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광장은 조용했다. 아무 일 없이 여느 공원이나 광장의 모습처럼 한산하고 평화로웠다.
물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날도 세월호 시위 및 진실규명을 위한 서명이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 시위를 시작한 이래, 변함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그 익숙한 광경에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시위 현장 건너편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그만 괴롭혀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던 보수단체의 이른바 ‘맞불집회’ 모습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늘 현장을 지켜온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없어요. 많이 줄었죠”, “총선 이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확실히 억압된 마음이 좀 풀어진 것 같아요”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다음은 2년째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는 자원봉사자와의 인터뷰
-본인 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저는 광화문 근처에 직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원(남성)입니다. 유민 아버님이 단식하실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돼서 2년째 계속하고 있고요. 아침 출근 때, 점심때, 퇴근할 때 들러서 서명하는 거 돕고 있습니다.
-보수집회가 많이 없어진 것 같은데요?
거의 없어요. 많이 줄었죠. JTBC하고 언론에서 어버이연합과 전경련의 커넥션을 보도한 이후로 확실히 많이 줄었고요. (광화문 광장) 건너편에서도 어버이연합 쪽은 아닌 것 같은데 ‘박근혜 대통령님 응원합니다’, ‘끝까지 지지하겠습니다’ 이런 식의 피켓 시위가 있었는데 그것도 한 일주일 전부터는 안 나오시더라고요.
-동화면세점 앞에는 항상 보수 집회·시위가 있었고, 동아일보 앞에도 항상 있었는데 지금은 안 보이네요?
예, 맞습니다. 좀 없어졌고요. 총선 이후로 새누리당이 지고 나서부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보수가 많이 약해지다 보니 선뜻 나서기가 조금 그러신가 봐요.
-전에는 지나가면서 욕하시는 분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런 분들도 많이 줄었나요?
네, 많이 적어졌어요. 전에는 돈 받았냐, 왜 있냐, 심지어는 뭐 빨갱이냐 뭐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 많이 적어졌죠.
-보수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분 중에 그냥 한마디씩 하시던 분들도 줄었나요?
그런 분들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옛날에는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인상을 찌푸리고 혀를 차시는 정도인 어르신들이 많죠.
-제가 지금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죽 돌아왔는데 보수 관련 집회는 거의 없었어요. 보수집회가 어버이연합밖에 없는 것은 아닌데 일제히 사라진 것은 좀 의아하던데요?
아마 몸을 사리는 것이겠죠. 돈이 끊기니까 선뜻 못나서는 것이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경찰의 반응은 어떤가요?
경찰도 많이 줄었죠. 보수집회가 없다 보니까 여기도 경찰 한두 분만 나와 있는 정도입니다.
-혹시 서명도 많이 늘었나요?
2주기 되면서부터 사람들이 많이 오셨고요. 선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선거 이후에 더 많은 분이 오셔서 세월호에 대해 묻기도 하시고 학생들이 또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들러서 서명하고 가기도 하고 그러죠. 작년보다는 많이 늘었어요.
다음은 자원봉사자 김영희(여, 49세)씨와의 인터뷰
-세월호 봉사활동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제 아들이 희생 학생들보다 한 살 많아요. 사건 나자마자 너무 가슴이 아파서 초기 시위하는데도 따라갔어요. 그때 유가족분들 처음 뵙고 여름 때까지는 좀 따라다니다가, 아들이 고3이라서 집에 있다가 작년 2월부터 광화문에 다시 나왔어요.
-그때부터 꾸준히 나오신 거예요?
-보수집회 참가자들에게 (해를) 당하신 적도 있다고 하던데요?
저는 무서워요. 그런 분들이 와서 이렇게 째려보고 이상한 말을 하고 가요. 욕 같은 거…. 저희는 자원봉사자인데도 자식을 팔아 어쩌구저쩌구 하는 그런 말들을 하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무서웠어요. ‘일당 몇만 원 받고 저러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조금 씁쓸하고, 나이 들수록 정말로 정신을 차려야 하고 자기 손자 같은 애들이 죽었는데 그걸 대입을 못시키고 저렇게….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국정원과 관련이 있고 그분들 중 일부가 탈북자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좀 달리했어요.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요.
한 번은 청년까지 와 있었어요. ‘서북청년단’이라고 딱 적어 놓고는 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젊은 사람들까지 저기 와 있구나’ 할 때,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은 국정원의 감시 대상이었을 거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하면서 이용하고 있구나,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내려왔을 텐데 과연 여기 와서 더 행복할까? 그것도 궁금해지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보기에는 지금 보수집회가 전부 없어진 것 같아요. 현장에 계신 분이 느끼기에는 어떠세요?
저는 물론 좋기는 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지금 법으로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책임자 찾아서 진상규명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총선 이후에 준 것은 맞나요?
줄어든 것은 맞는데요. 저는 정치하는 사람들을 100%는 못 믿어요.
-서명은 어떤가요?
사람들이 확실히 억압된 마음이 좀 풀어진 것 같아요. 선거 이후에는 새로운 많은 분이 찾아오셨어요. 오신 분들이 처음 듣는다고 설명해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어요. 확실히 분위기가 조금만 자유로워져도….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왜 위축되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해방되는 것을 많이 느꼈고. 청소년들이 제일 많이 해줘요. 아무래도 자기 또래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젊은 사람, 특히 여성들이 많이 해줘요. 엄마라는 이름을 이상하게 쓰는 분들 때문에…. 왜 그런 이름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엄마의 마음이 아니잖아요.
※ COOPORTER(쿠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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