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35분 해경 123정이 찍은 세월호의 모습. 선수 갑판에 쌓아놓은 컨테이너가 무너져 한쪽으로 쏠려 있다. | |
ⓒ 해경 |
지난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승객을 태운 채 침몰한 세월호에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자재인 철근 400톤이 실려 있었고, 무리한 출항의 원인이 공사 자재수급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세월호 선원들은 철근 적재로 인한 위험을 반복해서 경고했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선사 측이 철근 적재를 강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직후 해양경찰과 검찰의 사고 조사의 초점은 과적 여부였다. 조사에 임한 세월호 선원과 청해진해운 관계자는 과적 이야기가 나오자 우선 철근 적재 문제를 지적했다.
[ 2014년 5월 3일 검찰 조사에서 세월호 조타수 오○○ 진술]
문 : 화물을 기준치 이상으로 실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사실은 없는가요.
답 : 전날 말했듯이 선장이 '선수에 빔이나 철근을 안 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사 이전 상당 기간 동안 철근은 거의 매 출항 시마다 세월호에 적재되었던 걸로 파악된다. 참사 당시 철근은 D데크(1층)과 C데크(2층)에 적재됐다. D데크 중앙부에 트레일러 차량을 적재한 뒤 양 옆으로 철근을 쌓았고, 바깥으로 노출된 C데크 선수부에는 양쪽으로 콘테이너를 2층으로 쌓은 뒤 그 사이에 철근과 H빔을 쌓아놓았다. 부피에 비해 무게가 무거운 철근과 H빔을 높이가 높은 C데크에 쌓은 것은 세월호의 무게중심을 높여 선박의 복원력을 악화시켰다.
[ 2014년 4월 16일 해양경찰 조사에서 청해진해운 물류팀 차장 김○○ 진술 ]
문 : 1등항해사 강○○과 화물선적시 화물 계획이나 선박의 복원력에 관하여 이야기하는가요
답 : 중량물을 선적할 경우에는 항상 의논을 하고 선적하게 됩니다.
문 : 이번에 선적한 철근에 관하여 1등 항해사와 상의하였나요.
답 : 서로 대화가 없어도 항상 선적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별다른 대화는 하지 않았습니다.
부피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중량화물을 선적할 경우 선박의 복원력 문제와 관련 항해사와 의논을 거치게 돼 있는데 철근의 경우 언제나 싣는 자리였기 때문에 별다른 의논을 하지 않고 평상시대로 실었다는 것이다.
▲ 2014년 5월 2일 검찰 조사에서 세월호 1등 항해사 강○○ 진술 |
"'배 넘어 간다, 철근 조금만 실어라' 했지만 들어주지 않아"
하지만 이 같이 철근을 적재하는 것에 대해 세월호 관계자들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나타난다.
[ 2014년 4월 23일 해양경찰 조사에서 세월호 1등 항해사 강○○ 진술]
문 : 세월호의 선장 또는 피의자가 회사에 화물 적재량을 줄여달라고 건의해본 적이 있는가요.
답 : 신○○ 선장님이 회사 물류팀에게 '화물량이 너무 많아서 배가 위험하다, 배가 해딱 해딱 넘어간다, 선수 쪽에는 철근을 조금만 적재해 달라'고 수차례 이야기하였는데 들어주지 않는다고 저에게 하소연을 많이 하였고, 최근에 물류팀과 우련통운 하역사에게 철근 6대 분량 이상을 선적하지 않기로 약속을 받았다면서 그렇게 알고 작업을 하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 2014년 5월 2일 검찰 조사에서 세월호 조타수 오○○ 진술 ]
문 : 선장 신○○ 은 힐링(선박 평형수 조절) 문제가 아닌 선박의 복원성이 약하기 때문에 이를 선원들이 알게 되면 동요하게 될까봐 그러한 얘기를 한 것은 아닌가요
답 :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다면 선원들에게 알려줘야 했겠죠. 선장 신○○도 선사 측에 '철근 같은 것을 선수에 적재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선사 측에서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선사에서 거절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참사로 이어진 4월 15일 화물 적재 상황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는 진술도 있었다. 세월호는 입항 시 선장, 1등 항해사 등 선원과 이사, 해무팀 등 사측 인원이 선상회의를 여는데 이 자리에서도 철근 과적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 2014년 5월 8일 검찰 조사에서 청해진해운 해무팀 대리 홍○○ 진술 ]
문 : (4월 15일 출항 전 오전 선상)회의 시, 화물적재, 복원력 등에 관한 내용은 없었나요.
