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검찰과의 악연이 질긴 전직 대통령도 드물 것이다.
1987년 2월 박종철군 추모시위를 주도한 부산의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구속하라는 정권의 지침을 받들어, 부산지검 검사들은 영장을 들고 판사들의 집을 하룻밤 새 세 차례나 찾아다녔다. 당시의 부산지검장이 바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세 차례 모두 영장이 기각됐으나 검찰은 결국 7개월 뒤 대우조선 노조파업 개입 혐의를 걸어 구속에 성공했다.
2003년 대통령 취임 직후 열린 ‘검사와의 대화’는 하극상 논란 속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 ‘검새’라는 씁쓸한 유행어를 남겼다. 훗날 검찰과의 격렬한 갈등을 시사하는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이듬해 탄핵에 앞장선 것도 김기춘·김용균 등 당시 야당 내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었으니 우연치고는 묘하다.
퇴임 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며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줘도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고 실패한 검찰개혁을 아쉬워했다. 공직자비리수사처 등 제도적 개혁을 해놓지 못한 상태에서 검찰의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고 후회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캐디 성추행 사건으로 기소돼 망신을 당하더니 잘나가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윤회 게이트 뒤끝에 낙마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홍만표 전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이 하필 서거 7주기에 정운호 게이트로 벼랑 끝에 몰렸다. 악연은 사후에까지 이어지는 것인가. 당시 주임검사이자 중수1과장이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향후 운명을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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