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편의 한 장면. | |
ⓒ SBS |
[기사 수정 : 8일 오후 11시 24분]
지난 2012년 11월 6일, 인천지방검찰청에서 발표한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은 당시 인천지검 2차장이었던 진경준 검사가 맡았다. 그는 "일부 부유층의 금전 만능주의와 도덕 불감증에 대한 경종"을 운운하던 그는 "(수사 대상에) 정치인이나 법조인도 수사 대상에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거짓말을 한다.
"정치인의 경우 한 사례가 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적발된 학부모 중에는 당시 법조인의 친인척이 있었다. 브로커에게 5000여만 원을 주고 온두라스 여권을 산 이아무개씨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처제였다. 이씨는 이후 딸을 다른 외국인 학교에 다시 보냈고, 그 과정에서 '세인트키츠네비스 연방'의 국적을 사 버렸다.
'도망자'로 낙인 찍혀 현상금까지 걸렸던 남자, 약관에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승승장구했던 천재 법조인, 청와대 최연소 민정수석에 이르기까지. 지난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아래 <그알> '우병우 편')는 그렇게 우병우 전 수석의 인생 궤적을 탈탈 털어냈다.
그런데 이 엘리트의 주변에선 악취가 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권력욕과 돈 냄새가 결합된 심한 악취 말이다. 이 악취는 급기야 <그알> 팀이 입수한 청와대 비밀노트로 이어졌다. 어쩌면 우병우 전 수석은 '맥거핀'에 해당하는 '떡밥'이고, 어마어마한 인사 비리가 숨겨진 비밀노트야말로 이날 <그알>이 공개한 '특종'의 진면목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 전 수석과 그의 측근들이 뿜어내는 비리의 악취와 국정농단 사태 전후로 밀착된 죗값이 작아질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이날 <그알>을 보는 일은 확실히 한국사회의 1%들이 검은 악취를 목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우병우와 최씨 일가와의 관계, 그것이 알고 싶다
▲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편의 한 장면. | |
ⓒ SBS |
"우병우 전 수석은 청와대 재임 기간 내내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진경준 전 검사장 등 주요 공직자의 인사검증 실패 논란과 처가의 부동산 거래, 세금 탈루, 아들의 의무경찰 보직 특혜 등이 잇따라 논란이 됐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자진 사퇴를 거세게 요구했지만, 당시 청와대는 '고난을 벗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라'며 우병우 전 수석을 감쌌습니다.
그 사이 우 수석 비리 의혹 감찰에 착수한 이석수 특별 감찰관을 쫓겨나듯이 사퇴를 했고, 진경준 전 검사장은 공짜로 거액의 주식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처남에게 일감을 몰아준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4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결국 674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우 전 수석,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 중 가장 오래된 재임 기간이었습니다."
진행자 김상중이 정리한 우 전 수석 관련 논란들이다. <그알>은 우선 그가 '민정수석'이라는 역할과 책임에 부합하는 인물인지 광범위하게 따져 물었다. 국정원, 경찰, 검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 기관의 업무를 총괄하고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하는 청와대 직속 감찰조직인 민정수석실이 박근혜 정부 들어 제 기능을 해왔는지 말이다.
우선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우병우 전 수석과 최순실씨와의 관계에 대해서 추적했다. 그러면서 '기흥CC'라는 골프장을 주목하고,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씨와 장인 이상달씨의 이름이 줄줄이 불려 나왔다. <그알>의 든든한 우군인 제보자들의 입에서 나온 증언들이었다.
최태민의 아들 최재석씨를 비롯한 몇몇의 제보자들에 따르면, 과거 최순실씨의 언니인 최순득씨가 김장자씨와 함께 골프를 치는 사이였고, 김장자씨는 최순실씨가 활동했던 새마음봉사단에서 활동했다. 이상달씨 역시 최태민과 사업 관계를 통해 친분이 있던 사이란다. 그러면서 골프장 설립 과정에서 이상달씨가 일으킨 경찰 뇌물 사건까지 언급됐다. 또 이상달씨는 '검사 우병우'를 "앞으로 큰일 할 사람"이라며 그 어떤 생채기도 나서는 안 될 인물로 보호했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병우 전 수석과 최순실과의 관계였다. 제보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최순득씨는 연예인 축구단인 '회오리 축구단'의 실질적인 스폰서였고, 햇병아리 검사였던 우 전 수석이 이 최순득씨와 회오리축구단의 술자리에 자주 불려 나갔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와 이미 안면을 텄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처가와 얽혀 우 전 수석이 최씨 일가와 이미 오래전부터 관계를 맺었고, 청문회에서 "전혀 모른다"고 잡아뗀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소년등과' 우병우는 어찌하여 '출세기계'가 됐나
▲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의 한 장면. | |
ⓒ SBS |
고교 등록금을 한 번 내지 않고,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경북 영주의 '천재'. 이사장에게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를 바꿔줄 것을 요구한 '싸가지 없는' 고교생. 3년 내내 검사가 꿈이었으며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사법시험 1차 시험에 합격한 '소년등과'생. 우 전 수석의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는 그의 과거에 대해 이렇게 부연했다.
