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드와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금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고 말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안보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덧붙여 박 대통령은 "이해당사자 간에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政爭)이 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상보다 세게 나갔다. 초반에 사드 민심을 잡지 못하면 자칫 20개월도 채 남지 않은 정권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동시에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번째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조치이기도 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에 기반하여 추진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외에, 강력한 억지력을 토대로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게 하고, 만약 도발을 감행할 경우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통일은 대박이다'고 외친 박근혜 정부의 남은 기간 동안 통일 담론은 사실상 죽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자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됐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규범과 의무를 준수할 리가 더욱 멀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 간 신뢰에 기반한 대화와 협력의 문은 더욱 굳게 닫혔다. 이로 말미암아 박근혜 정부의 외교 구상인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정치·군사·외교적으로 인화성이 매우 높은 사드 배치를 정답이라고 적어냈다. 중국을 멀리하고 한미 동맹 강화로 급선회했다. 그 결과 미국과 중국 어디에도 달라 붙지 않는 이른바 '테플론 외교(Teflon diplomacy)'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는 틀린 답이다. 지붕에 구멍이 났으면 구멍을 수선해야지 물동이만 받쳐놓는다고 빗물이 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릇된 근거로 그릇된 시점에 그릇된 결정을 내린 셈이다. 범국가적인 통일 준비를 위해 2년 전인 2014년 7월에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까지 출범시킨 정권이 과연 맞나 싶을 정도로 의심이 되는 D학점 수준의 답안지다. 사실 지난 2월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할 때 진작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꽃게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가르칠 수 있나. 안 되는 것은 어떻게든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리얼미터' 최근 여론 조사 결과는 사드 배치 찬성 여론(44.2%)이 반대 의견(38.6%)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 억제력 제고와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찬성한다'가 '낮은 군사적 효용성과 동북아 긴장 고조로 반대한다'를 누른 것이다. 지난 2월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도 사드 배치 찬성 의견이 49.4%, 반대 의견이 42.3%로 근소한 차이를 보인 것과 궤를 같이했다. 게다가 한국 정책 엘리트들의 대미 의존 경향은 일반 국민들보다 높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주요 현안마다 여론의 추이를 조사·분석하는 청와대가 이런 여론의 흐름을 놓쳤을 리가 없다. 대통령의 사드 배치 강공 배경에는 이런 여론의 흐름이 반영되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어찌 됐든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드 배치 논쟁이 이념적 프레임 논쟁으로 옮겨가는 형국이다. 말하자면, 찬성이면 보수, 반대면 진보로 분류되는 것이다. 정치 공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실제 사드가 배치될 시점인 내년 하반기 대선 즈음까지 감안할 경우, 청와대로서는 좌·우 대결적 이념 구도가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데 매력적일 수 있다.
그 사이 통일 담론들은 서서히 형해화(形骸化)되어갈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전광석화 같은 사드 배치 결정이 통일 담론의 관(棺)에 마지막 못을 박은 셈이 됐다. '통일 담론의 종언(終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도 없던 일이었다.
반공(反共)처럼 통일이 '종교'였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념적으로 통일에 낚였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으로 통일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던 때가 그랬다. 그 중에서도 1989년은 방북사(史)의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황석영 소설가, 문익환 목사 그리고 대학생 임수경의 '북한 잠입'이 모두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같은 해에 일어났다. 격동의 시기에 통일 운동을 향한 신앙적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時代(시대)와의 不和(불화)'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널리 퍼진 것도 이맘때였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이나 변할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물어본다. 우리의 소원은 여전히 통일인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우리'는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대명사인가. 핵을 가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과연 '질서 있는 통일'이 가능할까. 게다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신(新)냉전망(a new Cold War web)에 한국이 사드 배치 결정으로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곤충 신세에서 언제쯤 안전하게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까. 이런 도발적이고도 불편한 질문들에 답해야 할 때가 됐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통일 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50대 이상 한국인 중 63.8%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반면 20대는 30.7%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통일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높게 나타나고 '통일 불가론'이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응답도 늘어나고 있다.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 특유의 민주적 감성과 다문화적 개방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는 북한이 일찌감치 핵무기를 보유한 마당에 여전히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가에 대해 숙의(熟議)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오랜 금기사항을 깨는 대담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묻지마 통일'이 적어도 소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다분히 감상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수사(修辭)였다면, 북한 핵무기는 실재하는 최대 위협이다. 휴전선 너머에 핵무기가 엄연히 존재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가까운 시일 내 평화적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핵무기 제거는 통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럼에도 북핵을 훌쩍 건너뛰고 단숨에 통일을 노래하는 것은 일의 순서가 완전히 뒤바뀐 격이다. 핵을 가지고선 통일은 불가능하다.
