동권 정당'이라는 실체 모호한 이미지를 뒤집어 쓴 더민주의 오른쪽 그룹을 수렴하겠다는 전략은 적중했다. 전통 야당지지자들은 물론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표 역시 효과적으로 흡수한 국민의당의 득표율은 국민의당 정강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모호함'이 주는 다양한 가능성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국민의당이 자리 잡은 정치적 위치는 더민주가 총선·대선 전략을 통해 자리 잡으려던 바로 그 위치다. 중도화·보수화 전략으로 중간층의 지지를 얻겠다는 발상은 국민의당의 존재로 인해 이제 그 실효성이 의심받을 처지에 놓였다. 중도화 전략 승부에서 더민주는 결코 국민의당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대선을 앞둔 더민주의 생존전략은 국민의당은 하지 못할 '선명야당' 노선으로의 회귀일 수밖에 없다. 더민주의 호남에서의 대패와 정당지지율 제3당이라는 결과는 국민의당 전략과 겹치는 '모호함의 전략'이 가져온 부정적 측면이다.
결국 새누리당-국민의당-더민주의 3당체제를 기반으로 한 향후 정치지형은 각각의 위치에서 더 분명한 가치 지향을 드러내는 방향에서 재편될 수밖에 없으며, 그 내용은 새로운 정치구조의 탄생으로 귀결될 것이다.
열린 공간, 우리는 새로움을 만들 수 있을까?
향후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각 정치세력은 총선 결과를 둘러싼 각가지 묘수와 전략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고, 새로운 승부수들이 던져질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정권과 여당이 총선 결과를 민의로 수용하고 자신들이 밀어붙이려 했던 여러 시나리오를 포기할 리는 없다.
그들에게는 '정권교체'만큼 끔찍한 결과는 없을 것이며, 그 결과를 막기 위해서라면 다양한 창조성을 발휘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 날부터 검찰은 울산에서 승리한 윤종오 당선자의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섰고, 당선자 98명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행위의 자율성이 높아진 시점이다. 국민들이 절묘하게 현재의 퇴행적 정치흐름을 저지해 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이후의 전망을 그려내고 압박할 가능성도 열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진보정치의 주변화는 뼈아픈 대목이다. 정의당이 기존 의석보다 1석이 늘었고, 울산에서도 진보정치인이 2명이나 탄생했지만 지금의 구도에서 의미 있는 원내 활동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노동당과 녹색당, 민중연합당 등 진보정당을 표방한 정치세력의 성적표도 초라하다. 아마도 과거 진보정치가 지난한 내부 갈등으로 대중적 지지를 소진하지 않았다면, 안철수에게 투영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은 진보정당에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원내 정당은 아니더라도, 심지어 정당이 아닌 이들도 할 수 있는 역할은 남아 있다. 지금의 가변적인 공간, 높아진 행위자의 자율성 틈 속에 국민의 목소리를 투영해 내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의 목소리가 엉뚱한 곳으로 향해 가지 않도록 적극적인 행동 역시 필요하다. 물론 의문은 남는다. 이런 노력이 현재의 퇴행을 저지하는 것을 넘어, 새로움을 만들 힘으로 커질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제동은 이미 걸렸고, 새로운 공간은 열렸다.
표면적인 결과는 국민의당의 승리다. 제3정당을 표방한 수많은 선행사례들이 그랬듯이, 국민의당도 소리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막강한' 캐스팅보트를 가진, 향후 정국을 주도할 세력으로 우뚝 섰다. 새누리당이건 더민주건 이제 국민의당을 설득하지 못하는 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모양새가 됐다. 의석수는 38석이지만 과반 의석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보유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결과에서 주목할 지점은 무엇보다 한국 정치를 둘러싼 기존의 행동양식이 균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묻지마 지지를 낳게 한, '패권정치의 균열'이다.
흔들리는 패권, 높아진 선택의 자율성
▲ 박근혜 대통령 투표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가장 먼저 무너진 패권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신화다. 새누리당은 공천 잡음으로 판세가 흔들리자, 콘크리트 지지율을 가졌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연계하는 전략을 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개입'이라는 세간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격전지를 방문했고, 선거 당일 날에도 빨간 옷을 코디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총선결과를 연계한 전략은 정권의 레임덕을 가속화 하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사실은 진흙으로 만든 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 작은 균열도 커다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벌써부터 신화가 해체된 빈자리를 총선 책임론을 둘러싼 갈등이 대체할 기미가 보인다.
총선 결과의 후폭풍은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나타난 공동의 위기 앞에 타협과 화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올 법 하지만, 그간 정부가 보인 행태로 짐작건대 그 정도의 포용력과 이해심을 갖춘 멘탈리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화해와 타협은 일정한 양보와 잘못의 인정을 전제로 하지만, 과연 그럴 정도의 소양이 있을 것인가? 가능성이 낮다.
