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방송영상) 보시니까 어떠세요?”
“창피합니다.”
“BJ에는 ‘브로드캐스팅’이 들어가는데 상당한 책임감을 가지시고,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라도 모범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창피합니다.”
“BJ에는 ‘브로드캐스팅’이 들어가는데 상당한 책임감을 가지시고,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라도 모범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 의견진술 자리에서 박신서 위원과 아프리카TV BJ 철구형의 대화 내용이다. 이날 방통심의위는 아프리카TV에서 욕설 방송이 문제가 되자 방송사 PD부르듯 아프리카TV 관계자와 BJ 등 10명을 불러 의견진술을 듣고 제재를 내렸다.
인터넷 방송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무한도전’ 대신 철구형의 1인 방송을 보고, ‘뽀뽀뽀’의 뽀미언니 못지않게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의 캐리언니가 인기를 끌고 있다.
페이스북 라이브, 페리스코프 등 글로벌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인터넷 생중계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누구나 쉽게 인터넷 방송을 제작하고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정부와 심의·규제기관은 인터넷 방송의 규제공백이 커지는 걸 우려하며 대대적인 제재를 내리고 있다. 지난 1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방송사이트 썸TV에서 음란방송이 이어지고 있다며 ‘사이트 폐쇄조치(이용해지)’를 내린 일은 상징적이다. 인터넷 방송사업자들에게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엄포를 놓은 셈이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4일 인터넷방송업체 대표 간담회를 열었다. 정찬용 아프리카TV 부사장, 김대권 팝콘TV 대표, 김경익 판도라TV 대표, 이병선 카카오 부사장, 조용범 페이스북코리아 지사장, 임재현 구글코리아 정책실장이 참석했다.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
같은 날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은 간담회를 열고 이병선 카카오 부사장, 조용범 페이스북코리아 지사장, 임재현 구글코리아 정책실장, 정찬용 아프리카TV 부사장 등을 불러냈다. 이 자리에서 박효종 위원장은 “(인터넷 방송에) 문제가 반복돼 사회적으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인터넷 방송 집중 실태점검을 했고, ‘자율권고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며 사업자들을 압박해왔다. 지난해 인터넷 방송에 대한 시정조치는 73건에 달한다.
정부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인터넷 방송’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0일 의결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은 인터넷 방송에서 불법정보가 유통되는 걸 알고도 방치하는 부가통신사업자에게 ‘유통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 의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 과태료 등을 부과하게 된다. 이는 여태껏 없었던 제재다. 부가통신사업자에는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인터넷 방송,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포함된다. 페이스북이 선정적인 동영상을 고의로 삭제하지 않는다면 과태료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MCN(Multi Channel Network)과 팟캐스트를 언론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인터넷 방송에 위협적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방송에 ‘선정성’ 위주로 제재를 내리는 이유는 인터넷방송 사업자들이 방송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해당 법의 ‘청소년보호의무’를 근거로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을 언론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면 과거 포털이 그랬듯 정치적인 압력을 받게 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류정호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심의운영팀장이 지난해 11월 언론중재위원회 간행물인 ‘미디어와 인격권’에 투고한 논문은 인터넷 방송도 언론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규제기관의 시각이 반영돼 있다. 류정호 팀장은 “(인터넷 방송이) 동일한 형식과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적인 법적지위를 부여받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언론중재제도의 공백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똑같은 팟캐스트라도 언론사인 한겨레가 운영하는 ‘김어준의 파파이스’는 언론중재 대상이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김용민 브리핑’은 중재대상이 아니다. 뉴스서비스사업자인 네이버가 운영하는 인터넷 동영상서비스 V(브이)는 언론중재 대상이지만, 프릭(FreeC) 등의 MCN사업자는 언론중재를 받지 않는다. 논문은 사업자의 성격은 다르지만 인터넷 방송들은 사실상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언론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지난해 입법을 추진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 역시 이 같은 시각이 일부 반영돼있다. 확대된 언론중재 대상에 실시간 방송기능이 있는 SNS가 포함된다. 앞서 나는꼼수다 열풍이 한창이던 2011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뉴미디어정보심의팀을 만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및 스마트폰 앱의 심의·감시업무를 추진해 “팟캐스트 심의제재를 위한 기구가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 CJ E&M은 '1박2일'의 MCN판 '신서유기'를 제작해 화제가 됐다. |
일련의 흐름에선 1인방송 및 MCN, 팟캐스트 등 인터넷 방송이 ‘규제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에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정부와 심의·규제기관의 시각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인터넷의 특성상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고, 해서도 안 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대다수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인터넷 방송 특성상 이 문제를 방지하려면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갖춰야 한다. 비실시간으로 이뤄지는 팟캐스트의 경우 문제적 대목을 잡아내라는 건 사전검열을 도입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표현의 자유를 해칠 가능성이 크고, 현실적으로 통제가 가능하지도 않다.
