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함미의 좌현 프로펠러(스크루)는 반시계방향으로, 우현 프로펠러는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손상된 실제 천안함 프로펠러는 우현 프로펠러만 휘어져 있다. 정부발표는 1번 어뢰가 천안함 좌현에서 폭발했다 하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좌현 프로펠러가 멀쩡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러나 실제론 우현 프로펠러가 (어떤) 힘을 더 받은 것으로 보인다.” (A학생)
“‘북한 군의 특이동향 탐지 못했다’(월터샤프 한미연합사령관 2010년 3월28일), ‘가정을 전제로 답변하고 싶지 않다’(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 같은해 4월26일),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현재로선 어떤 추정도 하지 않을 것’(필립 크롤리 국무부 차관보 5월11일) 등 신중한 입장이었던 미국은 5월20일 이후 한국 측 결론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B학생)
“요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재료와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천안함 흡착물질도 재료와 방법을 알아야 알 수 있다…알루미늄 산화물은 산소를 만난 알루미늄의 상태로, 알루미늄에 얇은 피막이 형성된 것을 뜻한다.” (C학생)
지난 7일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전공선택 과목의 발표 수업에서 학생들이 발표한 대목의 일부이다. 수업 명은 ‘과학기술의 사회학’. 언뜻 보면 과학기술이나 사회학이라는 말과 천안함 사건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도 싶지만, ‘천안함 사건의 의문점’을 학생들이 각자 조사해와서 발표하는 것이 이 과목의 발표수업이었다. 이 과목은 지난 14일 수업을 끝으로 종강했다. 종강 수업 때엔 천안함 의혹을 제기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중인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민군합조단 민간조사위원)가 재판과정 등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했다. 기말시험을 천안함 조사 사례발표로 대신했다고 한다.
▲ 지난 14일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전공선택 과목 '과학기술의 사회학' 발표 수업 현장. 학생들이 천안함 조사결과를 쟁점별로 분석해 발표했다. 사진엔 김홍열(왼쪽) 겸임교수와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사진=조현호 기자 |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2013년 이 과목을 처음 맡은 뒤부터 4년째 학생들에게 천안함 발표를 하도록 해왔다. 중간고사 전까지는 과학의 사회학적 의미 등 전반적인 내용으로 강의한 뒤 마지막 3~4주 간 천안함 발표로 수업 진행을 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의 천안함 조사 발표를 수업에 넣은 것과 관련해 “근대 이후 과학이 진리로 여겨지며, 신을 몰아낸 자리에 과학이 들어왔다고 할 정도로 신의 영역을 차지했다”며 “하지만 이런 현상(과학에 대한 추종)이 남용돼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진화론’, ‘제국주의 이론’으로 이어지며 열등한 민족을 죽이는 도구가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학도 사회적 관계에 의해 생성된 것이므로 이 역시 끊임없이 비판적 분석과 검증, 반박의 대상이 돼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는 과학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행위에 대항하면 ‘무식하다’는 식의 박해를 받곤 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이 과목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학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적합한 대상이 천안함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천안함 사건은 국가에서 조사하고 발표를 했지만 반박하는 사람도 많았고, 반박의 내용 자체가 과학적이었다”며 “이런 쟁점에 대해 우리 학생들도 과학적으로 스스로 조사하고 분석해보도록 해서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힘을 키워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학문을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연구하고 비판하고 넘어서거나 문제점에 대한 솔루션을 찾는 과정”이라며 “천안함 조사결과 역시 이런 분석을 통해 넘어서야할 학술적 아이템의 하나”라고 말했다.
▲ 지난 14일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전공선택 과목 '과학기술의 사회학' 발표 수업 현장. 학생들의 발표후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기자 |
천안함 정부 발표에 대해 김 교수는 “정부가 과학적 조사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으나 ‘과학’은 열려 있어야 한다. 신의 자리를 대신하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며 “정부 발표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정부가 과학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 아닌, 권력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2016년 1학기 ‘과학기술의 사회학’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은 이 수업 이후 천안함 사건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3학년 이아무개(24) 학생과 권아무개(24) 학생은 지난 14일 종강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사회과학부 수업들 가운데 과학기술과 관련된 과목이 없어서 호기심에 이 과목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나란히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받으며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 잠수정이 쏜 어뢰에 맞고 천안함이 폭침당했다’는 정부발표 내용만을 알고 있었을 뿐 정부발표의 의문점 등은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발표수업 준비를 하고, 직접 발표해보고 나서 생각에 많은 변화가 왔다는 것이다. 좌초설을 조사해 발표했다는 권씨는 “그동안 너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믿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발표하고 나니 정말 천안함이 좌초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천안함 CCTV의 의문점을 조사 발표했다는 이씨는 “수업준비를 하기 전에 천안함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었으나 발표한 이후 ‘우리가 어떤 사건을 의심없이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정부 발표에 대해 권씨는 “언젠가 천안함 조사 및 발표를 행정부(국방부) 쪽이 아닌 사법부에서 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며 “내용 보다 형식적, 절차적 측면에서 부적절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사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내용적인 면에 대해 권씨는 “멀쩡한 ‘형광등’이 아직도 큰 잔상으로 남았다”며 “시간이 지나면 (발표준비하면서 공부한 많은 내용을) 까먹겠지만 그 부분은 계속 기억될 것 같다. 어떻게 안깨질 수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발표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이 학생은 덧붙였다.
이씨는 “수업 준비를 하면서 정부 발표의 한계에 대한 실체를 본 느낌이었다”며 “함수가 계속 떠 있었다 떠내려간뒤 거기서 한 명의 시신이 나온 것을 보고 무섭기도 했다”고 전했다.
▲ 천안함의 멀쩡한 형광등. 사진=블로거 김경석씨 |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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