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임우재(46) 삼성전기 고문의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월간조선> 기자가 임씨를 만나 비보도를 전제로 들은 얘기를 인터뷰 형식의 기사로 15일 내보냈기 때문이다. 당시 만남을 주선했던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은 “임씨는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한 게 아니다. 그 기자가 기사화하지 않기로 약속한 뒤 일방적으로 약속을 깬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한겨레>도 <월간조선> 기자가 지난 14일 임씨를 만난 점심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한겨레>는 지난달 9일 임씨를 처음 만났다. 국외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을 하고 있는 혜문 대표를 통해서였다. 그는 ‘우연히 임 고문을 알게 됐는데, 언론에 알려졌던 것과는 다른 사람 같다’며 임 고문을 만나볼 것을 제안했다. 당시 몇몇 언론은 임씨가 가정에서 폭력을 일삼고 이부진 사장 쪽에 돈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임씨는 당시 <한겨레>를 만나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 그는 ‘이부진 사장이 경영인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아내로서도 훌륭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임씨는 “이부진 사장의 변호인이 이혼소송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며 아내와의 화해를 방해하고 이혼으로 이끌어 갔다”며 분노했다. 그는 설사 이혼을 하더라도, 재판이 끝나고 난 뒤 언론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임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우리 사회의 평범한 상식을 이해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라면을 먹을 줄 아는 아이, 먹은 음식 그릇을 깨끗이 치울 줄 아는 아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따뜻한 품을 아는 아이’로 커갔으면 하는 아빠의 소박한 바람이 대화 속에서 느껴졌다.
그는 서민 출신인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의 사위가 되어 맞닥뜨린 각종 설움과 울분을 토로했지만, 대화의 마무리는 항상 ‘단란한 가정의 회복’에 대한 고민이었다. 임씨는 이후 <한겨레>를 한 차례 더 만나 이혼소송을 진행하는 어려움 등을 토로했다.
<한겨레>는 임씨가 털어놓은 얘기를 이혼소송 항소심 선고 뒤 적절한 방식으로 대중에 공개할 것을 제안했으나 임씨는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이혼소송과 아들한테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고 했다. <한겨레>는 임씨가 동의하지 않는 한 기사를 쓰지 않기로 약속했다.
지난 14일 만남에서는 혜문 대표가 <월간조선> 기자를 데리고 나왔다. 그 기자는 임씨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혜문 대표는 그날 밤 11시께 <한겨레>에 연락을 해왔다. 혜문 대표는 “<월간조선> 기자가 오늘 들은 이야기를 기사로 쓰겠다고 한다. 내가 설득이 안 되니 <한겨레>가 좀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혜문 대표의 부탁에 따라 해당 기자에게 연락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고, 다음날 임씨가 정식으로 인터뷰한 것처럼 <조선일보>에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있었다. 임씨는 “결혼생활이 너무 괴로워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는 “미국 유학 준비가 힘들어 두 번 자살기도 했는데 이부진 사장이 나를 위로하며 같이 울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들은 ‘결혼생활 중 자살 시도’를 확대재생산했다. <한겨레>는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임씨한테 기사를 쓰겠다고 제안했고, 임씨의 승낙을 받아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부분만 바로잡아 16일 기사화했다.
임씨는 이부진 사장 쪽으로부터 가사 소송 내용 보도를 금지한 가사소송법(10조)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임씨가 민감한 가정사를 폭로했다는 비난도 잇따랐다. 하지만 ‘삼성가의 민감한 가정사’를 폭로한 것은 임씨가 아니다. 비보도 약속을 깨뜨린 족벌언론이었다.
이강혁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위원장)는 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선일보>는 사생활 침해 보도를 금지한 신문윤리강령 5조를 위반했고, 공익과 상관없는 기사를 당사자 동의 없이 내보냈다. 임우재씨는 공개되길 원하지 않은 가정사를 폭로당한 피해자다”라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