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장 이재명이 지난 6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작한 단식투쟁을 열하루 만인 17일 오전에 끝냈다. 그는 단식에 들어가면서 “박근혜 정부가 지자체 밥줄을 끊으려 한다면, 나도 끊겠다!”라는 글이 적힌 펼침막을 내걸었다. 그는 거기에 “김대중 대통령이 살리고 / 노무현 대통령이 키우고 / 박근혜 대통령이 죽이는/ 지방자치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곁들였다. 이재명은 박근혜에 맞서 단식투쟁을 벌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지자체들에 교육비니 기초연금제니를 떠넘기고 약 4조7천억원을 뺏어갔다. 정부도 인정하는 액수고 들려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러니 전국의 226곳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220곳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바로 부도가 나는 상황이다. 남아 있는 6곳이 경기도의 수원, 화성, 고양, 용인, 과천, 성남이다. 여기는 정부 보조를 전혀 받지 않고 자체 세입만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6곳에서 5천억원을 뺏어서 다른 지역에 나눠주겠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은 이재명의 이런 주장에 대해 설득력 있는 변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집권 30개월이 다 되어 가는 현재 국민경제가 절망적 침체에 빠져 있는 마당에 기껏 시도한다는 것이 6개 도시의 세입을 빼앗아 나머지 220개 지자체에 나눠주는 ‘선심’을 쓰겠다는 것이니 누가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의 단식에 대해 정부쪽이 보인 반응은 행자부가 “2014년 1월 6일부터 2016년 6월 30일 사이의 특정 날짜를 지정해 이재명의 일정 내역을 제출하라”고 성남시 감사관실에 요구한 것뿐이었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일정을 내놓으면 내 90일의 일정도 내놓겠다”고 응수했다.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68년이 가까워지기까지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단식투쟁을 벌인 지자체장은 이재명이 처음일 것이다. 그가 제기한 문제도 민주제의 근간들 가운데 하나인 지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는 아주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극우보수언론과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의 단식투쟁을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일부 진보적 매체들만이 보도와 논평을 내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이재명의 싸움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시민단체들, 그리고 야권의 정치인들이 그를 찾아 응원하고 격려했다.
이재명은 ‘입지전(立志傳)적’이라는 상투적 용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투사’이자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그의 성장 과정 자체가 한국사회 소외계층의 고통과 수난을 상징하고 있다.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로 민주헌정을 뒤엎고 정권을 빼앗은 지 3년 뒤인 1964년에 태어난 이재명은 어린 시절부터 지옥 같은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 했다. 그의 부모는 경북 안동의 산꼭대기 아래서 화전을 일구며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경기도 성남으로 올라온 뒤 아버지는 시장에서 청소를, 어머니는 시장 화장실 문에서 ‘요금’을 받는 일을 했다. 그러니 5남 2녀가 반지하 단칸방에서 부모와 함께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가까스로 마친 소년 이재명은 야구 글러브 공장에 다니다가 왼쪽 팔목뼈 하나가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해 지금도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그는 마음을 다잡은 뒤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에 ‘월급’을 받는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6월항쟁 전 해인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 글의 제목을 “더 많은 ‘이재명’이 필요하다”라고 뽑은 까닭은 초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자체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신음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밝은 기운을 안겨주고, 이명박근혜 정권이 숨통을 조아버린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데 앞장설 정치지도자를 갈망하는 대중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지방자치 행정가로서, 정치인으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그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전임자인 이대엽(연기자 출신, 한나라당원)이 8년 동안 시장을 하면서 파탄 상태에 빠트린 재정과 운영을 빠르게 바른 궤도에 올려놓았다. 2014년 선거에서 성남시의 보수적 지역인 분당에서조차 압도적 지지를 받아 시장에 재선된 이재명은 청년 배당, 무상 산후조리, 무상교복 지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시민들을 위한 정책들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극우세력과 보수언론이 ‘좌파’라고 공격해도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내년 12월에는 19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여권과 야권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대권주자’ 명단에 올라 있고, ‘경마 중계방송’ 식으로 보도되는 여론조사 결과들에서는 수시로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 이재명은 지난 4월 1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정치BAR-라이브톡톡’)에서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사실상 공식으로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출마했을 때) ‘웃기네’ 정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어야지 전혀 가능성이 없는데 나오면 한겨울에 뛰쳐나온 개구리 신세가 된다.” 그는 지난 1월 23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선 관련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대통령,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안 되니 못하는 것 아닌가? 저 놈 대통령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3% 생겨났다. 하지만 (대권은) 주마가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민심의 문제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5% 미만의 지지율에서 시작해 클린턴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버니 샌더스는 자신이 수십년 동안 추구하고 실천해온 ‘민주사회주의적 가치와 정책’을 미국의 대중에게 더 알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경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회 기득권 체제가 너무 강고하다. 그들이 볼 때 나는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이고 너무 원론적이다. 그래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클린턴 지지자들도 샌더스에 대해이와 비슷한 우려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그가 제시하는 정책과 이념은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저 후보야말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이라는 인식을 주권자들에게 심어주면서 다른 경쟁자들이 저런 장점을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의 대통령선거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수구보수적 체제가 영구화되다시피 하느냐, 그보다 진취적이고 결단성 있는 후보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민주주의와 민생을 살리고 꽉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터 통일의 길을 열 수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야권에서 이재명 같은 정치인들이 선의의 경쟁에 더 많이 참여해서 최선의 결과를 이루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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