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안보를 포기한 야당을 (총선에서) 찍어주면 개성공단을 재가동해서 북한으로 달러화가 들어가게 되고, 김정은이 핵폭탄을 더 만들어 우리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 인천지역 유세에서 한 말이다. 김 대표는 또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거론하며 “12시간씩 발언하기 위해 아기들이 차는 기저귀를 찼다고 한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 반국가세력에게 우리 미래를 맡겨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당이 우리나라에 존재하면 안된다” “나쁜 정당에 철퇴를 가해달라”는 등의 원색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철 지난 색깔론을 또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경쟁 정당끼리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이야 항용 있는 일이다. 다만 공격을 하더라도, 말은 되게 해야 한다. 야당이 ‘반국가세력’이거나 ‘존재하면 안되는 나쁜 정당’이라면, 이런 정당과 협상 파트너로 마주 앉았던 새누리당의 정체성은 뭔가. 한심하고 치졸한 색깔론을 꺼내 든 이유를 짐작 못할 사람은 없다. 최악의 공천 여파로 수도권 지지율이 추락하고, 대구·부산 등 핵심 지지기반까지 흔들리는 듯하자 조바심을 느꼈을 법하다.
이성과 논리가 결여된 색깔론은 전체적 판세 변화를 일으킬 소재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시민의 정치혐오를 가중시켜 무당파나 젊은층의 투표율을 일부 떨어뜨릴 소지가 있다. 새누리당의 노림수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김 대표는 선거 때마다 색깔론의 선봉에 섰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취지의 공세를 폈다. 총괄선대본부장이던 김 대표는 부산 유세에서 이런 내용의 문건을 줄줄 읽어내려갔다. 대선이 끝난 뒤 검찰 조사에선 이 문건의 출처를 “찌라시”(증권가 정보지)라고 둘러대 공분을 샀다. 김 대표에게 색깔론이란 선거 때만 되면 재발하는 일종의 불치병인 모양이다. 그러나 시대착오적 색깔론에 편승해 이길 수 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시민은 김 대표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매하지 않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유권자를 우습게 여기는 습관부터 버리는 게 좋겠다. 대신 남은 아흐레 동안 공약과 정책으로 당당하게 승부하기 바란다. 새누리당이 집권당다운 품격을 찾을 때 흔들리던 지지층도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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