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각)은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가 열린 날이었다. 우리나라는 올해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최경림 의장)이다.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UN)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난 1월 한국을 방한해 한국의 집회·결사 자유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이날 최종 조사 보고서를 UN 인권이사회에서 발표했다.
키아이 특보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의 집회·결사의 자유가 탄압받고 있다면서 특히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집회 신고와 경찰의 차벽과 물대포 사용, 집회 참가자에 대한 민·형사상 탄압, 교사와 공무원 등 노동조합 설립의 어려움, 기업의 노조 무력화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전 세계가 주목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그것도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 주도한 회의에서 이 같은 중요한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됐지만, 한국 언론에선 이런 내용의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관련기사 : 백남기씨 딸, UN에서 “5초만 아빠에게 말할 기회를”)
▲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UN)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1월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방한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키아이 특보는 차벽과 물대포를 사용하는 한국 정부의 집회·시위 진압 방식에 대해 “물대포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할 위험성을 증가시킨다”며 “차벽은 상대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의 행동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사전적으로 저해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어 물대포와 차벽 사용을 재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엔 세월호 참사와 그에 따른 집회 부분은 아예 별도로 언급됐다. 키아이 특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된 진상규명 요구가 무시됐다는 불만의 표출이야말로 평화적 집회에 대한 권리가 촉진돼야 하는 목적”이라며 “법치의 주요 요소인 책임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을 정부를 흠집 내려는 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삼성과 공영방송 MBC에서 벌어지는 노조 탄압도 같은 꼭지로 묶였다. 보고서는 “한국의 노동단체들은 삼성이 ‘무노조 경영’ 정책으로 노조원에 대한 감시와 위협,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고용주의 책임과 노동자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위장 하도급 등 다양한 전략으로 계속해서 노조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호소한다”며 “삼성 관계자들은 노조의 설립과 가입은 전적으로 직원에게 달렸다고 부인하지만, 한국에서 삼성그룹의 크기나 지위, 명성에 비춰볼 때 삼성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증진하는 동시에 인권을 돌보는 기업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17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
역시나 MBC는 한국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보고서 내용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KBS는 뉴스 리포트를 내보내진 않았지만 17일 멀티미디어뉴스를 통해 UN보고서와 정부의 반박 보고서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전했다. SBS도 인터넷 뉴스와 카드뉴스를 통해 UN 인권이사회가 집회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임에도 한국에서 보장되고 있지 않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상파 3사 모두 저녁 메인뉴스는커녕 단신으로도 이런 내용을 방송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매번 비교의 대상이 되지만, 이번에도 JTBC는 17일 ‘뉴스룸’에서 “유엔 ‘한국, 집회 자유 뒷걸음질’…인권이사회에 보고”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지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32번째 이사회에선 한국의 집회 결사의 자유 수준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18일자 사설에서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억압·통제가 국가안보나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4·13 총선 때 낙천·낙선운동을 한 참여연대 등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압수수색을 하면서 전경련, 국정원, 청와대가 얽혀있는 어버이연합에 대해 2개월째 참고인 조사조차 하지 않는 것은 정권안보에 몰입된 공권력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 18일자 경향신문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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