답 : 세월호 선수에 화물을 싣는 문제로 무거운 철근 같은 자재를 싣고 너무 많이 실어 발란스(선체 균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박○○ 차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 회사 팀장급 이상 회의에서 몇 번 공론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나가는 말로 들었는데 회사의 수입 70~80% 정도를 담당하는 물류팀이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데'라며 무시했다고 합니다.
[ 2014년 5월 2일 검찰 조사에서 세월호 1등 항해사 강○○ 진술]
답 : 일단 그날은 철근과 H빔을 너무 많이 실었습니다. 보통은 철근과 H빔을 트럭으로 8차 분량을 싣고, 2014년 4월 15일 이외에 가장 많이 철근과 H빔을 적재한 것은 트럭으로 12대 분량이었는데, 그날은 트럭으로 13대 분량을 실었습니다.
문 피의자가 위와 같이 트레일러와 철근을 적재할 때, 청해진해운의 누가 이를 지켜보았는가요.
답 : 물류팀 김○○ 차장입니다. 예전에도 김○○ 차장에게 과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지만 고쳐지지 않아 그날도 그에 대하여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 2014년 5월 8일 검찰 조사에서 청해진해운 해무팀 대리 홍○○ 진술 |
사고 나자 철근 등 중량물 과적 확인부터
베가 기울어진 뒤 약 50분이 지난 오전 9시 38분 경 청해진해운 제주지역본부의 박○○ 과장은 본사 물류팀 김○○ 차장에게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가니 화물에 대해서 마감상태를 점검해봐야 될 것 같다"는 내용의 전화통화를 했다.
박 과장은 4월 29일 해양경찰 조사에서 그같은 전화통화를 한 이유를 "제가 그때 전산으로 화물적재량을 봐보니 철근 같은 무거운 중량물이 많은 것으로 판단돼서 화물을 지나치게 오버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물어본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세월호 참사 이전 상당기간 동안 제주도로 향하는 철근이 항상 적재됐고, 선원 등은 중량물인 철근의 과적 여부, 특히 C데크 선수갑판에 실려 선박의 복원성을 악화시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지적에도 선사 측은 철근 과적이나 부적절한 적재 상황을 해소하지 않고 무리한 운항을 계속해 왔다.
합동수사본부의 세월호 참사 원인분석에서도 이 같은 무리한 철근 적재가 전복 원인으로 지목됐다.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이 작성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원인분석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선박의 경사에 의하여 무거운 철근이 옆의 컨테이너에 하중을 가하게 되어 C데크의 컨테이너를 보다 낮은 각도에서 미끄러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세월호의 기울어짐을 심화시킨 원인에 대한 검토 결과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철근, 목재 등의 산적(Bulk) 화물은 고박설비 없이 갑판 위에 무방비로 적재되었고, 갑판에 적재된 컨테이너는 단순 묶음 형식으로 결박하였으며, 차량도 규정을 만족시키는 충분한 고박작업을 하지 않은 관계로 선체가 횡경사하자(옆으로 기울어지자) 화물쏠림으로 인해 횡경사를 가중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경 수사결과에서 빠진 철근 과적 이유
세월호 복원성 약화의 원인은 과적이고, 이 중에서 중량물인 철근이 과적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검·경의 수사결과에서도 청해진해운 측이 선원들의 문제제기에도 무리하게 철근 적재를 계속해 온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6일 '세월호에 제주해군기지 가는 철근 400톤 실렸다' 제목의 기사에서 이 철근은 400톤이었으며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가 수요처라고 보도했다. 동시에 "(기상 악화에도) 무리한 출항의 원인이 제주해군기지 공사의 자재 수급과 연관된 것은 아닌지도 의심되는 부분"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의혹제기에도 정부 관련 부처에선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6월까지를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활동기간으로 간주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특조위에 종합보고서 및 백서 발간을 위한 정원 산정안과 예산안을 제출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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