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성공회 주관 반려동물 축복식, "하나님, 이들이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10월 9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사제당 뒤뜰. 평소에는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 의자 십여 개가 놓인 가운데, 축복식을 맡은 민숙희 사제는 정성스레 예식을 준비했다.
약속한 시간 오후 4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자기가 기르는 반려견, 반려묘를 데리고 참석했다. 사전에 공지된 유의 사항에 맞춰 사람들은 동물용 캐리어를 가지고 왔다.
이번 행사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청년회 '평화의형제들'이 주최한 반려동물을 위한 축복식이었다. 생전에 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과 교감했다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축일을 맞아 이뤄졌다.
풀이 무성한 뒤뜰은 금세 동물로 가득 찼다. 덩치 큰 개부터 작은 애완견, 주인 품에 안긴 고양이 등이 눈에 띄었다. 처음 만난 반려동물들은 킁킁거리며 서로를 살피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기도 했다. 덩치 큰 개는 신이 났는지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돌아다녔다.
▲ 10월 9일 주일, 색다른 축복식이 열렸다. 성공회 민숙희 사제의 인도에 따라 반려동물 축복식이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반려동물에게 건강의 축복을!
축복식은 평소 예배와 비슷하게 입당 성가, 기도, 성서 낭독, 말씀 나눔으로 진행됐다. 예식은 30분가량 이어졌다. 각 순서마다 피조 세계의 회복을 위한 마음이 담겼다. 동물들은 주인 품에 안겨 있거나 목줄에 묶여 있는 상태로 예식에 참여했다. 예상과는 달리 비교적 조용했다. 축복식은 기도로 시작됐다.
"창조주 하느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이를 돌보라 명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어 어리석은 욕심으로 환경을 파괴하지 않게 하시고, 맡겨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겨 주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축복식을 집전한 민숙희 사제는 창세기 6장 13-22절에 나오는 노아 방주 사건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시면서, 새로운 하나님나라를 약속하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아내, 아들, 며느리와 함께 배에 들어가라고 이야기하신다. 민 사제는 하나님이 동물 이야기도 꺼내신 점을 강조했다.
민 사제는, '온갖 새, 집짐승, 길짐승을 살려 주고 온갖 양식을 가져다가 함께 있는 사람과 동물들이 먹도록 저장해 두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동물을 사람과 똑같은 존재로 평등하게 대하셨고, 동물 역시 하나님나라를 새롭게 맞이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교했다.
이후 현장에 온 사람들과 반려동물들에게 축복을 나눴다. 머리나 몸에 손을 대고 건강을 기원했다. 여러 사정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오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키우는 동물 사진을 보여 주며 축복을 받았다. 사람들 표정에 즐거움과 안도감이 묻어 있었다.
▲ 반려동물을 데려오지 못한 사람들은 사진을 보여 주며 축복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축복식이 끝나고 한곳에 모여 다과를 나눴다. 서로 데려온 반려동물을 안아 주고 사진을 찍었다.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 사진을 보여 줬다. 건강 상태는 어떤지, 이름은 무엇인지 등을 서로 물었다. 민숙희 사제도 강아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주인들이 다과를 나눌 때, 반려동물들도 함께 간식을 먹었다. 각각 주인이 가지고 온 간식을 너나 할 것 없이 나눴다. 간식을 맛있게 먹던 강아지 '미미'가 도중 변을 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강아지와 함께 해 온 주인은 당황하지 않고 뒤처리했다.
축복식에 참여한 30여 명 중에는 성공회 신자가 아닌 사람도 있었다. 한때 유기묘였고, 지금은 '옹이'로 불리는 고양이를 키우는 한 여성은 축복을 받고 싶어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동물한테 저렇게 까지 하냐'는 시선을 종종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 시선과 달리, 자신이 '옹이'에게 위로받을 때가 더 많아 '옹이'를 축복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자리가 꾸준히 있기를 바랐다.
▲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데려왔다. 다과 시간에 반려동물은 서로 탐색을 하기도 하고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민숙희 사제가 이날 예배에서 반려동물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기억에 남았다.
"특별하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사랑스런 가족을 보내 주셨나이다. 이 동물들이 반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건강하게 자라나게 하시고, 병중에 들게 되더라도 하느님의 보호하심으로 병을 이겨 내고 회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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