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가 반나절만에 취소했다. 최고위원과의 상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방계획이 8일 공개되자 당 최고위원들이 거센 반대를 한 것이다. 예방 계획이 알려지면서 “의외다”라는 평가가 나왔는데 곧바로 당내 비판을 받았다.
송영길 의원은 SNS를 통해 "대한민국 대법원이 판결한 헌정찬탈·내란목적 살인범을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박홍근 의원 역시 "국민화합 차원이라면 하필 전 국민의 지탄을 받는 그 분이 왜 먼저일까요"라고 지적했다. 또 양향자 최고위원은 "추 대표는 개인이기 전에 당의 대표다. 대표에게는 개인일정이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최고위원들이 말을 했다"고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철회로 추 대표는 모앙새를 구겼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따져볼 문제가 있다. 당대표의 결정과 이를 비판하는 다른 지도부 간의 대립은 야당에겐 낯선 게 아니기 때문이다.
◆ 박영선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과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여권의 입장을 일부 수용하는 듯한 뜻을 내비치자 "독단적"이라는 당내 반발에 부딪힌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경우다. 박 전 원내대표는 2014년 당시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사퇴 요구에 시달렸다. 결국 그해 9월 비대위원장직을 사퇴한데 이어 10월에는 원내대표직에서도 사퇴했다.
새누리당과의 세월호 협상이 박 전 원내대표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그해 8월 세월호 협상안을 두고 당내 반대에 부딪혀 두차례 협상안 처리가 무산됐다. 당시 세월호 특검 추천권과 관련해 여당의 주장을 수용했다는 점이 당내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당시 추미애 대표는 "(협상을) 왜 서둘렀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는 대부분 의원들이 느끼는 점"이라며 "심지어 박 위원장과 가까운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간사인 김현미 의원도 몰랐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협상안이 두차례나 무산되자 당내 입지와 대여 입지가 좁아진 박 전 원내대표는 결국 사퇴를 선택했다.
박 전 원내대표가 추진한 이상돈 의원의 비대위원장 영입에 대한 당내 반발도 사퇴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과중한 업무를 이유로 박 전 원내대표는 함께 맡고 있었던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박 전 원내대표가 당시 여권인사였던 이상돈 중앙대 교수(현 국민의당 의원)을 후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하자 당내에서 반발이 인 것이다. 이 교수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캠프의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맡았다.
설훈 의원은 당시 "(이 교수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셨던 분"이라며 "그런 분이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다시 우리 당과 같이 하시겠다, 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건 제가 생각할 때 정말 생각 밖"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 전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사퇴의사를 밝히는 글에서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라는 씨름을 벌인 시간"이라며 당내 반발에 대한 서운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 문재인, 당 비주류의 공격 대상
최고위원들로부터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건 문재인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해 2.8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당선된 뒤 끊임없이 "독단적"이라는 평가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다. 그해 4.30 재보선 패배를 기점으로 '책임론'을 들며 사퇴론이 지속되자 문 전 대표가 각종 대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당 비주류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지난해 9월 자신이 주도한 혁신안 통과를 비주류 측에서 반대하자 문 전 대표는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묻는 재신임 투표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최고위원측에서 "재신임은 당을 둘로 쪼개는 일"이라며 문 전 대표의 일방적인 결정을 비판했다.
당시 당 최고위원이었던 주승용 의원은 "당대표가 최고위원과 협의 없이 재신임을 결정했기 때문에 대표 스스로가 방법을 정해서하면 그 결과에 대해 당원이이나 국민이 승복할지 의문"이라며 "재신임 방법에 대해 최고위에서 논의하던지, 당원의 의견을 물어 결정해야 하는데 본인이 채점하고 본인이 발표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문 전 대표가 독단적이라는 평가가 최고조에 다다른 때는 지난 11월이다. 비주류의 '패권주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문 전 대표가 대표권한을 분점하는 문-안-박 공동지도체제를 제안하면서다. 당시 주승용 의원은 "지도부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영식 당시 최고위원 역시 "이러한 제안이 또 다시 최고위원들과 어떠한 협의도 없이 이루어지고, 국민과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최고위원들의 권한과 진퇴가 당사자들의 의사나 협의 없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 또한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 우상호 원내대표와 불화설 대두
추미애 대표에 대한 당내 반발은 표면적으로는 전 전 대통령 예방 계획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우상호 원내대표와의 불화도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 대표가 취임 이후 주요 당직 인선 과정에서 우 원내대표와의 논의가 없었던 데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이라는 휘발성 강한 사안마저도 전혀 조율을 거치지 않으면서 우 원내대표 측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인사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추 대표는 전 전 대통령 예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최측근 인사 한 명하고만 논의해 이를 전격 발표했다는 게 중론이다. 우 원내대표를 포함해 최고위원들과도 전혀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전날 긴급최고위원회에서도 김영주 최고위원이 "최고위원들과 논의가 없었다"며 절차상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더민주 수도권 재선의원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선봉에 섰던 우상호 원내대표로선 당 대표의 전두환 예방 결정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불만을 드러내는 성격도 아니라 속앓이만 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삶의 궤적에서 비롯된 추 대표와 우 원내대표의 태생적 차이는 추 대표의 취임 후 첫 공식행사인 현충원 참배 때부터 드러났었다. 추 대표가 국민통합의 일환으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는 물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까지 참배하기로 결정하자, 우 원내대표는 전직 대통령 참배 순서 때 조용히 일행에서 빠져나와 국회로 먼저 복귀했다.
이어 추 대표가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 인선 과정에서 우 원내대표와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서 당 운영에서 우 원내대표가 점점 소외돼 가는 모습이 뚜렷했다. 우 원내대표 측 인사는 "당직 인선에서 추 대표가 원내대표와 상의했는지는 둘만이 알겠지만, 적극적으로 의견을 구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더민주 당헌·당규에 따르면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은 당 대표가 최고위와 협의를 거쳐 임명한다'고 돼 있는데 최고위 멤버 중 한명인 우 원내대표의 의견조율이 없다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편 추 대표는 이날 원외정당인 민주당의 김민석 대표를 만나며 통합행보를 이어갔다. 양당이 합당할 경우 더민주는 야당의 전통적 당명인 '민주당'으로 향후 당명을 개명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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