둘째, 한국은 더 이상 '단군의 자손'들로만 이루어진 순혈 공동체가 아니다. 우리는 벌써 그 시절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작년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월 1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수가 174만 명을 넘어섰다. 충북(158만 명)·대전(153만 명)·광주(148만 명)보다 많은 수치다. 탈북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우리의 민낯을 드러냈다.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주민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기가 어렵게 됐다.
셋째, 지금까지 외교 정책에서 북한 문제가 지나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국력에 맞게 펼쳐야 할 총합외교(總合外交)가 핵무기, 인권, 탈북자 등 '북한 외교'로 확 쪼그라든 느낌이다. 대외 정책에서 북한 비중을 전략적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 그래야 북한 외교로 경사된 외교 정책의 추를 바로잡을 수가 있다. 이는 한국의 외교 다변화가 독자적 '호흡의 공간'으로 이어져 결국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역설적 가정(假定)과 무관하지 않다.
한미의 위계적 동맹(또는 정책 엘리트들의 대미 심리적 의존성)이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확인된 이상 중국과의 거리는 채 가까워지기도 전에 멀어지게 됐다. 통일 담론도 함께 수장(水葬)됐다. 박근혜 정권이 사드의 판을 스스로 키운 자기 모순적 결과이기도 하지만, 통일이 소원인 시대는 퇴행적이다. 이제 통일을 놓아두자. 대신 평화를 이야기하게 하고 그것이 곧 통일임을 알게 하자. 동시에, 사드가 적어도 평화의 동의어가 아님을 이야기하자.
예상보다 세게 나갔다. 초반에 사드 민심을 잡지 못하면 자칫 20개월도 채 남지 않은 정권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동시에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번째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조치이기도 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에 기반하여 추진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외에, 강력한 억지력을 토대로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게 하고, 만약 도발을 감행할 경우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통일은 대박이다'고 외친 박근혜 정부의 남은 기간 동안 통일 담론은 사실상 죽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자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됐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규범과 의무를 준수할 리가 더욱 멀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 간 신뢰에 기반한 대화와 협력의 문은 더욱 굳게 닫혔다. 이로 말미암아 박근혜 정부의 외교 구상인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정치·군사·외교적으로 인화성이 매우 높은 사드 배치를 정답이라고 적어냈다. 중국을 멀리하고 한미 동맹 강화로 급선회했다. 그 결과 미국과 중국 어디에도 달라 붙지 않는 이른바 '테플론 외교(Teflon diplomacy)'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는 틀린 답이다. 지붕에 구멍이 났으면 구멍을 수선해야지 물동이만 받쳐놓는다고 빗물이 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릇된 근거로 그릇된 시점에 그릇된 결정을 내린 셈이다. 범국가적인 통일 준비를 위해 2년 전인 2014년 7월에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까지 출범시킨 정권이 과연 맞나 싶을 정도로 의심이 되는 D학점 수준의 답안지다. 사실 지난 2월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할 때 진작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꽃게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가르칠 수 있나. 안 되는 것은 어떻게든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리얼미터' 최근 여론 조사 결과는 사드 배치 찬성 여론(44.2%)이 반대 의견(38.6%)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 억제력 제고와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찬성한다'가 '낮은 군사적 효용성과 동북아 긴장 고조로 반대한다'를 누른 것이다. 지난 2월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도 사드 배치 찬성 의견이 49.4%, 반대 의견이 42.3%로 근소한 차이를 보인 것과 궤를 같이했다. 게다가 한국 정책 엘리트들의 대미 의존 경향은 일반 국민들보다 높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주요 현안마다 여론의 추이를 조사·분석하는 청와대가 이런 여론의 흐름을 놓쳤을 리가 없다. 대통령의 사드 배치 강공 배경에는 이런 여론의 흐름이 반영되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어찌 됐든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드 배치 논쟁이 이념적 프레임 논쟁으로 옮겨가는 형국이다. 말하자면, 찬성이면 보수, 반대면 진보로 분류되는 것이다. 정치 공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실제 사드가 배치될 시점인 내년 하반기 대선 즈음까지 감안할 경우, 청와대로서는 좌·우 대결적 이념 구도가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데 매력적일 수 있다.