지역주의를 근간으로 한 패권도 흔들렸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은 물론, 더민주의 텃밭인 호남 역시 요동쳤다. 새누리당은 영원한 아성인 대구가 뚫렸음은 물론, 부산과 울산에서는 치명타를 입었다. 어떠한 '바람'에도 수도 서울의 교두보 역할을 해내던 강남신화도 깨졌다. 강남의 무효표 양산은 지금의 정치세력이 강남지역에 존재하는 어떤 마지노선마저 깨버렸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권이 승리한 곳의 내용도 흥미롭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 달성구(병)에서는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조원진 의원이 3선에 성공했지만, 무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공약으로 내세운 무소속 조석원 무소속 후보가 24%를 득표했다. 게다가 울산에서 승리한 두 명의 무소속 노동자 후보는 박근혜 정부가 해산시킨 통합진보당 출신이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주력하고 있는 노동개혁안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단지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으로 머물지 않았다. 지역패권이 균열된 것은 호남도 마찬가지다. 야권에서는 지역 이상의 의미를 가진 광주에서 더민주의 전패, 그리고 전남과 전북에서 고작 2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얻은 것은 묻지마 지지를 요구한 지역주의가 크게 흔들린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20대 총선은 야당의 승리가 아니라 여당의 패배다. 더민주는 야권분열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서울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실상은 더민주를 지지한 표심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서울 총 49석 중에 35석을 얻은 더민주는 서울지역 정당득표에서는 25.93%에 머물러 28.83%를 얻은 국민의당에 뒤졌다. 유권자들이 정권심판 투표를 감행하면서도 '더민주가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진 것이다.
결국 이번 총선은 집권여당의 패배임은 분명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를 규정하던 낡은 정치적 행동양식이 커다랗게 흔들리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일시적인 것인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인지는 아직 확언할 수 없지만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구조적 힘은 약해지고 변화를 가능케 할 행위의 자율성과 선택의 폭은 매우 높아진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국민의당의 약진, 야권 대선전략 수정은 불가피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4일 오전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최대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처럼 기존 구도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 정서가 한몫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야권 분열이 야당에 일방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진단과 달리, 국민의당 표는 '새누리는 싫지만 더민주도 싫은', '더민주도 싫지만 차마 새누리는 찍을 수 없는' 표를 쓸어 담았다.
이런 결과는 국민의당의 약진이 이른바 '안철수 현상'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2011년 재보궐 선거에서부터 나타난 안철수 현상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과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 투영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당의 성공적 결과 역시 거대 양당체제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결과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추구하는 새정치는 내용상의 새로움이라기보다 위치상의 새로움이다. 새누리의 막가파식 정치에 질린 합리적 보수와 '운동권 정당'이라는 실체 모호한 이미지를 뒤집어 쓴 더민주의 오른쪽 그룹을 수렴하겠다는 전략은 적중했다. 전통 야당지지자들은 물론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표 역시 효과적으로 흡수한 국민의당의 득표율은 국민의당 정강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모호함'이 주는 다양한 가능성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국민의당이 자리 잡은 정치적 위치는 더민주가 총선·대선 전략을 통해 자리 잡으려던 바로 그 위치다. 중도화·보수화 전략으로 중간층의 지지를 얻겠다는 발상은 국민의당의 존재로 인해 이제 그 실효성이 의심받을 처지에 놓였다. 중도화 전략 승부에서 더민주는 결코 국민의당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대선을 앞둔 더민주의 생존전략은 국민의당은 하지 못할 '선명야당' 노선으로의 회귀일 수밖에 없다. 더민주의 호남에서의 대패와 정당지지율 제3당이라는 결과는 국민의당 전략과 겹치는 '모호함의 전략'이 가져온 부정적 측면이다.
결국 새누리당-국민의당-더민주의 3당체제를 기반으로 한 향후 정치지형은 각각의 위치에서 더 분명한 가치 지향을 드러내는 방향에서 재편될 수밖에 없으며, 그 내용은 새로운 정치구조의 탄생으로 귀결될 것이다.
열린 공간, 우리는 새로움을 만들 수 있을까?
향후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각 정치세력은 총선 결과를 둘러싼 각가지 묘수와 전략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고, 새로운 승부수들이 던져질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정권과 여당이 총선 결과를 민의로 수용하고 자신들이 밀어붙이려 했던 여러 시나리오를 포기할 리는 없다.
그들에게는 '정권교체'만큼 끔찍한 결과는 없을 것이며, 그 결과를 막기 위해서라면 다양한 창조성을 발휘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 날부터 검찰은 울산에서 승리한 윤종오 당선자의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섰고, 당선자 98명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행위의 자율성이 높아진 시점이다. 국민들이 절묘하게 현재의 퇴행적 정치흐름을 저지해 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이후의 전망을 그려내고 압박할 가능성도 열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진보정치의 주변화는 뼈아픈 대목이다. 정의당이 기존 의석보다 1석이 늘었고, 울산에서도 진보정치인이 2명이나 탄생했지만 지금의 구도에서 의미 있는 원내 활동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노동당과 녹색당, 민중연합당 등 진보정당을 표방한 정치세력의 성적표도 초라하다. 아마도 과거 진보정치가 지난한 내부 갈등으로 대중적 지지를 소진하지 않았다면, 안철수에게 투영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은 진보정당에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원내 정당은 아니더라도, 심지어 정당이 아닌 이들도 할 수 있는 역할은 남아 있다. 지금의 가변적인 공간, 높아진 행위자의 자율성 틈 속에 국민의 목소리를 투영해 내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의 목소리가 엉뚱한 곳으로 향해 가지 않도록 적극적인 행동 역시 필요하다. 물론 의문은 남는다. 이런 노력이 현재의 퇴행을 저지하는 것을 넘어, 새로움을 만들 힘으로 커질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제동은 이미 걸렸고, 새로운 공간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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