근본적으로 인터넷 방송을 ‘방송’으로 여기는 시각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인터넷 방송은 비유적으로 방송이라는 표현을 쓸 뿐 정부가 허가하는 방송과 무관한 개념이다. 1인방송, 팟캐스트 등 사적 표현물을 관리대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사고”라고 지적했다. 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심의’가 아닌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하는 ‘통신심의’를 통해 인터넷 방송을 제재한다.
그러나 정작 심의제재를 하는 위원들은 ‘방송’의 잣대로 평가하는 게 문제다. 지난 2월 김성묵 방통심의위 부위원장이 욕설을 해 논란이 된 아프리카TV BJ를 불러다놓고 “지금 이게 어느 나라 방송이에요? 저렇게 욕설하는 게 대한민국의 방송이에요?”라는 발언을 했는데, 심의위원들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손지원 변호사는 “방통심의위 회의 참관을 하면 심의위원들이 인터넷 방송을 가리켜 ‘공공재인 방송’이라고 하고, 인터넷방송사업자 대표를 ‘공인’이라고 표현한다. 방송사 제작진을 호출하듯 BJ들이 의견진술 출석을 해 호통을 들어야 한다”면서 “몰이해에서 과도한 제재가 나온다”고 말했다. 심석태 SBS뉴미디어실장(미국 뉴욕주 변호사)은 “MCN 등 인터넷 방송을 기존의 방송매체와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건 모기잡는 데 도끼 들고 나오는 격 같다”고 지적했다.
방송업계에서는 인터넷 방송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산업 발전에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3월 웹드라마 ‘꽃보다 백합’이 동성키스 장면을 이유로 심의제재를 받자 MCN 업계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 MCN업계 관계자는 “앞에선 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MCN을 비롯한 인터넷 방송 진흥을 한다더니, 제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건 이중적”이라고 꼬집었다.
웹예능 프로그램인 신서유기를 제작한 나영석 PD는 지난달 신서유기2 제작발표회에서 “최소한의 (내용) 필터링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TV라는 장르와 웹이라는 장르는 좀 다르다. 자율성을 보장해준다면 제작진들이 더욱 다양한 시도를 과감히 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을 규제의 사각지대로 여기는 시선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석태 실장은 “(문제가 있다면) 민법상으로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다. 사각지대에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도 타율규제가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음란물 유포 등 불법행위가 벌어진다면 법으로 처벌하면 되는 것으로, 별개의 심의기구를 만들고 제재를 내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콘텐츠에 문제가 있다고 플랫폼사업자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해 국제 정보인권단체들은 ‘마닐라 선언’을 통해 “정보매개자(플랫폼사업자)에게 불법정보를 거를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 유통을 하는 플랫폼사업자에게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면 임의적인 검열로 이어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이유에서다. 오픈넷 역시 17일 논평에서 “단순히 불법정보가 다수 유통되고 있다거나 사전에 유통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플랫폼 사업자에)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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