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직권남용, 상대의사 완전제압 아니면 법원에서 잘 인정 안돼”
법조계 “3자뇌물죄” 견해 많은데 검찰 “앞으로도 뇌물로 안본다”
직권남용 나온 이상 대통령 관여조사 불가피 관측도
법조계 “3자뇌물죄” 견해 많은데 검찰 “앞으로도 뇌물로 안본다”
직권남용 나온 이상 대통령 관여조사 불가피 관측도
검찰이 최순실씨에 대해 2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뇌물 혐의가 아닌 직권남용(공범)을 적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직권남용죄의 형량이 뇌물죄에 비해 현저하게 낮을뿐만 아니라, 미르재단 등의 설립 자체는 대가성이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 여지를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해 제3자뇌물공여죄와 직권남용죄 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직권남용(형법 123조)은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때’ 적용되고, 제3자뇌물죄(형법 130조)는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건넸을 때’ 적용된다. 기업들이 돈을 내도록 한 행위는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그 돈은 성격상 뇌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뇌물죄는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일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형이 적용되는 반면, 직권남용은 최고 형량이 5년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검찰은 최씨가 안 전 수석과 공모해 돈을 낼 의무가 없는 기업에 돈을 내도록 강요한 것으로 봤지만, 그 돈의 성격을 뇌물로 보지는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넘어간 돈은 뇌물죄 구성요건에 맞지가 않는다. 앞으로도 그 부분은 뇌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은 최씨와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안 전 수석은 국가 경제 정책은 물론 개별 기업들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돈을 낸 기업들도 모종의 이익을 바라고 돈을 건넸을 가능성이 크다. 이광철 변호사는 “뇌물죄는 대가성, 직무관련성, 부정한 이익 등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한데, 이번 경우에는 모두 충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이 “앞으로도 뇌물로 보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르재단(486억원)과 케이스포츠재단(288억원)에 돈을 낸 기업은 53곳에 달하지만, 현재까지 검찰 조사를 받은 곳은 롯데그룹과 에스케이그룹 등 두 곳 뿐이다. 기업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 현직 판사는 “대통령을 포함해 큰 그림으로 보면 뇌물수수가 더 적절해 보인다. 검찰은 작은 그림으로 봐서, 뇌물에 대한 대가성 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은데,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의 직권남용 적용에는 미르재단 등의 설립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현직 검찰 간부는 “(직권남용은) 미르재단의 모금 과정에 강제성 등의 문제가 있을 뿐 설립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르재단이 대통령의 퇴임 후를 겨냥한 것이라는 의혹은 앞으로 수사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전 수석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모금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어, 박 대통령의 관여 여부를 밝히기 위한 검찰 조사의 필요성은 커졌다. 애초 박 대통령 수사에 대해 헌법상 형사불소추 특권을 들며 ’불가’ 방침을 밝혔던 김현웅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진상규명에 따라 (대통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검찰의 바뀐 기류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검찰의 직권남용 혐의 적용은 최씨와 안 전 수석,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이 모두 빠져나갈 수 있는 ‘묘수’를 내놓은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은 상대방의 의사를 완전히 제압하는 수준이 아니면 법원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다. 최씨는 물론 안 전 수석의 혐의가 재판에서 인정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최씨의 주요 범죄 의혹 중 하나인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같은 경우 “현재 수사중”이라며, 앞으로 추가 수사를 통해 범죄사실을 추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씨를 기소할 때는 이날 적용한 직권남용과 사기 미수 외에 횡령과 배임 등 다른 혐의를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현준 서영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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