그 사이 통일 담론들은 서서히 형해화(形骸化)되어갈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전광석화 같은 사드 배치 결정이 통일 담론의 관(棺)에 마지막 못을 박은 셈이 됐다. '통일 담론의 종언(終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도 없던 일이었다.
반공(反共)처럼 통일이 '종교'였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념적으로 통일에 낚였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으로 통일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던 때가 그랬다. 그 중에서도 1989년은 방북사(史)의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황석영 소설가, 문익환 목사 그리고 대학생 임수경의 '북한 잠입'이 모두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같은 해에 일어났다. 격동의 시기에 통일 운동을 향한 신앙적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時代(시대)와의 不和(불화)'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널리 퍼진 것도 이맘때였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이나 변할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물어본다. 우리의 소원은 여전히 통일인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우리'는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대명사인가. 핵을 가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과연 '질서 있는 통일'이 가능할까. 게다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신(新)냉전망(a new Cold War web)에 한국이 사드 배치 결정으로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곤충 신세에서 언제쯤 안전하게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까. 이런 도발적이고도 불편한 질문들에 답해야 할 때가 됐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통일 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50대 이상 한국인 중 63.8%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반면 20대는 30.7%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통일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높게 나타나고 '통일 불가론'이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응답도 늘어나고 있다.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 특유의 민주적 감성과 다문화적 개방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는 북한이 일찌감치 핵무기를 보유한 마당에 여전히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가에 대해 숙의(熟議)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오랜 금기사항을 깨는 대담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묻지마 통일'이 적어도 소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다분히 감상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수사(修辭)였다면, 북한 핵무기는 실재하는 최대 위협이다. 휴전선 너머에 핵무기가 엄연히 존재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가까운 시일 내 평화적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핵무기 제거는 통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럼에도 북핵을 훌쩍 건너뛰고 단숨에 통일을 노래하는 것은 일의 순서가 완전히 뒤바뀐 격이다. 핵을 가지고선 통일은 불가능하다.
둘째, 한국은 더 이상 '단군의 자손'들로만 이루어진 순혈 공동체가 아니다. 우리는 벌써 그 시절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작년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월 1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수가 174만 명을 넘어섰다. 충북(158만 명)·대전(153만 명)·광주(148만 명)보다 많은 수치다. 탈북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우리의 민낯을 드러냈다.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주민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기가 어렵게 됐다.
셋째, 지금까지 외교 정책에서 북한 문제가 지나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국력에 맞게 펼쳐야 할 총합외교(總合外交)가 핵무기, 인권, 탈북자 등 '북한 외교'로 확 쪼그라든 느낌이다. 대외 정책에서 북한 비중을 전략적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 그래야 북한 외교로 경사된 외교 정책의 추를 바로잡을 수가 있다. 이는 한국의 외교 다변화가 독자적 '호흡의 공간'으로 이어져 결국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역설적 가정(假定)과 무관하지 않다.
한미의 위계적 동맹(또는 정책 엘리트들의 대미 심리적 의존성)이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확인된 이상 중국과의 거리는 채 가까워지기도 전에 멀어지게 됐다. 통일 담론도 함께 수장(水葬)됐다. 박근혜 정권이 사드의 판을 스스로 키운 자기 모순적 결과이기도 하지만, 통일이 소원인 시대는 퇴행적이다. 이제 통일을 놓아두자. 대신 평화를 이야기하게 하고 그것이 곧 통일임을 알게 하자. 동시에, 사드가 적어도 평화의 동의어가 아님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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