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 방문에서 정치적·역사적 의미를 배제하려 한다.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도 아니고 역사 청산도 아니라고 한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순수한 동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정치적·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미국이 사과 의미를 배제한 것은 옳지 않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민간인이 대부분인 수십만의 생명을 핵으로 절멸시킨 행위는 일본의 전쟁책임 여부와 별개로 사과해야 할 일인 것이 맞다.
현재 동북아시아에는 핵위협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이벤트라는 주장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오바마가 일본에서 핵 없는 세상을 말하려면, 먼저 주변국을 불안케 하는 막대한 양의 농축우라늄, 무기급 플루토늄을 일본이 보유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결국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큰 의미가 있는 행사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해온 오바마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다. 최소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아베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미국 판단이 작용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향후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공세적 아시아 전략으로 한국이 더욱 어려운 처지에 몰릴 것임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한국인 희생자가 동등하게 언급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한국 정부 입장이 딱하다.
주변 정세가 이 지경인데 한·일 위안부 합의로 오바마의 히로시마행에 빗장을 풀어준 박근혜 대통령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업적을 부각시키는 데 매달리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다른건 몰라도 외교는 잘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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