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리(50)는 유엔 대변인 정례브리핑 때 늘 기자석의 맨 앞줄 왼쪽에 앉아 첫 질문을 하고, 가장 많은 질문을 하는 기자이다. 그는 이너시티프레스(Inner City Press)라는 유엔 전문취재 매체 소속으로 지난 10년간 유엔 취재를 해왔다. 사실상의 1인 매체여서 ‘블로거’로 불리고 유엔 밖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의 특종들은 종종 유엔 출입기자를 둔 주요 매체들이 받아쓰는 사실상의 뉴스통신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받아쓰기 대신 비판적 질문을 많이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감시견(watchdog)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유엔 상주 출입기자증을 박탈 당하고, 그의 책상에 있던 서류함들은 유엔 본부 건물 앞 1번가에 내팽개쳐졌다.
리는 26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 e메일 인터뷰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집권 기간 동안 유엔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퇴보했다고 주장했다.
■비판적 보도하다 기자증 빼앗기고 거리 내몰려
“코피 아난 총장의 임기 말에 취재할 때에도 비판적인 보도를 많이 했지만 그는 나를 만나면 격려해줬다. 하루는 아난 총장이 유엔 다르푸르 담당 특사와 함께 지나가던 중 나를 발견하고 멈췄다. 그는 ‘저 사람이 그 블로거요’라며 내게 다르푸르 특사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는 유엔이 자신의 상주 출입기자증을 박탈하고 그 자리를 “유엔에 매일 나오지도 않는” 이집트 국영매체에 준 것을 반 총장의 보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리가 집요하게 물고늘어졌던 유엔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들은 대체로 몇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의 아동 성폭행 범죄이다. 유엔 안보리는 2013년 이후 내전으로 정정이 불안한 중아공에 1만 명 규모의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했다. 이들의 역할은 시민들, 특히 여성과 아동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4년 여섯명의 소년들이 평화유지군의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온 뒤 공식적으로 42건의 피해사례가 적발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기소가 이뤄진 것은 1건 뿐이었다.
리는 “반기문은 평화유지군의 성 착취를 감독하면서 평화유지군의 수장인 에르브 라드수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라드수가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반기문이 사무총장에 선출될 수 있도록 협조해준 나라이다”라고 말했다.
두번째는 2009년 스리랑카 내전 막바지에 일어난 타밀 반군 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유엔의 대응이다. 당시 정부군과의 충돌 과정에서 약 4만 여명의 타밀 반군 관할 지역의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당시 반 총장은 자신의 비서실장인 비제이 남비아를 유엔 특사로 이 지역에 파견했다. 하지만 남비아가 인도 출신으로 타밀 반군에 반대하는 성향이라는 점에서 유엔이 이 문제를 중재할 의사가 있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엔의 대응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관련 일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민간인 대량살상이 벌어질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반 총장은 평화유지·구호를 맡을 스탭들을 들여보내는 결정을 차일피일 미뤘고 유엔 직원들은 눈 앞의 참상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 일은 유엔 직원들의 임무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전했다.
■평화유지군 아동 성폭행 감싸기 등 3가지 큰 잘못
세번째는 2010년 아이티 지진 참사 당시 유엔이 콜레라에 감염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며 지진 현장에 질병이 창궐했다는 논란이다. 당시 콜레라가 퍼지면서 3년간 약 1만이 사망하고 70만명 가까이 감염됐다. 콜레라 피해자들은 역학조사 등을 근거로 2013년과 2014년 유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유엔은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2013년 10월 아이티 피해자들이 소송을 낸 직후 아이티 안정화지원단(MINUSTAH)의 평화유지군 규모를 줄인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리는 “반기문은 관리 의무 소홀로 아이티에 콜레라를 퍼뜨려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서 유엔을 위선자로 비치게 했으면서도 소송 문서 뒤에 숨어서 피해자들에게 한푼도 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 총장의 한국 방문 일정은 “국내 정치적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의 자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엔의 각국 외교관들 사이에 이런 정서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전했다. 일부 외교관들이 이번 방문을 보면서 “애처롭다(pathetic)”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어떤 외교관들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외교관들은 대부분의 경우 백그라운드 룰로 얘기한다. 알다시피 외교관들은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린다”고 말했다.
1946년에 채택된 유엔 총회 결의가 유엔 사무총장 퇴직 직후 개별 회원국의 정부직을 맡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반 총장이 무시하는 점은 문제라고 리는 말했다. 이 규정은 should라는 강한 권고의 어조이고 유엔 총회 결의의 특성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엔 헌장의 정신을 가장 잘 지켜야 할 사람은 유엔 사무총장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코피 아난 총장이 퇴임 후 가나 대통령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과도 극명히 대비된다”고 했다.
그는 이날도 비상주 출입기자로 정례브리핑에 참석해 파르한 학 부대변인에게 ‘반 총장은 유엔 총회 결의를 무시하려는 것이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이에 학 부대변인은 “반 총장의 현재 입장은 사무총장을 마친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무총장 일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그것은 내년 초의 일이어서 그는 다른 일들을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원론적 답변을 되풀이했다.
■반 총장 ‘대권욕’ 널리 퍼져…한국행에 “애처롭다” 유엔 대변인은 반박
리는 반 총장이 김원수 유엔 군축담당 고위대표과 같은 한국 외교관 출신 측근들을 은밀한 방식으로 활용해 국내 정치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은 점도 비판했다. 특히 김 대표가 지난 19일 뉴욕의 한국특파원단을 상대로 반 총장의 방한 일정이 국내 정치 행보가 아니라고 설명한 브리핑을 문제 삼았다. 그는 “김원수는 유엔의 월급을 받는 사람인데, 한국 국내 언론만을 상대로 반 총장의 입장을 브리핑하는 것은 가욋일 아니냐”며 “만약 유엔 업무 관련 브리핑이었다면 나 같은 사람이 그 브리핑 녹취록을 요구하면 공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반 총장의 대 한국 언론 서비스를 위해 주유엔 한국대표부에 원고 작성을 위한 직원을 별도로 두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2016년 12월31일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끝내는 순간 한국 시민으로 되돌아간다는 반 총장 본인 주장과도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리는 유럽과 워싱턴에서 자랐고, 하버드대 학부를 중퇴한 뒤 포덤대 로스쿨을 졸업했다고 스스로 소개했다. 유엔 출입기자협회의 이사를 맡았으며 2012년 유엔출입기자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그는 상주출입기자증을 박탈당한 뒤 4개월 마다 갱신해야 하는 비상주출입기자 지위를 갖고 있다.
반 총장을 수행해 한국, 일본을 방문 중인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리 기자가 출입증을 박탈 당한 것은 1월 비공개 회의에 몰래 들어온 것이 발각된 탓”이라며 비판적인 보도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반 총장의 한국 방문이 국내정치 행보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며칠 전에 반 총장 본인이 말한대로 그는 사무총장 임기를 끝내고 평범한 한국 시민으로 되돌아가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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