"대학교 3학년 때 (1차 사법) 시험에 합격한다는 건요, 1학년 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한 거예요.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애들이지. 그러니까 인성이 아주 정말 (좋거나) 그런 게 아니면 괴물이 탄생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구조예요."
우 전 수석은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한 지방 토호를 수사하려다 좌천을 당하기도 한다. 이후 출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는 우 전 수석은 검찰 내부에서 승승장구했다. 특히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 사건을 수사하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심문하기도 하면서 고위직 예약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검사장 발탁에서 제외되면서 2013년 검사 옷을 벗었다.
"우병우 수석이 제대로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찾아내지 못한 직무유기 아니냐. 그 얘기도 틀린 거예요. 직무유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공범이에요. 다 알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증거 인멸하는 데 도와줬고…. 특검수사에서 밝혀낼 부분이죠."
청문회에서 우 병우와 대면했던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의 주장이다. 갑작스러운 우 전 수석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발탁이 김장자씨와 최씨 일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당연히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의 정황들도 우 전 수석이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란 추측이 신빙성을 얻는 이유다. 여기까지 의혹을 제기한 <그알>은 다시 제보를 따라잡으며 우 전 수석이란 엘리트가 벌여 놓은 직무유기의 폐해를 완벽하게 까발린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작성된 비밀 노트의 존재 말이다.
충격적인 청와대 경호실의 경찰 인사 개입의 기록
▲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의 한 장면. | |
ⓒ SBS |
<그알>이 입수한 한 청와대 경호실 고위 간부가 사용했던 업무노트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경찰 조직의 인사와 관계된 이름과 단어들, 심지어 최순실씨와 주변 인물의 이름도 등장했다. 2016년 초반 촬영된 이 업무노트에 따르면,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 대부분 최순실씨를 비롯한 비선실세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 노트에 적힌 경찰의 이름들은 인사 청탁에 관련된 내용이어다.
"경찰이나 검찰 같은 소위 사정 기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생활이나 인격, 혹은 자유에 대해서 공권력에 의한 침해를 가할 수 있는 기관의 인사는 더욱이 엄정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만약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하고 그대로 인사가 이뤄졌다고 한다면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국기 문란이고 헌정 문란 범죄라고 봐야죠."
경찰대 교수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의 설명이다. 실제 이 노트의 주인은 당시 청와대 경호실 고위 경찰 간부였고, 민정수석실의 인사 검증 대상인 동시에 민정수석실의 사정과 감찰을 받는 위치였다. 심지어 일선 경찰공무원 시험과 응모자들에게 개입한 흔적까지 나왔다.
청와대 내부에서 이런 경찰 고위직부터 말단 하위직의 인사 청탁이 이뤄졌고, 실제 그 청탁대로 인사와 발탁이 행해진 이 '인사 농단'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또 고강도 사정을 벌여야 하는 민정수석실과 우병우 전 수석의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사법 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인 것이다.
제작진에게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러느냐"며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 이 노트 작성자는 박 대통령이 직무 정지 이틀 전 단행한 경찰 인사 때 승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표 의원은 "그 결과가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에는 대단히 많은 수의 최고위급 경찰을 포함한 인사 관련자들이 다 연루될 수밖에 없고, 그다음 전산시스템에 대한 조작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제 입장으로 봐서는 경호실 내 우리 경찰 조직을 공고히 하려는 그런 의도가 있어서 조금 오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트를 작성했을 당시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했던 이 고위 경찰은 지금도 제 잘못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는 우 전 수석의 아들에게 이른바 '꽃보직'을 보장했다는 서울경찰청 고위 간부의 후임으로 영전했다고 한다.
"지금 이 업무 수첩의 존재는 그동안 그렇게 말로만 떠돌던 경찰 인사가 정말 완전히 권력의 농단과 장난으로 줄서기 그리고 유력자와의 관계, 이것만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 할) 실제 존재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처음으로 나타난 겁니다. 전대미문의 조직적인 범죄 행위에 민정수석실이 어떤 형태로든 가담하고 함께 진행하고, 그런 게 아니라면 이뤄질 수 없는 사건이라고 봐야죠." (표창원 의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묵인할 수 없는 경찰 조직 내 인사 개입이 이뤄졌다. 청와대가 경찰을 장악하려 했다는 추측이 가능해 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여기에 우병우 전 수석의 개입까지 유추해 볼 충분한 근거가 마련되니 셈이다.
<그알>이 마지막으로 제기한 비밀노트의 존재는 우 전 수석과 청와대 그리고 김장자씨와 엮인 것으로 보이는 최씨 일가와의 거대한 관계가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어떤 수준에까지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대한 그림과도 같았다. 악취가 풀풀 풍기는. 비록, 비밀노트와 우 전 수석과의 직접적인 관계는 아직 희미하고, 그 맥락이 좀 거칠더라도 말이다.
결국 <그알>은 우병우로 대표되는 이 한국사회의 엘리트들과 그들의 관계가 풍기는 악취를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하는 데는 분명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알>이 폭로한 비밀노트와 관련된 철저한 수사가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